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폐선-밥솥-냄비… 손때 묻은 물건들이 빚은 예술

김민 기자

입력 2020-11-10 03:00 수정 2020-11-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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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살어리 살어리랏다’전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미술감독도
일상 소품 팝아트적 재해석 유명 작가
“경남의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


경남 창원 폐기물처리장에 버려진 선박을 씻고 에폭시를 채워 물에 잠긴 듯한 모습을 연출한 작품 ‘폐선’. 경남도립미술관 제공
개인전을 앞둔 올 9월 서울 종로구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최정화 작가(59)는 ‘볼품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했다. “무능한 아버지 아래 힘들었던 가정에서 다섯 형제를 키운 어머니가 자신의 ‘창조주 여신’”이라면서 말이다. 가진 게 없어도 “못생긴 화분에 조화를 꽂고, 잡동사니를 쌓아 올리는 아줌마의 손길이 바로 예술”이라고 했다.

그에게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의 미술감독을 맡긴 박찬욱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박 감독은 2009년 경기도미술관 강연에서 “가난한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모든 것을 꾀죄죄하게 묘사하는 데 불만이 있었다”고 했다. “실제 가난한 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빈약함이 아닌 풍부함이다. 뭐 하나 버리지 않아 쌓여 있고, 어울리지 않을 것을 끼워 넣고… 거기서 굉장한 아름다움이 나오지 않나. 그런 점이 (이 영화에서) 만족스러웠다.”

수차례 미술관 개인전을 연 미술가이자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소장인 최 작가는 1990년대 ‘올로 올로’ ‘스페이스 오존’ ‘살바’ 같은 복합 문화 공간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빈티지 소품이나 노출 인테리어를 활용한 당시 디자인은 요즘 ‘뉴트로(뉴+레트로·새로운 복고)’라는 트렌드가 됐다. 장정일의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 ‘301, 302’나 ‘모텔 선인장’ 등의 미술감독도 맡았다.

일상 소품을 화려하게 재해석하며 팝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가 이번엔 ‘경남도민’과 전시를 꾸몄다. 지난달 22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살어리 살어리랏다’전이다.

이번 전시는 “경남의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를 만들자”는 김종원 경남도립미술관장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김 관장은 “현대미술관은 역사를 다뤄야 하는데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다”며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를 주제로 미술관이 가야 할 방향을 찾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전시에 참여한 도민 1000명의 이름을 새긴 작품 ‘당신이 기념비입니다’(위쪽 사진). 부표를 비롯한 해양쓰레기로 만든 작품 ‘성게’. 경남도립미술관 제공
최 작가는 올 4∼8월 경남 지역을 답사했다. 창원의 폐스티로폼 처리장에서 만난 해양 쓰레기는 작품 소재가 됐다. 전시 작품 ‘폐선’은 이곳에 버려진 배를 세척하고 에폭시를 활용해 물이 고인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120년 역사의 마산 청과물시장에서는 손수레를 발견했다. 대부분 40∼50년간 사용한 것으로 과일 상인들이 먹고살고, 자식 공부시킬 수 있도록 해준 물건이다. 고(古)가구와 현대적 물건을 결합한 작품 등을 미술관 1, 2층의 1, 3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앞마당에는 도민 617명이 보내온 밥솥 냄비 식기 등 783점으로 쌓은 높이 24m의 탑 ‘인류세(人類世)’가 놓였다. 2층의 2전시실에는 식기를 보내온 사람들의 사연과 사진도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1000명의 이름을 마산의 한 재봉사가 한 땀, 한 땀 새겨 작품 ‘당신이 기념비입니다’가 탄생했다.

3층 전시실에는 경남 지역 커뮤니티인 ‘공유를 위한 창조’ ‘비컴 프렌즈’ ‘돌창고프로젝트’ ‘팜프라’의 활동상을 소개하는 팝업 전시 ‘별유천지’도 마련됐다.

김재환 학예연구사는 “미술관의 공공성을 확장하는 방식을 실험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내년 2월 14일까지, 300∼1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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