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그림-영화로 본 게임 미디어의 예술적 가능성

동아일보

입력 2020-10-26 03:00 수정 2020-10-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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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가톨릭대 교수

윤혜영 가톨릭대 교수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앞선 미디어의 변화는 새로운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새로운 미디어인 게임 역시 지나간 시대를 풍미했던 그림과 현시대의 총아인 영화라는 시각적 미디어의 변화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림의 역사에서 미디어의 발전을 추동한 욕망은 인간의 눈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원근법이나 번짐 기법 같은 회화 기법 발전과 바로크 양식, 자연주의, 사실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사조의 변화는 이러한 욕망의 변주이다.

하지만 19세기에 사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눈처럼 보는 일은 더 이상 그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대신 그림은 사진은 할 수 없고, 그림만 할 수 있는 기법들을 개발해야 했고 인상파, 입체파, 추상파와 같은 사조의 등장이 그 결과였다.

그림에서 표현 기법의 도약적인 변화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면, 영화에서 표현 기법의 변화는 카메라 기술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 무성영화, 흑백영화 시절에 등장한 표현 기법은 카메라에 의존하는 대신 편집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몽타주’ 기법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가 더 깊이, 더 자세하게 피사체를 화면에 담아낼 수 있게 되면서 화면 연출과 촬영에 더 초점을 맞춘 ‘미장센’ 기법이 등장한 것이다.

사진의 등장이 그림의 정체성을 흔드는 변화였다면, 컴퓨터 그래픽(CG)의 발전은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영화의 미디어적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디즈니가 90년대를 풍미했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실사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라이언킹’은 영화 전체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됐다. 컴퓨터 그래픽도 일종의 그림인데 그렇다면 애니메이션 ‘라이언킹’과 영화 ‘라이언킹’의 차이는 무엇일까.

현대 미술에서 그림의 변화는 그림 미디어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림은 조각과 결합하기도 하고, TV와 결합하기도 하며, 게임과 결합하기도 한다. 또한 현대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은 그림과 영화와 같은 미디어가 변화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변화는 미디어 간의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림이나 영화와는 다르게 컴퓨터를 모태로 하는 게임 미디어에 있어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은 변화의 요구가 아니라 미디어 자체의 본질이다. 지금까지 영화가 종합 예술로 일컬어졌지만, 게임 안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미디어와 문화가 융합된다. 그림, 영상, 문자와 같은 시각 미디어와 소리, 음악과 같은 청각 미디어뿐만 아니라 VR(가상현실) 기술은 촉각과 공감각까지 게임 안으로 끌어들인다. 대중적인 놀이 미디어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경쟁과 전투의 시뮬레이션이 게임의 주가 되기는 했지만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게임 환경 안에서 모든 종류의 문화가 시뮬레이션 될 수 있다.

미술이 게임과 결합한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내놓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최근에 ‘넷플릭스’는 영화와 게임을 결합한 ‘밴더스내치’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미술과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컴퓨터로 집결하는 시대에 게임은 단순히 새로운 미디어가 아니라, 모든 예술 장르의 새로운 표현 기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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