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선주의’ 4년 더? 국내 기업들, 美대선결과에 촉각

서동일기자 , 홍석호기자

입력 2020-11-04 17:14 수정 2020-11-0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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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삼성(Thank you, Samsung)”

2017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트위터에 이 같이 남겼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외신을 인용해 남긴 짧은 문장이었지만 파장은 컸다.

당시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는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까지도 “트럼프 대통령 압박 때문이 아니라 충분한 검토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답변을 고수하고 있지만 트럼프 재임기간 4년 동안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에 크고 작은 투자를 이어왔다.

국내 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트럼프 당선 직후인 2017년 1월, 5년 동안 31억 달러(약 3조7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BMW, 도요타가 멕시코에 공장을 지으면 국경세를 물리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지 이틀만의 발표였다.

LG전자는 2월, 삼성전자는 6월 움직였다. LG전자는 미국 뉴저지 주에 총 3억 달러(약 3432억 원)를 투자한 ‘LG 북미 신사옥 기공식’을 대대적으로 열고, 이를 통해 세금, 일자리 창출 등 매년 2600만 달러(약 297억 원) 규모로 지역 경제에 기여하겠다고 주장했다. 3월에는 미국 테네시 주에 2년간 2억5000만 달러(약 2825억 원)를 들여 연간생산 100만 대 규모의 세탁기 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6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시에 3억8000만 달러(약 4332억 원)을 투자해 신규 가전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은 트럼프 당선 직후 ‘국제질서 변화와 한국’ ‘글로벌 경제 전망과 한국 경제의 돌파구’ 등을 주제로 당시 수요사장단회의를 개최했다. 모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상황 속 변화를 예측하고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재계 관계자는 “LG전자가 당시 미국에 공장을 세운 것은 35년 만, 삼성전자는 33년 만이었다. 모두 ‘전략적 선택’이라는 입장이지만 인건비가 비싸고 노조 입김이 강한 미국에 수십 년 만에 가전공장을 세우겠다고 결정한 배경에는 분명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트럼프 VS 바이든, 기로에 선 국내기업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 출신인 조 바이든 후보의 접전 양상에 국내 기업들이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 기억을 되새겨보아도 그 파장이 적잖아서다. 두 후보가 조세, 친환경 정책 등 한국 기업들의 수출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공약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승부의 추’가 기우는 쪽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손익계산서’가 달라질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1970년대 이후 재선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의 공통점은 ‘경제상황 악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라며 “이번 대선 역시 최대 이슈는 ‘경제’이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이미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6월 5일 이후 각 후보의 주요 대선 공약, 사업적 영향 등에 대한 분석을 마친 상태다.

실제 LG그룹의 경우 조 바이든이 후보로 확정된 직후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에너지·화학 및 기후변화, 에너지 정책 등에서 변화가 많아질 것으로 보고 LG경제연구원을 통해 관련 분석을 마친 상태다. 미국에서 태양광 사업을 벌이는 한화, 미국 내 5G 인프라 주도권을 쥐려는 삼성전자 등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되면 “5G, 석유화학 기회”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4년 임기 동안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 미국 우선주의 등으로 인해 경영 불확실성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노골적으로 미국 투자를 요구하고, 중국 화웨이 등을 상대로 전례 없는 규제 조치를 이어올 때마다 매번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바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은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5세대(5G) 이동통신 투자 확대, 법인세 인하 등은 한국 기업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SK증권 등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정보통신기술(ICT) 공룡 기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공격적이고, 낮은 법인세 등 친기업 중심의 감세정책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5G 및 광대역망 구축 등 통신 인프라 약 1200조 원 투자, 기존 전통 산업 인프라에 1조 달러 투자 공약 등을 근거로 삼성전자 등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 분석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 사업으로 5G 통신장비 사업 등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9월 세계 1위 통신사업자인 미국 버라이즌과 8조 원에 육박하는 네트워크 장비 공급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중 무역갈등으로 촉발된 반(反) 화웨이 전선 기조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라며 “중국 화웨이는 여전히 글로벌 5G 네트워크 기지국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추격자인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후보자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석유 화학 등 전통 에너지를 중시하고 있어 국내 석유업체들에겐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성공 시 미국 내 셰일가스 생산량을 늘릴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셰일가스에서 나오는 에탄도 증가한다. 미국에 에탄분해설비(ECC)를 갖고 있는 롯데케미칼 등은 가격 경쟁력 상승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산 원유 수입을 해 온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석유화학업체도 가격경쟁력 강화로 수혜를 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후보자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법인세의 영구적 인하를 꾸준히 주장해왔다는 점도 현지에서 사업을 벌이는 국내 기업들에게는 긍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후 이미 2017년 말 법인세를 35%에서 21%로 낮췄고, 재선에 성공할 경우 21% 법인세를 유지할 뿐 아니라 연구개발(R&D) 및 투자에 대한 공제도 확대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면 “친환경 산업 힘받는다”
바이든 후보 정책의 큰 특징을 꼽으라면 ‘환경 및 청정 에너지, 기후변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바이든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정에 재가입하고, 주요국 기후 정상회의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주장해왔다. 재생에너지, 친환경 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 기업의 성장성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재계 관계자는 “두 후보자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친환경 산업의 성장 흐름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후보자가 당선될 경우 가속도가 붙어 퀀텀점프(대도약)을 이룰 기회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바이든 후보 공약을 살펴보면 △2030년 말까지 50만 개 이상의 신규 공공 충전소 배치 △전기 자동차 세액 공제 부활 △4년 간 건물 400만 채, 주택 200만 채 에너지 고효율 개조 △5억 개의 태양열 패널 설치 등이 담겨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미국 태양광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한화큐셀, LG전자 등이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놓여있다.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한화큐셀은 미국 주거용 태양광 시장 점유율 22% 상업용 태양광 시장 점유율 21.5%를 차지하고 있는 1위 사업자다. LG전자의 경우 주거용 시장에서 12.8%, 상업용 시장에서 5.1%를 차지해 5위를 기록 중이다. 이들 기업은 임기 동안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2조 달러(약 23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바이든 후보의 당선을 바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바이든 후보가 법인세를 현행 21%에서 28%로 인상하고 글로벌 기업에 대한 세율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부담이다. 그는 대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등 당선될 경우 환경·노동 친화 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다. 노조 이해관계가 큰 자동차, 철강이나 환경 문제에 민감한 화학, 반도체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성장친화적이고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반면 바이든 후보는 중산층 회복을 강조하며 온건한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있어 두 후보가 추구하는 정책 기조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라며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사업 전략 및 운영 계획 등에 크고작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일기자 dong@donga.com
홍석호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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