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대비 직장인, 취업걱정 청년층까지… 공인중개사 열풍

박재명 기자

입력 2020-11-02 03:00 수정 2020-11-0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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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험 34만명 접수, 22만명 응시… 접수자수 수능 고3생과 엇비슷
집값 올라 수수료 늘어난것도 영향… 자격증 발급 작년까지 42만명
전문가 “이미 공급과잉 상태” 지적


지난달 31일 공인중개사 시험이 치러진 서울 노원구 미래산업과학고에서 20, 30대 젊은이를 포함한 수험생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부산에 사는 대학원생 이모 씨(29·여)는 집 근처 한 학교를 찾았다.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이 치러지는 곳이다. 지난해 1차 시험에 합격한 이 씨는 이번에 2차에 도전했다. 대학원 과정 틈틈이 시간을 쪼개 부동산공법과 세법 등을 공부했다. 이 씨는 “등하교 때를 포함해 하루 3, 4시간 준비했다”며 “전공을 살려 취업하면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아예 공인중개사로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토요일 치러진 31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접수자는 전국적으로 34만3076명. 1983년 첫 시행 후 가장 많았다. 지난해(29만8227명)보다 약 4만5000명이나 늘었다.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고3 접수자(34만6673명·재수생 제외)와 비교해도 3000명가량 차이가 날 뿐이다. 실제 응시자도 마찬가지였다. 1일 한국산업인력공단 잠정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22만7186명(1·2차 합계)이 시험장을 찾았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은 1년에 한 번, 1·2차가 동시에 진행된다. 1차 합격자에게는 2년간 2차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과거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퇴직자와 주부가 주로 취득하는 자격증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취업난에 대비한 청년층의 준비가 늘었다. 특히 3040 응시자 증가가 눈에 띈다. 올해 시험 접수자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30대가 29%, 40대가 32%다. 도전자 10명 중 6명은 한창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30, 40대인 것이다. 이번 시험에 개그맨 서경석 씨(48)가 도전한 사실도 알려져 화제가 됐다.

30, 40대가 공인중개사에 도전하는 이유 중 하나로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을 꼽는 의견도 많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집값에 이어 최근 전셋값까지 오르면서 ‘한 건만 성사시켜도 먹고 산다’는 생각에 공인중개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경우 매매 중개보수 최대요율(0.9%)이 적용되는 주택가격 기준이 9억 원이다. 그런데 아파트 중위가격(중간값)은 이미 9억 원을 넘어섰다. 중개수수료 수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른 전문자격증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영향도 있다. 영어와 회계 등 까다로운 과목이 없어 기초학습이 부족해도 응시가 가능한 것이다. 이번에 1차 시험을 치른 직장인 박모 씨(40)는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관심을 갖게 됐다”며 “공인중개사만 해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작정 응시는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까지 공인중개사 자격증 발급 대상자는 총 42만 명이다. 그중 실제로 중개사무소를 개업한 사람은 11만 명에 불과하다. 시험 최종 합격률도 20∼30%로 높지 않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최근 직장인들의 ‘노후 필수 자격증’으로 여겨지지만 현재도 공급과잉 상태”라며 “영업력 없이 자격증만 취득해 개업하려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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