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취준생, 8년째 공시족…“주식 단타로 생계유지”

세종=남건우기자 , 세종=구특교기자

입력 2020-11-12 03:00:00 수정 2020-11-12 17: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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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안보이는 청년 취업난에 코로나까지… 직업이 취준생
25∼39세 대졸자-재학생 중 “단 한번도 취업 못해봤다”
1년새 5만명 늘어 20년만에 최대…미래 국가 경쟁력 악영향 우려


취업문 열리길 11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서 한 청년이 취업을 위한 진로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실 3번방 외부 벽에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세태를 토로하는 문구가 쓰여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14년 서울 소재 사립대를 졸업한 박모 씨(32)는 7년째 ‘취준생’이다. 20대 때 원하던 대기업 면접에서 탈락한 뒤 중소기업 인턴, 공공기관 아르바이트 자리를 가리지 않고 90여 차례 이력서를 냈지만 박 씨에게 채용 문을 연 곳은 없었다.

30대 들어선 매년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구직에 나섰지만 여전히 월급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백수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업문이 더 좁아지자 밤잠을 설치는 날만 늘었다. 박 씨는 “오랜 취업 준비로 얻은 건 허리 디스크뿐”이라며 “올해도 취업이 안 되면 어떻게 할지 아무 계획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대와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25∼39세 가운데 단 한 번도 취업을 해본 적이 없는 청년실업자가 역대 최대인 29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충격에 취업 빙하기가 길어지면서 이들이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대학생이거나 대학(전문대 포함)을 졸업한 25∼39세 인구 중 취업 경력이 전혀 없는 ‘취업 무경험자’가 28만7979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5만6202명(24.2%) 늘었다. 규모와 증가 폭 모두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후 최대다.



취업 무경험자 가운데 아예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이른바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은 절반에 가까운 13만4414명(46.7%)이었다.

수년째 누적된 취업난에 코로나발 고용 충격이 겹친 탓에 현재 청년층의 취업 사정은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에서도 지난달 20대 취업자는 1년 전보다 21만 명 감소해 2009년 1월 이후 가장 많이 줄었다. 청년층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도 24.4%로 10월 기준 역대 최고였다.

이에 따라 코로나 위기가 배출한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일본은 거품경제가 꺼진 1993∼2005년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지 못한 1970년대생이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가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도 급격한 출산율 하락,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이어졌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청년들이 취업 시기를 한번 놓치면 나이가 들어서도 적게 벌게 되고 결혼 기피, 출산율 감소로 줄줄이 이어진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7년째 취준생, 8년째 공시족…“이제 남은 건 나이와 좌절뿐”▼









이모 씨(37)는 한때 노량진 고시촌을 오가며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던 ‘공시족’이었다. 2009년 대학 졸업 후 7급 공무원 시험 준비에 5년, 9급 시험 준비에 3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30대 중반이 넘어 있었다. 일반 기업에 입사하기엔 나이가 많고, 공무원에 계속 도전하자니 불안해 결국 취업을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요즘 부모님에게 빌린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씨는 “단타 거래 말고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앞으로도 뭘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번도 취업해본 적 없는 2030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 씨처럼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 못하고 취업에 대한 꿈을 아예 접은 ‘취포족’(취업을 포기한 사람)도 상당수다.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취업 적령기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집단으로 늦어졌던 것을 뛰어넘어 지금의 코로나 위기는 한국의 ‘잃어버린 세대’를 배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대학 졸업 뒤 “취업 포기” 13만 명 넘어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25∼39세 대학 재학생 및 졸업자(전문대 포함) 중 ‘취업 무경험자’는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인 약 29만 명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착화된 저성장 흐름에 코로나발 고용 한파가 겹치면서 일자리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청춘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대학 4학년생인 장모 씨(24)는 올 들어 공기업 10곳, 민간기업 15곳에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첫 관문부터 실패를 맛본 탓에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졸업을 늦춰서라도 공기업에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장 씨는 “힘들게 취업하는 만큼 안정적인 공기업에 가고 싶다”며 “코로나 때문에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고 그나마 사람을 뽑는 공기업에 취준생들이 몰려 피 튀기는 경쟁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수년째 기업 취업 문턱에서 좌절한 김모 씨(32·여)는 현재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취업 한파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이 제한이 없는 군무원을 택하는 게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김 씨는 “서류전형을 통과하는 게 바늘구멍처럼 좁아졌다”고 했다.

청년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25∼39세 대졸 미취업자 중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는 ‘니트족’도 9월 말 현재 약 13만5000명에 이른다. 김정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복되는 구직 실패는 구직 활동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어 니트족을 양산한다”고 했다. 이런 니트족과 취업준비생, 단기 알바 등을 감안한 사실상의 실업 지표인 청년 확장실업률은 지난달 24.4%로, 청년 4명 중 1명은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포기했다.


○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 그림자 인간 전락 위기

20, 30대 ‘잃어버린 세대’가 늘수록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에서는 거품경제 붕괴로 취업 빙하기였던 1993∼2005년 당시 취업을 하지 못한 1970∼1982년생들이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며 사회적 문제가 됐다. 현재 40, 50대가 된 이들은 다른 세대와 비교해 비정규직이 많고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세대인 1997, 1998년 대졸자들이 졸업 후 약 6년이 지난 뒤에야 이전 졸업자들의 임금 수준을 따라잡은 것으로 LG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청년층이 대학 졸업 이후 기업 현장에서 경험과 능력을 쌓으면서 노동력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그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이 1, 2년이 아니라 장기간 계속되고 있어 잠재성장률도 그만큼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취업 포기는 결혼 포기, 출산 포기 등 ‘N포 세대’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에서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는 ‘그림자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3년차 취업준비생인 권모 씨(26)는 “취업이 불확실하다 보니 결혼, 출산은 물론이고 5년, 10년 뒤 어떻게 살지 생각해 보기도 싫다”고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한 2030세대는 이대로 가면 다른 세대보다 소득, 소비가 적은 세대가 될 것”이라며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신산업 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취업 기회를 놓친 청년들이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청년 지원책이 취업 지원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아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세종=남건우 woo@donga.com·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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