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배터리 장착한 전자제품 될것… 반도체기술이 뒷받침 돼야” 20년전 예측

김현수 기자

입력 2020-10-27 03:00 수정 2020-10-2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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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 타계]
이건희, 1997년 본보 에세이 연재
“항상 쭈그리고 앉아 투구 리드, 포수같은 숨은 영웅 대접해야”


평소 말수가 없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기록광’이었다. 특히 동아일보에는 삼성그룹 회장 취임 10주년을 맞아 1997년 4∼7월 ‘21세기 앞에서’라는 에세이를 연재했다. 이를 바탕으로 나중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책을 펴냈다.

이 회장의 에세이는 놀라울 정도로 현재에도 적용되는 통찰력이 살아 있다는 평을 듣는다. 여성 인재 등용부터 경제를 정치 논리에서 해방시키고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20여 년 전에 자동차가 전자제품이 될 것이라고 미래를 예측하는 등 경영자로서의 혜안이 두드러지는 부분도 많았다. 이 회장은 “오늘날 자동차는 부품 가격으로 볼 때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아마 전자 기술,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라고 적었다. 이 회장은 당시 “정보기술(IT) 기기는 물론 자동차에도 배터리가 필요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천재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인재경영을 강조했지만 ‘포수형 인재’에 대한 애정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찬호 선동렬의 강속구가 청량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항상 쭈그리고 앉아 투구를 리드하는 포수 없는 야구를 상상할 수 있나. 드러나지 않아도 팀의 승패를 좌우하는 역할이 포수다.”

이유가 있었다. 일만 잘하는 사람은 상사만 바라보는 ‘해바라기형 관리자’를 양산하는데,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선 ‘휴먼 네트워크’, 즉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 똑똑한 사람보다 함께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강점을 갖게 된다. 포수처럼 그늘에 숨은 영웅이 대접받는 것이 선진기업, 선진국가다”라고 썼다.

이 회장은 예스맨(무조건 ‘예스’ 하는 사람), 스파이더맨(연줄에 기대려는 사람), 관료화된 인간(권위적인 사람), 화학비료형 인간(생색만 내는 사람)을 피해야 할 유형으로 들었다. “선친은 ‘기업은 곧 사람’이라고 수도 없이 말했다. 나는 조직을 망치는 사람을 겪었다. 이들은 능숙한 말솜씨로 여러 가지를 말하는데 대개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화법을 즐겨 쓴다. ‘내가 하겠다’가 아니라 ‘사원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주인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는 “경영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답한다”고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동일한 사물을 보면서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는 ‘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같은 영화를 주연, 조연, 감독의 입장에서 여러 번 본 이유다.

이 회장은 기업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 핵심은 기업을 제대로 키우는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기업을 잘못 경영해 부실하게 만드는 것은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업인은 모름지기 기업경영의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기업을 알차고 살찌게 만들어 가야 한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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