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깃발 든 완성차 노조, 자녀 학원비 줄여야 하는 협력업체[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김도형 기자

입력 2020-11-21 15:50 수정 2020-11-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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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오늘은 연말 자동차 업계에서 불거진 파업 이슈와 협력업체들의 피해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겠습니다.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또다시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GM에 이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도 부분파업에 들어갑니다.

두 회사 모두 절차를 거쳐서 파업권을 확보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파업인데요.

근로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합법적으로 진행하는 파업을 무조건 잘못된 행동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산업계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입니다.

자동차 업계도 국내 판매량은 줄지 않았지만 국내에서 해외로 수출하는 물량(평균적으로 내수물량의 1.6배 정도입니다)이 10% 이상 줄어들어든 상황인데요.

해외 생산기지의 상황이 국내보다 더 안 좋은만큼 협력업체들은 부품 수출 측면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GM과 기아차 근로자들이야 파업한 시간만큼 임금을 덜 받으면 그만이겠지만 협력업체들은 가뜩이나 줄어든 생산물량에 파업 이슈까지 겹치면서 더 큰 어려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자동차 업계의 맏형으로 꼽히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 무분규로 기본급 동결에 합의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협력업체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GM·기아차 노조가 지나치게 이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만큼은 줄어들지 않은 자동차 수요와 그 이유를 살펴본 지난주 휴일차담에 보내주신 관심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에도 수입차·국산차 모두 판매 늘어난 이유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01114/103958465/1

김도형 기자의 휴일車담 전체 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10900000002


● 한국GM 이어 기아자동차도 파업 깃발
올해 노사 협상 과정에서 먼저 파업에 돌입한 곳은 한국GM입니다. 한국GM은 최근 수년 동안 연달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기본급 월 12만304원 인상(올해 금속노조 공통요구안), 통상임금의 400%에 600만 원을 더한 성과급(평균 2000만 원 이상) 지급 등을 요구하다가 지난달 말부터 부분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9일 오전 한국GM 부평공장 앞에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파업 중단을 호소하고 있는 협력업체들. 인천=변종국 기자 bjk@donga.com

기아차는 오는 24일부터 부분 파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 과정에서 미래차 관련 고용안정 방안과 전기차 핵심부품 공장을 현재의 기아차 공장에 만드는 방안 등을 요구하다 결국 파업을 선언한 것인데요.

이로써 기아차는 9년 연속으로 파업을 벌이게 됐습니다.

올해 자동차 업계에서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쌍용자동차가 일찌감치 임금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차가 무분규로 임금협상을 마무리 지으면서 ‘평온한 한해’에 대한 기대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한국GM과 기아차가 연말에 파업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현재 파업권만 확보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 완성차 기침에 독감 앓는 곳은 협력업체
한국GM의 파업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지난 19일 한국GM 부평공장 앞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이례적인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협력업체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한국GM 직원들의 출근길에 호소문이 적힌 종이를 전달한 이들은 한국GM 협력업체 관계자들이었습니다.

한국GM이 장기간 부분 파업을 벌이면서 자동차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부품 등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기침을 하면 협력업체는 독감을 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인데요.

파업 돌입을 예고하는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소식지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인 완성차 기업과는 회사 규모가 훨씬 작고 아무래도 직원들의 임금이나 처우 역시 열악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완성차 업체에 직접 납품하면서 비교적 규모가 큰 1차 협력업체라면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을 수 있겠지만 그 아래 단계에 있는 2차, 3차 협력업체라면 코로나19로 인한 생산 물량 감소에 부분 파업 상황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 저는 올해 한국GM의 상황과 비슷했던 르노삼성차와 르노삼성차 협력업체를 직접 취재한 적이 있는데요.

완성차 업체 직원들은 부분 파업을 해도 일하지 않은 만큼 임금이 줄어드는 정도인지라 파업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협력업체 직원들은 회사가 일정 기간 휴업을 하는 상황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일하는 시간에 따른 임금’이라는 측면이 대기업보다 더 강해서 원래부터 더 낮은 수준의 임금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가 “큰 회사도 아닌데 우리 직원들 형편을 빤하게 알지 않나. 월급을 얼마간이라도 챙겨주려고 출근 하도록 하고 있지만 파업이 길어지면 회사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얘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파업으로 일감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임금이 줄어들면서 직원들이 자녀 학원비를 줄인 형편이라고 하는데 완성차 업체 직원들이 이런 사정을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체력이 약한 협력업체 가운데 넘어지는 곳이 생기기라도 하면 협력업체 직원들은 아예 일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완성차 업체 직원들은 스스로 선택한 파업이지만 협력업체 직원들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점을 보면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 무분규 타결 현대차 노조 “협력업체도 일자리만은 지켜줘야”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한 자성은 완성차 노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울산에서 열린 ‘제2차 울산 자동차산업 노사정 미래포럼’이라는 행사를 다녀왔는데요.

이 자리에서 올해 기본급을 동결하면서 파업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 지은 현대차 노조의 얘기를 제법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내부의 현대차 노조 사무실. 동아일보DB

그리고 제가 특히 주목한 것 중의 하나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속에 협력업체 직원들이 일자리만큼은 지킬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 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상수 현대차 노조위원장(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공개적으로 “동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욕 많이 먹었다”고도 했는데요.

조합원의 권익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인 곳이 노동조합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상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져야 지역적·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조합원들에게도 이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도 관성처럼 파업에 돌입한 다른 완성차 노조도 한번쯤은 이런 얘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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