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단 2회 공연 아쉬움 속 흑백 드로잉 무대 인상적

유형종 음악·무용칼럼니스트

입력 2020-10-26 03:00 수정 2020-10-26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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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

‘피델리오’ 2막에서 아내 레오노레(소프라노 서선영·왼쪽)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감옥에서 구출된 플로레스탄(테너 국윤종)이 레오노레와 손을 맞잡고 기쁨의 2중창을 부르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올해 클래식 음악계 최대 이슈는 ‘악성(樂聖)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지만 관련 공연 대부분이 코로나19 탓에 취소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이 세계적으로 지속됐다. 그런 가운데 국립오페라단의 ‘피델리오’는 정말 귀중한 축복이다. 베토벤 유일의 오페라 ‘피델리오’는 정치적 이유로 지하 비밀감옥에 수감된 남편 플로레스탄을 피델리오란 이름으로 남장한 아내 레오노레가 ‘위장 취업’하여 구출한다는 이야기다. 부부애를 내세웠지만 베토벤이 교향곡 5번과 9번에서도 줄기차게 추구했던 정의와 자유, 구원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담고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은 공연계 상황을 감안하여 무대장치를 없앤 콘서트 오페라로 진행됐는데, 그 대신 사용한 시리아 출신 드로잉 아티스트 케보크 무라드의 흑백 드로잉이 기대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세비야의 감옥 전경과 그 공간 여기저기를 드로잉으로 투사하고, 드로잉의 진행 과정이나 그림 속 공간의 상하좌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몰입도를 높였다. 2막이 시작되면서 깊은 지하로 이동하는 장면은 그중에서도 압권이었다. 흑백의 색조는 오페라 속 어둠(속박)과 빛(자유)의 대비와도 어울리고 의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2회 공연 중 첫날인 23일 공연을 봤는데, 출입국이 자유로운 상황이었다면 첫날 두 주역으로 아마 외국의 유명 가수가 출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프라노 서선영(레오노레)과 테너 국윤종(플로레스탄)은 충분히 훌륭했다. 서선영은 전설의 소프라노 군둘라 야노비츠를 연상시키는 고결한 소리를 그보다 더 큰 성량으로 뽑아냈고, 국윤종은 정통 독일식 헬덴(영웅적) 테너의 소리는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묵직한 음색을 더하여 비극적 캐릭터의 상황을 잘 살렸다. 악당 돈 피차로 역의 오동규도 단단했고, 다른 조역들의 완성도도 높았다. 2막 1장과 2장 사이에 이 오페라의 서곡으로 작곡됐다가 독립된 곡으로 남은 ‘레오노레 서곡 3번’을 연주한 것은 베토벤의 지시 사항은 아니지만 극적인 감동을 완벽하게 끌어올렸다.

90점 이상의 훌륭한 공연이었지만 아쉬운 점도 물론 있었다. 탁월한 드로잉을 배경으로 출연진의 동선과 연기를 더 적극적으로 펼쳤더라면 콘서트 오페라의 한계를 얼마든지 극복했을 것이다. 지하에서 수년째 쇠사슬에 묶여 있는 플로레스탄에게 흰 셔츠를 입힌 것도 어색했다. 세바스티안 랑레싱이 지휘한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좀 더 어두운 음색을 냈으면 싶었다. 둘째 날에는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지만 호른과 트럼펫의 실수가 자주 반복됐다. 가장 아쉬운 점은 이런 좋은 공연이 단 두 번의 무대로 종료되고 말았다는 현실이다.

유형종 음악·무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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