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임신 14주까지 낙태허용’ 입법 예고…의료계 일부 우려 표명

전주영 기자 , 이소정 기자

입력 2020-10-07 20:54 수정 2020-10-0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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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낙태죄 처벌 조항은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임신 여성의 의사만으로 낙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7일 입법예고했다. 임신 15~24주의 경우엔 몇 가지 조건을 붙여 낙태를 허용했다. 임신 24주를 지난 낙태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강간이나 준간강에 의한 임신, 근친관계 간 임신 등 일정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24주 이내에서 낙태를 허용한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었던 현행 모자보건법상 ‘배우자 동의’ 요건은 삭제됐다.

법률 개정안은 임신 15~24주인 여성이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심각한 곤경에 처하거나 처할 우려가 있으면 낙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유’에 따른 낙태 허용은 현행 모자보건법에는 없는 내용이다.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유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인지는 개정안에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몇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아이를 키울만한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상대 남성과 결혼할 계획이 없는 경우 등이다. 법무부도 헌재의 이같은 명시적 사유에 따라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하려면 보건소 등 지정기관에서 상담을 받아야한다. 지정기관에서 임신 유지·종결에 관한 ‘상담사실 확인서’를 발급받은 뒤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개정안은 임신한 여성이 법률이 정한 상당 상담 절차에 따라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낙태를 결정했을 경우에는 사회적 경제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본다. 개정안이 사실상 24주 이내의 낙태를 전면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신 15~24주 여성이라면 지정기관 상담만 의무화됐을 뿐 본인의 의지로 낙태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는 게 보건복지의 설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담은 사회적 경제적 사유의 사실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절차 안내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며 “상담사가 상담사실확인서에 경제적 사유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개정안은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 없이도 낙태가 가능해진다. 만 16세 이상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기를 거부하면 상담사실 확인서만으로 낙태할 수 있다. 만 16세 미만은 상담사실확인서 외에 법정대리인이 없거나 법정대리인의 폭행·협박 등 학대로 동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공적자료가 있으면 낙태가 가능하다. 의사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낙태수술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대신 여성의 낙태시술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의사는 시술요청을 거부할 경우 그 즉시 임신·출산 상담기관을 임신 여성에게 안내해야 한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기형아를 임신인 경우엔 14주 이내에 그 사실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영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16~18주 사이에 태아의 주요 장기에서 기형이 발견될 수 있다”며 “여성의 선택권을 넓혀주자는 취지라면 14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전문가 단체와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정부가 올해 한번도 산부인과의사회와 회의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발표했다”며 “학회와 함께 자발적으로 10~12주 정도가 적절하다는 단일안을 냈지만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7일 입장문을 내고 “임신 주수는 초음파검사로 ‘추정’할 뿐 정확하게 특정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형사처벌 기준이 모호한 이번 개정안은 위헌”이라며 “사실상 낙태죄를 부활시킨 법안이므로 즉시 철회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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