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크리스마스’… 유럽 3차 확산 갈림길

김윤종 파리 특파원

입력 2020-11-26 03:00 수정 2020-11-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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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佛-러 등 누적 확진자 200만 명 돌파
봉쇄로 소상공인-유통업계 피해 확산
영업 허용 - 봉쇄 완화 두고 갈등… 디지털-드라이브스루 마켓이 대안


22일 저녁(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성탄절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일루미네이션’ 행사의 하나로 붉은 조명이 일제히 켜지자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여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코로나19 봉쇄령으로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진 탓에 매년 인파가 몰리는 이 행사의 올해 참석 인원이 대폭 줄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많은 인파가 몰리는 날인데 정말 한적하네요.”

22일 오후 7시(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가인 샹젤리제에서 만난 시민 클라하 씨(51)가 입을 열었다. 이날 파리시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샹젤리제 일루미네이션’ 행사를 시작했다. 매년 11월 22일 밤 개선문부터 콩코르드광장까지 약 2km의 대로변 나무 500여 그루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설치한 후 동시에 점등하는 행사다.

원래대로라면 이 ‘빛의 향연’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지만 이날 샹젤리제 일대는 그야말로 썰렁했다. 상점들도 일제히 문을 닫았다. 한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5만, 6만 명씩 발생하자 정부가 지난달 30일부터 한 달간 이동제한 등 봉쇄령을 발령한 탓이다.

이날 샹젤리제에서 멀지 않은 신도시 라데팡스를 찾았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라데팡스 중심 광장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예년 같으면 광장 전체가 수백 개의 간이상점으로 채워졌겠지만 오가는 인파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 유럽 상황 악화 일로… 주요국 확진자 200만 명대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연중 최대 행사로 꼽힌다. 매년 10월 말부터 전 유럽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돌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이런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주요국 확진자가 연일 급증하면서 각국 정부가 강도 높은 봉쇄령을 속속 발령하고 있고 시민들 또한 안전을 우려해 모임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25일 기준 프랑스와 러시아의 누적 확진자는 각각 210만 명을 돌파했다. 스페인(160만 명), 영국(150만 명), 이탈리아(140만 명), 독일(96만 명), 폴란드(90만 명)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24일 블룸버그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회복 순위’에서도 유럽 주요국은 모두 낮은 점수를 받았다. 세계 1위인 뉴질랜드가 100점 만점에 85.4점을 받은 반면에 이탈리아 스페인(공동 40위·54.2점), 프랑스(45위·51.6점), 벨기에(50위·45.6점) 등은 모두 하위권이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일부 시민은 자발적으로 가족 친지와 함께 떠들썩하게 보내는 성탄절 연휴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파리 16구에 사는 회사원 로엔 씨(39) 역시 “고령의 부모님이 걱정돼 올해는 가족들이 모이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여론조사회사 오피니언웨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는 “감염을 막기 위해 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 경제 타격 본격화… 유통·소매업 비상
유럽연합(EU) 소매업협회에 따르면 매년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전후까지 약 4주간 식품을 제외한 소매업에서는 연간 매출의 20∼50%가 창출된다. 올해는 특수를 기대하기는커녕 폐업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크리스마스 특수에 의존하는 유럽 의류업종 등은 최악의 경우 30%가 폐업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크리스마스 마을’로 유명한 프랑스 동부 도시 스트라스부르 역시 올해 성탄절 행사를 취소했다. 매년 250만 명이 참가하고 2억5000만 유로(약 3300억 원)의 돈이 오가는 시의 최대 행사를 포기한 것이다. 주민 마리안 씨는 일간지 르파리지앵에 “스트라스부르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취소되는 것은 파리에서 에펠탑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다른 유럽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독일에서도 올해 전국 3000곳의 마켓이 취소돼 30억 유로(약 4조 원)의 손실이 우려된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유럽이 보도했다.

예년처럼 크리스마스에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없어 음식 준비 광경도 달라지고 있다. BBC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때 프랑스인들이 즐겨 먹는 거위 간 요리 ‘푸아그라’ 생산량은 13% 이상 감소했다. 영국 웨일스 일대 농장의 칠면조 사육 또한 20% 줄었다.

EU 집행위원회는 3년간 유로존의 실업률과 부채 비율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최근 내놨다. 올해 8.3%로 예상되는 실업률이 내년에는 9.4%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 “대기업은 여전히 떼돈 번다” 소상공인 불만 폭주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봉쇄 조치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도 뜨겁다. 파리 7구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뒤부아 씨는 “봉쇄로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대형 유통업체는 여전히 장사를 하며 막대한 돈을 벌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프랑스 정부는 11월 한 달간 식품점과 약국 등을 제외한 서점, 세탁소, 미용실 등 비필수 업종에 일제히 폐쇄 명령을 내렸다. 반면 대형마트 체인 모노프리 등은 식품 등 생필품을 판다는 명목 아래 비필수 물품도 함께 판매했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 등 일부 정치인은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까지 겨냥하고 나섰다. 이달고 시장이 속한 사회당, 녹색당 소속 정치인들은 최근 ‘아마존 없는 크리스마스’를 요구하며 정부가 아마존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상공인들은 봉쇄 기간에 영업을 전혀 하지 못하는데 세계적 대기업인 아마존이 소매점 수요까지 흡수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프랑스 아마존은 지난달 30일 봉쇄령 발령 이후 현재까지 일일 매출이 약 40% 증가했다.


○ 유럽 각국, 성탄절 전후로 한시적 봉쇄 완화

국민 불만이 커지자 프랑스 정부는 24일 “이달 28일부터 비필수 사업장의 영업을 허용하고 코로나19 확산이 통제된다고 판단하면 다음 달 15일부터 이동제한 조치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12월 24일과 같은 달 31일에는 오후 9시 이후 야간 통행도 허용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 또한 12월 23∼27일 5일간 조부모, 부모, 자녀 등 3대가 모일 수 있도록 최대 3가구가 한 장소에 모이는 일을 허용하기로 했다. 독일 역시 다음 달 23일∼내년 1월 1일은 봉쇄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성탄절 전후 10일간 지역 상점 개점을 허가한다.

다만 의료 전문가들은 주요국의 이런 봉쇄 완화가 확진자 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강도 높은 봉쇄로 확진자 급증세를 겨우 진정시켜 놓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위험한 정책이라는 의미다.

영국 정부 과학자문 그룹에 따르면 특정 모임에서 참석자가 두 배 늘면 코로나19 감염 확률은 4배로 높아진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염병 책임자인 마리아 반 케르코베 박사는 23일 “성탄절을 앞두고 가족 모임을 피하라”고 권고했다. 앤드루 헤이워드 영국 런던대 감염학 교수 역시 “감염 가능성이 높은 젊은 세대가 사망 위험이 높은 고령층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코로나19 속 성탄절에 적응해 가는 사람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자구책을 찾는 모습 또한 뚜렷하다. 파리시는 22일 오후 7시 온라인에서도 ‘디지털 샹젤리제 일루미네이션’ 행사를 열었다. 순식간에 수만 명의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다운 직전까지 갔다. 파리 15구 시민 헤이몽 씨는 “스마트폰으로 샹젤리제 거리의 점등식을 보는 경험 또한 특별했다”고 밝혔다.

크리스마스 행사나 예배를 ‘줌’ 같은 온라인 원격 플랫폼을 활용해 참석하겠다는 사람들 또한 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올해 성탄미사는 신도 참여를 배제한 채 온라인 중계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24일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 일드프랑스 상공회의소 역시 ‘성탄절 광장’이란 일종의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했다. 오프라인 상점에서 팔던 크리스마스 전용 상품을 모두 구매할 수 있다. 니스, 낭트, 리옹, 그르노블 등 프랑스 주요 대도시도 온라인에서 전시 감상, 가상현실(VR) 체험, 상품 구매를 할 수 있는 디지털 크리스마스 마켓을 설치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란츠후트는 아예 ‘드라이브스루형’ 크리스마스 마켓을 개설했다. 시 당국은 “감염 위험을 줄이면서도 시민들이 성탄절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드라이브스루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인공 눈이 뿌려지고 캐럴이 울려 퍼지는 간이상점 사이를 차로 지나면서 각종 물품과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유럽 전체의 몸부림인 셈이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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