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부캐를 포용하라

이항심 건국대 상담학과 교수 , 정리=장재웅 기자

입력 2020-11-18 03:00 수정 2020-11-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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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장소 따라 다양한 삶 ‘멀티 페르소나’ 시대… 기업 대응 방안은

최근 한 TV 광고에서 등장한 막내 사원. 회사 안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가 퇴근 후에는 조깅 모임의 리더로 180도 변신하는 모습에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했다. 이처럼 직장에서는 직장인의 ‘가면’을 쓰고, 퇴근 후에는 직장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부캐(부캐릭터)’ 만들기의 유행이다. 이렇듯 주어진 역할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현대 직장인들의 모습은 올해 화두로 떠오른 ‘멀티 페르소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부캐 만들기가 인기를 끌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또 이런 변화에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020년 10월 2호(307호)에 실린 스페셜리포트 기사를 통해 ‘부캐의 시대 기업의 대응 방안’을 요약해 소개한다.

○ 부캐 만들기와 ‘N잡러’

요즘 기업에서 하나 이상의 직업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 정체성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N잡러’라고 표현한다. 이런 N잡러의 유행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내가 여기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해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가 다양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과거에는 일터에서 주어진 사다리를 타고 쭉 올라가는 것만이 정답이었다면 현재는 사다리가 아닌 정글짐에서 다양한 모듈을 조합하면서 나의 주체성과 다양한 직업적 흥미, 능력을 바탕으로 나만의 정글짐 모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진로 심리학에서는 ‘프로티언 커리어(Protean Career)’라고 말한다. 프로티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테우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어다. 프로테우스는 몸의 형태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일과 취향의 경계도 점점 모호해지면서 취미로 하던 덕질이 내 새로운 업이 되기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했던 일이 본업으로 바뀌기도 한다.

○ 4차 산업혁명과 ‘개인성’의 회복

그렇다고 부캐 만들기가 단순히 경제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탄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현상들은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깝다. “이왕 한 번뿐인 삶, 나다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라는 내면의 욕구가 반영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다양한 직업적 활동이나 취미 활동을 통해 분리되고 파편화된 나의 모습이 아니라 통합된 나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와 노력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주로 기술 혁명에만 초점을 맞춰 조명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저변에 깔려서 힘의 분산화, 다양화, 개방적 공유 등의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인 ‘인간다움을 향한 회복’, ‘자기다움으로의 회귀’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 우리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를 살펴보면 많은 직원이 하나의 큰 업무를 잘게 쪼개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세분된 분업화 모델을 가지고 있어서 일의 큰 그림을 보고 그 안에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느끼면서 일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작은 단위로 나눠진 제한된 업무를 하면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답답함을 느끼게 되고 일과 삶을 자연스럽게 분리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고 그 대신 일과 삶의 명확한 분리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퇴근 후 삶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 다양성 존중과 심리적 안전감

그렇다면 직원들이 회사 밖에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시대를 맞아 조직은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핵심은 관리와 통제 중심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 문화를 바꾸는 데 있다.

최근 조직 내 구성원의 다양성이 얼마나 그 조직의 생산성과 혁신성을 높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최근 다양성 관련 보고서를 통해 경영진의 성(性) 다양성 수준이 상위 25%인 기업들은 하위 25%인 기업들보다 세전 영업이익률(EBIT Margin)이 평균 21% 높게 나왔음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은 특히 미래 신사업 기회 발굴 및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발표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업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다양성을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당신이 가진 다양한 역량과 모습들을 드러내도 괜찮아”라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일터에서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직원들, 특히 MZ(밀레니얼과 Z)세대들은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고 이를 조직 내에서 수용받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가 높다. 하지만 조직이나 일터가 그 심리적 욕구를 수용해주지 못할 경우, 구성원들은 일터 밖으로 관심과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쏟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 에너지가 일터에서 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각자가 가진 다양성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활력과 생기를 띠게 될 것이다.

이항심 건국대 상담학과 교수 hangsim@konkuk.ac.kr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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