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만지며 기도할수 있는, 따뜻한 부처님 모셨어요”

광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11-09 03:00 수정 2020-11-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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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각사 ‘돌에 새긴 염화미소’展

3일 광주 무각사에 전시된 대형 사방불 앞에 선 주지 청학 스님(왼쪽)과 오채현 작가. 청학 스님은 “경주 남산 사방불이 빛고을 광주로 나들이 왔다”고, 오 작가는 “딸을 좋은 곳에 시집보낸 느낌”이라고 말했다. 광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3일 광주광역시 무각사 경내로 들어서니 뜻밖에 석불(石佛)의 향연이 펼쳐졌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4면에 부처를 새긴 사방불(四方佛)의 미소다. 높이 3.5m에 무게만 18t에 이르는 화강암 원석에 동쪽 관세음보살, 서쪽 지장보살, 남쪽 석가모니불, 북쪽 비로자나불을 새겼다. 큰 부처 사이에 중생의 염원을 담은 108개의 작은 부처, 대승불교의 ‘6바라밀 실천’을 상징하는 여섯 부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남쪽과 서쪽에 있는 두 쌍의 손이다. 몇몇 불자는 여기에 자신의 두 손을 맞춰 대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대형 석불 31점을 비롯해 작품 50여 점을 전시하는 ‘돌에 새긴 희망의 염화미소’전이 내년 10월 31일까지 이곳 경내와 로터스갤러리에서 열린다. 작품 수와 전시기간에서 유례가 없는 대규모 석불 전시회다. 석불의 미소가 가득한 무각사에서 주지 청학 스님(67)과 오채현 작가(58)를 만났다.

―사방불이 압도적인 느낌이다.

오채현 작가(오)=처음 경주에서 돌을 보는 순간 ‘이 속에 부처님 네 분이 살아 계시다’고 생각했다. 경주가 고향이라 어릴 때부터 자주 본 남산 사방불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작업하다 막히면 돌 주변을 도는 탑돌이를 했다. 작품 완성에 10년 걸렸다.

청학 스님(청학)=불국사에 살 때 불상들을 자주 봤다. 경주 남산과 운주사(전남 화순) 석불들은 평범한 사람들, 민중의 얼굴이라 좋다. 이 시대에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 얼굴인데, 그런 부처님을 모시고 싶었다. 형편만 되면 이 부처님들을 계속 여기에 모시고 싶다. 하하.

―두 쌍의 손은 사방불의 미스터리인가.

=무섭고 차갑기보다 따뜻한 부처님 상을 그리고 싶었다. 마음껏 만지면서 기도할 수 있는 부처님이다.

청학=작가가 숨겨놓은 신의 한 수다. 처음에 그 손자국을 얘기 안 했다. 나중에 손자국을 발견하고서 ‘바로 이거다’ 하며 손뼉을 쳤다. 석불에 손과 이마를 대는 게 최고의 예불이다.

=요리하는 사람은 거기에 빠져 어떨 때는 맛있는지 모른다. 작가도 그렇다. 스님이 예술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어 내 작품을 꿰뚫어 봤다.

―오래된 석불들의 빛깔이 무각사와 잘 어울린다.

=전시 공간이 도심 사찰이라 좋다. 우리 불교가 갈 방향 아닌가. 좋은 공간에 작품을 모시면 마음이 편하다. 딸을 잘 키워 좋은 곳으로 시집보낸 느낌이다.

청학=3년 전 지리산 쌍계사 쪽 토굴에 사는 도반을 찾았는데 거기서 오 작가의 작은 부처님을 우연히 봤다. 예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작가가 누구인지 묻고, 경기 파주시 작업실로 찾아갔다. 세상사가 모두 인연이라는 말이 딱 맞다.

―뒤편의 키가 큰 미륵불도 인상적이다.

=높이 5m, 무게 16t이다. 미륵불은 미래에 오시는 부처님이고 민중의 희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얼굴도 인간적이고 개성도 강하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희망을 담아 부드럽게 표현했다.

청학=불교사를 볼 때 백제불교 이후 충청과 호남은 미륵신앙이 강했다. 운주사 부처님들은 민중불교의 상징이다.

=운주사는 내게 ‘비상금’이나 마찬가지다. 작업이 막힐 때면 찾는다.

청학=21세기 오 작가의 손을 통해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혼이 만났다. 오 작가를 빼면 작가로서 불상에 접근하는 분이 거의 없다.

―석불들이 들어온 지난달 20일은 무각사에 말 그대로 ‘부처님 오신 날’인 셈이다.

청학=‘경주 남산 부처님(사방불)이 빛고을 광주에 나들이 왔다’는 생각이 스쳤다. 부처님들이 다른 곳에서 온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연이다.

=다음에는 108나한을 소품으로 만들어 무각사에 모시고 싶다. 2년 정도 매주 수행하는 느낌으로 작업할 예정이다.

청학=코로나19로 2월부터 법회를 안 하다 9월에 처음 했다. 문 잠그고 기도하면서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 세상에 감사할 게 너무 많더라. 신도들을 한동안 못 보니까 기도가 더 간절해졌다. 의기양양했던 우리 삶을 되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머지 남아 있는 중노릇 동안 반성하며 살아갈 거다.

광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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