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공시 내용, 보고 부처 따라 제각각… 관리체계 일원화 시급

박성민 기자

입력 2020-10-28 03:00 수정 2020-10-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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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관리 투명성 높이려면

세계 최대 아동후원 비정부기구(NGO)인 ‘월드비전’ 한국 지부는 한동안 기부금 사용 내역을 궁금해하는 후원자들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올 5월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부실회계 논란 이후 기부금의 투명한 집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다. 문의 중에는 국세청에 공시한 자료와 기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기부금 수입 및 지출 내용이 다르다는 항의도 적지 않았다.

○ 같은 살림인데 보고 내용은 제각각

이는 기부금 모금 단체의 공시 기준과 항목이 보고를 받는 기관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기부금 단체들은 설립허가를 받은 소관 부처에 단체 운영 현황을 보고해야 하고, 국세청에는 이와 별도로 기부금 모금액 활용 실적 등을 제출한다. 국세청에 제출하는 자료도 정부 보조금을 포함하는 경우와 아닌 경우로 나뉜다.

예컨대 비영리 공익법인 A가 구청에 제출하는 ‘세입세출 보고서’에는 세입 항목에 이월금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국세청에 내는 ‘공익법인 결산공시’에는 이월금이 포함되지 않는다.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에는 정부 보조금이 빠진다. 운영비도 마찬가지다. 자치구에는 실제 집행 내역이 그대로 기재되지만, 국세청 제출 자료는 감가상각비를 고려해 비용이 많이 잡힌다.

이처럼 받은 돈과 쓴 돈이 공시마다 다른 것을 확인한 후원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부금 사용이 불투명하다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는 시민들이 기부를 주저하거나 중단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기부한 적이 있는 국민은 2011년 36.4%에서 지난해 25.6%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로 ‘기부단체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답한 비율은 2017년 8.9%에서 지난해 14.9%로 급증했다.

단체들도 같은 살림살이를 각기 다른 양식으로 보고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보겸 월드비전 재무팀장은 “총금액에 대한 기준과 세부 항목이 통일되지 않다 보니 사업비나 인건비가 제출하는 보고서마다 다르게 공시된다”며 “결국 기부 단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해외에선 결산 공시 및 기부단체 관리 일원화

전문가들은 기부금 단체의 결산 공시가 이처럼 제각기인 이유를 ‘부처 간 칸막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영리법인은 승인과 감독 주무기관이 부처별로 나뉘어 있다. 각 부처가 원하는 양식대로 운영 상태를 보고받으려 하다 보니 이 같은 혼란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호윤 공익법인 전문 회계사는 “주식회사의 경우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재무 상태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며 “기부 단체에 대해서도 2017년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만들었지만, 주무 부처에선 아직까지 옛 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외에서는 기부 단체들이 통일된 양식으로 보고하는 경우가 일반화돼 있다. 미국은 비영리법인부터 지정기부금단체까지 국세청(IRS)이 총괄하는데, 같은 공시 양식(Form 990)을 활용한다. 기부금 단체의 실적 등 공시 내용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공익법인을 평가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가이드스타, 채러티내비게이터 등이 공시 자료를 가공해 후원자들에게 알기 쉽게 공개하고 있다. 영국은 자선사업감독위원회(Charity Commission)라는 독립기구가 기부금 단체 등록부터 결산보고, 지정 취소 등 사후 관리를 전담한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기부금 관련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기부금품 모집관리는 행정안전부, 기부금단체 지정은 기획재정부, 결산 보고 등 감독은 국세청과 설립허가 주무부처로 나뉘어 있어 관리 주체가 불분명하다. 단체 성격에 따라 보건복지부 등 예산을 받는 부처의 감독도 받는다.

공시 시스템을 통일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배원기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까운 일본 역시 부처별로 보고받던 것을 30여 년 전에 하나로 통일했다”며 “기부 단체 결산 보고의 목적은 정부가 아닌 국민에게 기부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알린다는 것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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