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 관리-감독 일원화할 정치중립적 공익委 설치를”

박성민 기자

입력 2020-11-25 03:00 수정 2020-11-25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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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행정 비효율 막을 컨트롤 타워 형태 독립기구 제안

동방사회복지회가 필리핀 앙헬레스에 세운 아동센터(위 사진)에서 코피노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온 한국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마다가스카르 암부히바우 지역의 한 교회에서 급식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 이처럼 사회복지법인이 해외 사업을 할 경우 외교부를 통해 별도 법인을 등록해야 한다. 동방사회복지회·기아대책 제공
입양아와 미혼모 지원 사업 등을 하는 동방사회복지회는 2014년 코피노(Kopino·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돌봄 사업을 시작하려다 제동이 걸렸다. 코피노를 위한 어린이집을 세우려고 했지만, 해외에서 이뤄지는 교육사업은 사회복지법인의 사업 범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방사회복지회의 등록 기관인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에서도 “정관상 어쩔 수 없다. 따로 법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현행법상 비영리 공익법인은 사업별 주무 부처에서 설립 허가와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한다. 문화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복지사업은 복지부 산하에 등록하는 방식이다. 동방사회복지회는 결국 2017년 외교부의 허가를 받아 해외사업을 위한 별도의 사단법인을 만든 후에야 본격적인 코피노 지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업 분야가 다양한 비영리 공익법인들은 이처럼 활동 범위를 넓힐 때마다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야 한다. 관리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현기 동방사회복지회 평택복지타운 대표는 “비영리 공익법인의 활동 범위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반면 관련법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서 “지원 대상을 넓히거나 모금액을 사용할 때마다 제약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 법무부 산하 공익위, ‘옥상옥’ 우려

비영리 공익법인과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익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부처별로 쪼개진 비영리 공익법인 관리를 일원화해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별 중복 회계보고 등 행정적 비효율을 막는 효과도 있다. 문재인 정부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시민공익위원회’(가칭) 설치를 내세웠다.

정부 출범 후에도 지지부진하던 공익위원회 출범은 지난달 법무부가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대체로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개정안이 공익법인의 공정성, 투명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효율적인 운영이나 지원을 위한 기구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익위원회를 법무부 소관으로 두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익법인들은 법무부 개정안이 옥상옥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설립 허가와 취소는 여전히 주무 부처가 맡고, 관리 감독 및 지원은 공익위원회가 맡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익위원회에도 ‘인정 및 인정 취소’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공익법인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 공익법인 대표는 “정부 국정과제 중 공익위원회 설치는 ‘반부패 개혁’ 범주에 있었다”며 “지난 정부 때 K스포츠·미르재단 사건을 겪으면서 특혜성 공익법인 설립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익위원회의 인적 구성이 정치적 독립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정안은 위원장과 상임위원 외에 대통령이 지명하는 고위 공무원 2명, 국회가 추천하는 민간위원 7명 등 11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국회 추천 중 여당 몫을 고려하면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더 커진 것이다.

○영국 “등록은 쉽게, 관리는 깐깐하게”

전문가들이 제안한 공익위원회는 공익법인의 설립부터 사후 관리까지 일원화한 ‘컨트롤타워’ 형태다.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입법·사법·행정부 중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조직이다. 배원기 홍익대 경영대학원 교수(공인회계사)는 “독립된 기구가 아니라면 최소한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해야 한다”며 “법무부 산하의 공익위원회는 오히려 공익법인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의 공익활동을 장려해온 국가들은 독립적인 비영리단체 관리 기구를 두는 곳이 적지 않다. 1858년 설립된 영국의 자선사업감독위원회(Charity Commission)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약 17만 개 단체를 관리한다. 허가제가 아니라 법인 등록이 쉬운 대신에 관리 감독이 깐깐하다. 비리 조사나 은행 계좌 동결 등 준(準)사법기관의 역할도 갖는다. 호주도 2012년 ‘호주 자선 및 비영리 위원회(ACNC)’를 설립해 비영리 부문을 활성화하고 있다.

2018년 기준 국세청 의무공시 대상 공익법인은 9663개, 총 자산 규모는 256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관리 감독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역할에 제약을 받거나 회계 부정 등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사건도 반복되고 있다.

이일하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은 “국내 비영리 공익법인들은 주무 부처별로 관리 감독과 기부금 행정처리 기준이 모두 달라 비효율적”이라며 “민간의 공익활동을 장려하고, 합리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공익위원회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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