“멍하니 커피콩 갈면 근심걱정 사라져”[덕후의 비밀노트]

김기윤 기자

입력 2020-11-26 03:00 수정 2020-12-2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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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라인더 덕후’ 이승재씨
獨서 사업하며 소품으로 하나둘…
1840년 佛푸조제품-벽걸이형 등 유럽 벼룩시장서 건진 1600점 소장


‘커피 그라인더 덕후’ 이승재 씨는 “수집은 단순히 개수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에 그라인더를 썼던 이들과 그라인더 너머 ‘대화하며’ 행복을 느끼기에 난 성공한 덕후”라고 했다. 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전동 커피 그라인더가 30초면 커피가루를 곱게 갈아내고, 이마저 기다리기 힘들어 조지 클루니가 ‘10초 완성’ 캡슐커피를 마시며 “왓 엘스(What else·뭐가 더 필요해)?”를 외치는 시대. 누군가는 수동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5분 넘게 드르륵 드르륵 콩이 갈리는 감촉과 소리의 거친 질감을 즐긴다.

‘커피 그라인더 덕후’ 이승재 씨(50)는 직접 갈아 마시는 커피 맛에 빠져 한때 수동 그라인더 3000여 점을 갖고 있었다. 일부를 처분해 현재 약 1600점을 소장 중이다. 서울 중구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근처에 만든 전시관 겸 카페 ‘말베르크(Malwerk)’에서 그라인더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말베르크는 독일어로 그라인더 핵심 부품 ‘원뿔형 분쇄추’를 뜻한다.

이 씨는 “콜라만큼 세계적 음료가 된 유럽 커피의 역사는 그라인더를 보면 된다. 프랑스 자동차회사 푸조도 원래 그라인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저도 바쁠 땐 전동 그라인더를 쓴다”며 웃었다. 그에게 그라인더 ‘입덕(덕후 입문)’ 이야기 등을 들었다.
왼쪽부터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커피용(대형) 및 후추용(소형) 그라인더. 1930년대 스페인에서 만든 엘마(elma)사의 커피 그라인더. 1930년대 스페인 MJF사의 커피 그라인더. ⓒYivadi studio


―왜, 언제부터 그라인더에 빠졌나.

“국회의원 비서관을 하다가 1998년 독일로 사회학 공부하러 떠났다. 정작 사회학 대신 바이오매스 산업에 눈을 떠 2005년 관련 사업체를 냈다. 거주하던 도르트문트는 석탄과 철광이 많이 나는 공업지대였는데 벼룩시장에 수동 그라인더가 많아 인테리어용으로 하나둘 사들였다. 2012년 알고 지내던 독일 어르신의 18세기 수집품 여러 점을 1800만 원에 산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멍 때리면서’ 커피콩을 갈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주요 수집품을 꼽는다면….

“푸조의 1840년 제품, 2차 세계대전 때인 1939년 포탄과 탄피로 만든 독일제 황동 그라인더, 1900년대 초 가정용 벽걸이형 그라인더, 독일 레나르츠(LEHNARTZ)사 시리즈가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제작된 보리차용 그라인더도 있다.”


―주로 어디서 구매하나.

“2018년 귀국 전까지는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주로 샀다. 관광지 인근 벼룩시장 말고 소도시의 깊숙한 장터에 가면 ‘진짜 물건’이 많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인들이 그라인더를 찾으면서 꽤 줄었다. 요즘엔 이베이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 주요 판매자를 찾는다. 유럽이나 미주의 웬만한 제품은 다 있는데 포르투갈 제품만 아직 못 찾았다.”


―입문자를 위해 추천한다면….

“먼저 사용 빈도를 따져야 한다. 혼자 사용하면 아무래도 빈도가 낮아 청소나 관리가 힘들다. 혼자 쓴다면 소형 ‘핸드밀’이 적당하다. 여럿이 자주 사용한다면 큰 나무 그라인더도 괜찮다. 녹슬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면 쇠로 된 제품도 추천한다. 한 손으로 들거나 다리 사이에 낀 채로 쓰는 것보다는 수평 상태에서 편하게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적합하다.”


―그라인더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주기적으로 생쌀을 한 줌씩 넣고 갈아주면 커피 찌꺼기가 나오는 게 보인다. 쌀 자체에 지방을 제거하는 성질이 있다. 습기 있는 데에 보관하지 말고, 안 쓸 때는 그라인더 안에 방습제를 넣으면 녹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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