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을 건강하게 보내려면… 체온부터 높여라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20-11-19 03:00 수정 2020-11-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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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건강관리 비법
몸의 중심 배 따뜻하게 유지… 스카프-목도리 둘러 목 보호
계피-생강-후추 등 식재료… 속 데우고 한기 막는데 특효
운동 전 쌍화차-모과차 한잔… 근육-관절 풀어줘 부상 예방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귀근복명(歸根復命). 식물이 겨울에 최소한의 가지만 남겨둔 채 뿌리로 영양분을 보내고 내년 봄을 기다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식물이 뿌리로 영양분을 보내듯이 피부에서 가장 깊은 신장으로 에너지를 돌려보낸다. 이파리와 가지에 비유할 수 있는 피부에서는 땀이 줄어들고 소변도 잦아든다.
하지만 우리는 식물이 아니다. 식물과 달리 인체는 끝없이 내외부로 순환하여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춥다고 웅크리기만 하면 건강의 적신호가 온다. 겨울철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할 때 보온 방법은 어떤게 좋을까. 차가운 기온에 노출된 코와 목 등 호흡기 건강을 유지하며 면역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보온을 위한 옷과 목도리



추운 겨울 체온을 높이는 것은 고전적인 건강 비법이다. 인조 15년 2월 8일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나서 인조는 당시의 침략 책임자 구왕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자식들이 깊은 궁궐에서만 성장하였습니다. 듣건대 여러 날 동안 노숙(露宿)하여 질병이 벌써 생겼다 합니다. 청으로 가는 동안에 온돌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하면 다행이겠습니다.”

실제로 온돌방은 청나라로 인질로 끌려가던 소현세자의 건강에 영향을 줬다. 소현세자는 압록강을 건너기 전까지 주로 민가에서 온돌에 숙박하였다. 그래서인지 만주로 넘어가기 전 소현세자의 감기 증세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3월 30일 이후 만주 땅에 들어선 소현세자는 온돌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한 달이 넘도록 감기에 시달렸다.

목은 머리와 몸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부위다. 한의학적으로는 풍증과 관련되는 질환을 다스리는 곳이다. ‘황제내경’은 ‘바람은 사람을 상하게 한다’ ‘바람은 기와 하나인데 질서가 있을 때는 기가 되고 빠르고 다급하면 풍이 된다’ 등으로 경고했다. 이렇게 목은 외부 온도 변화와 내부 스트레스인 화증이 결합하면서 풍증이 생길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목은 풍을 다스리는 풍지, 풍부, 풍문의 혈들이 둘러싸고 있다. 급격한 기온 변화는 목 주위의 풍혈을 자극해서 중풍을 유발하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겨울철 갑작스러운 냉기는 목 주위의 신경 근육 혈관을 수축시켜 뇌경색이나 구안와사 등 뇌나 신경 질환의 원인이 된다. 따뜻하게 목을 감싸는 머플러나 목도리 등을 준비하여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겨울철 온기를 보태야 할 곳 가운데 하나가 배꼽이다.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배를 이불로 덮듯이 배는 늘 차가운 곳이어서 따뜻하게 온기를 보태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영조는 한기를 자주 느끼고 배가 자주 아픈 냉성 체질이었다. 체온을 보강하고자 배에 묵은 쑥으로 만든 복대를 차고 다니면서 건강관리를 하였다. ‘동의보감’은 이들 치료법의 기전과 효능을 이렇게 적고 있다.

“배꼽 줄은 마치 과일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을 때 양분이 과실 꼭지를 통하는 것과 같다. 배꼽에 더운 김을 쏘여 꼭지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풀과 나무에 물을 주고 흙을 북돋아 주면 잘 자라는 것과 같다.” 배꼽은 자궁 속 태아에게 영양분을 보내는 유일한 통로이자 차가운 음기가 모이는 축이다. 따라서 배꼽이라는 뿌리에 온기를 보태야 가지인 팔다리가 따뜻해지고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중국 청대 최장수 태후 가운데 한 사람인 서태후도 건강을 위해 선택한 처방으로 배꼽 고약을 꼽았다. 녹각, 당귀, 당삼, 천초 등의 약재를 졸여 만든 ‘보원고본고’라는 고약을 항상 붙이고 다니며 배를 따뜻하게 유지한 것. 겨울철 체온이 떨어져 추위를 많이 탄다면, 먼저 배를 따뜻하게 하는 게 몸 전체의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겨울나기를 위한 음식 비법



세종, 문종, 세조를 모셨던 조선 전기의 명의 전순의는 자신의 저서 ‘산가요록’에서 겨울철 혹한을 이기고 체온을 높이는 특별한 음식을 소개했다. 바로 ‘우무전과’다. 소의 족과 가죽을 삶을 때 계피 생강 후추 꿀 대추 등을 넣고 함께 끓여 만든 것이다. 젤라틴이 많이 들어 있어서 피부도 보호할 수 있는 약식이었다.

이 먹거리에는 구중궁궐 조선의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한의학적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계피 생강 후추 꿀 등은 모두 몸을 따뜻하게 체온을 올려주고 신진대사 활동을 돕는 식재료다. 특히 생강은 체온을 올려주는 데에 탁월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생법에서도 속을 데우고 한기를 막아내는 음식물로 생강, 계피, 후추, 양고기 등을 복용할 것을 권했다.

코감기가 잦은 사람이라면 생강이 더욱 좋다. 대추를 2시간 정도 함께 끓였다가 5분 정도 남긴 채 파뿌리를 넣어서 차로 마시면 호흡기를 건강하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관절과 근육을 위한 방법


겨울이 되면 근육과 관절이 추위에 민감해져서 운동이나 외출할 때 갑자기 굳어지면서 뻣뻣해지기 쉽다. 이때는 쌍화차가 도움이 된다. 추워지면서 말초혈관이 수축하여 다리가 뻣뻣해진다면 미리 쌍화차를 복용하고 운동에 들어가는 것도 좋다.

쌍화차는 근육 긴장을 풀어주는 작약이라는 약재가 주성분이다. 작약은 음력 10월에 싹이 나고 정월에 자라 3, 4월에 꽃을 피운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는 만큼 차갑게 응결하거나 딱딱하고 굳어진 곳에 생기를 불어넣어 유연하게 만든다. 현대 의학의 기준으로 보면 근육을 풀어주는 기능을 한다. 허리 다리뿐 아니라 복근까지 유연하게 탄력성을 유지시킨다.

쌍화차와 더불어 권하고 싶은 것이 모과다. 갑작스러운 염좌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과가 탁월하다. 모과는 근육을 풀어주고 관절을 활발하게 해주는 서근활락의 효험이 크다.


#목욕을 자주 하는 것도 방법



겨울철 목욕이나 온천욕은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초혈관을 확장하고, 부력으로 관절 통증을 감소시키고, 체온을 상승시켜 칼로리 소모를 돕는다. 또 세로토닌과 엔도르핀 등 호르몬이 분비되어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건강 유지에 좋다.

특히 한의학의 지혜를 담은 여러 양생서에는 겨울철 목욕물에 구기자 잎이나 약재를 직접 넣을 것을 권했다. 겨울은 음을 기르고 양을 보호하는 양음호양(養陰護陽)의 계절이다. 목욕은 좋지만 땀을 지나치게 많이 빼는 것은 몸속의 진액을 손실시켜 조심스러운 것으로 파악했다. 구기자는 촉촉한 식감으로 땀으로 손실된 진액인 음기를 배양하고 붉은색과 따뜻한 기운으로 양기를 살리는 약물로 겨울철 양생에 중요한 약물이다.


#기관지가 약하다면 오과다를


‘승정원일기’에는 왕들의 기관지와 기침을 다스리기 위해 쓰인 다양한 처방이 기록돼 있다. 그중 가장 여러 차례 언급된 단어는 ‘오과다(五果茶)’이다. 오과다는 그 명칭처럼 호두, 은행, 대추, 밤, 생강 등 다섯 가지를 달여 식히고 나서 필요할 때 꺼내 마시는 약차다. 먹기도 간편하고 장기간 복용해도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약식 처방에 가깝다.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가 가장 아끼고 신임한 어의 강명길의 저작 ‘제중신편’에 그 처방과 복용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호두 10알, 은행 15알, 마른 대추 7알, 생밤 7알, 동전 크기 생강 7쪽, 큰 배 1개를 구한다. 생강을 제외한 재료를 얇게 썰어 2L 정도의 물에 넣어 3시간 정도 약한 불에 함께 끓인다. 물이 줄면 보충한다. 남은 물의 양이 1.5L 정도가 되면 식힌 후 냉장 보관한다. 먹을 때 꿀을 한 티스푼 넣으면 맛도 좋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서 수천 년 겨울철 건강을 지켜온 이런 방법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목에 스카프나 목도리를 두르고, 배꼽을 따뜻하게 해 체온을 유지하고, 적당한 온욕을 즐기면서 겨울철 건강을 챙기자.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약식과 약차는 그런 건강 챙기기에 생기를 북돋워줄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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