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아픔을 평화의 음악으로 감싸안다

철원=정미경 기자

입력 2020-10-28 03:00 수정 2020-10-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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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생태평화공원 음악회 현장

18일 강원 인제군 자연생태늪지 ‘비밀의 정원’에서 일출을 배경으로 열린 PLZ 페스티벌 행사에서 하모니카 박종성 씨(오른쪽)와 가야금 권귀진 씨 부부가 연주하는 모습. 단 2명의 노부부 관객을 위해 마련된 ‘특별 콘서트’였다. PLZ 페스티벌 제공
‘희귀한 음악회’가 마련됐다. 연주 도중 바람이 휙 불면서 흰색 악보들이 흩어져 하늘로 나부낀다. 연주자와 관객들은 이걸 주우러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자연 속에서 즐기는 음악회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25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비무장지대) 생태평화공원 음악회’가 바로 그런 행사다. 전쟁의 상흔이 감도는 DMZ 눈앞에서 열린 음악회지만 관객들의 얼굴에는 무거움보다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행사를 기획한 사단법인 PLZ 페스티벌 측도 참석자들에게 “단순히 음악을 듣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관객배우’의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행사는 DMZ 남방한계선 부근 3곳을 옮겨 다니며 하루 세 차례 열렸다. 40분 정도씩 미니 음악회 형식으로 무료로 진행됐다. 우리 시대 화두인 평화와 생태보존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느껴보자는 취지다.

생태습지 용양보에서 열린 오전 행사에선 6·25전쟁 당시 군인들이 건너다녔던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김진세 박지형 기타리스트 듀오가 영화 ‘시네마천국’ 배경음악 등을 연주했다. 또 다른 6·25 격전지 암정교에서는 임미정 PLZ 페스티벌 예술감독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테너 김세일 씨의 ‘그리운 금강산’ 등 우리 가곡을 선보였다. 오후 4시 같은 장소에선 땅거미가 지는 초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스타파이브 퀄텟의 마지막 현악 4중주 공연이 펼쳐졌다.

DMZ 인근은 민간인 통제구역이지만 이날 참석자들은 주최 측에 사전 신상정보만 제공하면 생태평화공원 입장이 가능했다. 임미정 감독은 “희망자들이 몰리면서 1회 공연당 50명씩으로 참석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관객은 오기 힘든 곳에서 세 차례 음악회를 모두 즐기고 돌아갔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보병사단 중 하나인 백골부대 제3보병사단 관할 지역이다. 음악을 듣다가 고개를 돌리면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군사 시설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사단의 고광일 정보담당 원사는 “클래식 음악회인 만큼 사격 소리나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전했다.

DMZ 행사는 7월부터 강원도 접경지역 5개 군에서 진행돼온 PLZ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다. 이달 18일 사진 명소로 통하는 인제군 ‘비밀의 정원’에 직접 들어가 단 2명의 노부부 관객을 위해 마련된 오전 7시 음악회는 소셜미디어 화제의 영상으로 통한다. PLZ 측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연 영상과 사진 등을 공개하고 있다.

PLZ 페스티벌은 11월 말까지 진행되며 12월 초 학술 포럼으로 마무리된다. 숲속, 갈대밭, 다리 위, 박물관 등 음악회가 열리는 곳은 다양하다. 공통점을 찾자면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역사의 질곡을 거치며 평화와 생태보존의 중요성을 전해줄 수 있는 장소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공연 참가는 PLZ 페스티벌 온라인 사이트(홈페이지, 페이스북)에 사전 신청을 하면 된다. 날씨 변화에 대비해 주최 측은 무릎담요, 후드집업, 핫팩, 선캡 등을 현장에서 나눠준다.

철원=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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