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1명이 10만명 먹여 살린다”… 초일류 삼성 키운 인재경영

김현수 기자 , 서동일 기자

입력 2020-10-26 03:00 수정 2020-10-2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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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 타계]경영 키워드 ‘천재-여성-경청’

이건희 회장 유년 시절
“회장으로서 제일 힘든 일은 사람을 키우고, 쓰고, 평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국내외 인터뷰에서 ‘사람’ 대목이 나오면 늘 이처럼 말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믿었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 경쟁의 시대”라고 했던 2002년 동아일보 인터뷰는 다른 기업에도 큰 인사이트를 줬다.

이 회장은 많이 들으며 비전을 세운 경영자로도 유명하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의 리더십을 두고 ‘경청의 리더십’이라고 했다. “회장님은 늘 ‘나는 임원들보다 시간이 있고, 많은 전문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더 많이 듣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경영진이 단기적 성과에 매진할 때 오너는 끊임없이 미래 비전을 찾고 글로벌 경제 흐름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 신경영 이후의 키워드 “천재를 키워야 한다”

2003년의 일이다. “사장급 연봉을 주는 인력을 많이 확보했다”고 보고한 계열사 사장에게 이 회장은 “사장급 연봉이 아니라 사장의 2, 3배 연봉을 받는 인재를 스카우트하라”고 질타했다. 이 회장은 여성 인력 활용에도 공을 들였다. 여성 임원과의 오찬에서 “여성 임원이 사장까지 돼야 한다”며 도전하도록 격려했다. 이 회장은 “여성은 배려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여성 인력을 안 쓰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도 했다.

이공계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오늘날 초일류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 “중국이 저렇게 갑자기 큰 것은 장쩌민, 후진타오 같은 이공계 출신들이 최고 지도부에 포진해 과학기술 분야의 엘리트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똑똑한 학생들이 법대나 의대에만 가려고 하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기술 경쟁력,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국력이 쇠약해지고 만다”고 우려했다.

한국 교육 제도에도 관심이 컸다. 이 회장은 “천재는 확률적으로 1만 명, 10만 명에 한 명 나올 정도의 사람이기에, 대한민국에서 잘해야 400∼500명”이라며 “그런데 이런 천재들은 보통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일반적인 교육으로는 천재성을 오히려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했다.

○ “나는 시간이 있고, 전문가를 안다. 그래서 듣는다”

“회장님 곁에는 다양한 이름의 ‘고문’들이 많았다.”

삼성 전현직 임원들은 이 회장 주변에는 삼성 조직에 딱히 속하지 않은 임원들이 많았다고 했다. 이들로부터 조언을 받으며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1993년 삼성의 체질을 바꾼 신경영 선언 뒤에는 후쿠다 다미오 당시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의 ‘후쿠다 보고서’가 있었다. 이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후쿠다 고문과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이어지는 밤샘회의를 벌인 뒤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 신경영 선언을 했다.

아버지와 함께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정할 때에도, 미래를 내다본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때에도 이 회장은 ‘경청’했다. 특히 1987년 4Mb D램 개발 당시 반도체 설계 공법을 쌓는 방식으로 결정한 일도 유명하다. 다른 반도체 회사들이 집적회로를 웨이퍼를 파서(트렌치형) 넣을 때 웨이퍼에 쌓았기(스택형) 때문에 대용량을 남보다 빨리 개발해 1992년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삼성전자 출신의 사장급 인사는 “반도체 공법 하나를 정할 때에도 주니어 기술자들 이야기까지 귀담아듣고 공부한 뒤 결정을 내렸다”고 회상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서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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