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반복 업무는 로봇에 맡기고 고부가가치 창출 집중

김윤진 기자

입력 2020-10-07 03:00 수정 2020-10-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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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스스로 필요한 봇 개발… 450개 업무 프로세스 자동화
전화 영업 등 로봇이 척척 해내… 디지털 툴 이용 변화의 중심에 서
시니어들 한번 배우면 더 적극적… 65세 임원도 성공하자 공감대 쑥
감원 아닌 생산성 높이기가 목표… 사람에 투자해 디지털 인력 양성


2018년 10월 싱가포르 최대 이동통신사인 싱가포르텔레콤(싱텔)의 최고디지털책임자는 직원 한 명당 로봇 한 대, 즉 ‘1인 1로봇’의 비전을 던졌다. 2016년 말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해 오던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의 전사적 확산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계기는 2018년 열린 러시아 월드컵이었다. 통신회사의 경우 월드컵, 올림픽 등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시즌권 판매 수요, 서비스 문의가 급증하면서 순간적으로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임시직을 고용하지 않고 밀려드는 수요에 대응할 수는 없을까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회사가 눈을 돌린 곳이 바로 로봇이었다.

이에 싱텔은 소비자 부문에 약 2주간 훈련한 전화 영업 봇을 배치한 뒤 싱텔 핫라인으로 들어오는 월드컵 패키지 구독 문의에 응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추가적인 아르바이트생이나 계약직 채용 없이 로봇만으로 약 70%의 질의응답과 결제를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경험에서 자신감을 얻은 싱텔그룹은 이후 싱가포르 본사의 300여 개, 호주 자회사 ‘옵터스’의 150여 개 업무 프로세스를 RPA 기반으로 자동화하기 시작했으며 2년간 50만 시간의 노동 시간을 절감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월 1호(304호)에 실린 싱텔의 시론 룸 디지털 오피스 디렉터, 제니 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디렉터 등 RPA 전담 실무진과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2만 명이 넘는 직원 모두가 로봇을 개인화할 수 있는가.

“싱텔의 ‘모든 직원을 위한 봇(Bot For Every Employee)’ 프로그램의 취지는 모든 직원이 일상적, 반복적 업무에서 벗어나 고객과 조직에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고부가가치 활동에 집중하도록 하는 데 있다.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직원들이 스스로 봇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해 ‘시민 개발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분기당 5, 6번씩 워크숍을 열어 직원들에게 RPA 활용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이틀간의 해커톤에서는 실제 봇을 개발해보도록 지도한다. 두 번째는 개발에 관심 없는 이들을 위해 이미 생성된 봇들의 라이브러리 혹은 일종의 앱스토어(AppStore)를 구축한 뒤 누구나 이 봇들에 접근해 자신의 업무를 자동화하고 RPA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밀레니얼세대 직원들이 RPA 과제 참여에 더 적극적인가.

“밀레니얼 세대가 당연히 신기술에 더 열려 있고, 학습과 채택 속도도 더 빠르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툴에 대한 거부감이 작은 밀레니얼이 입사해 주축으로 자리 잡아가는 지금이 RPA 도입과 확산의 적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니어들의 경우 초기 채택 속도는 약간 더딜지 몰라도 한번 RPA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다른 영역에 접목하거나 응용하는 데는 훨씬 더 적극적이다.”

상가포르텔레콤의 인력 개발 담당 임원인 발레리 영 탄(왼쪽에서 두 번째)이 직접 개발한 ‘발봇’은 싱텔 RPA 해커톤에서 2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텔레콤 제공
―세대 불문, 전 직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관건일 것 같다.

“RPA를 직원들에게 빠르게 보급할 수 있었던 데는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의 힘이 컸다. 싱텔에서 46년간 근무해온 HR 조직의 교육 담당 임원인 발레리 영 탄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2019년 코딩에 관해 전혀 모르던 65세 여성 임원이 4일간의 봇 메이커 훈련, 이틀에 걸친 해커톤을 경험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발 봇(bot)’을 직접 개발했다는 게 화제가 되면서 RPA를 둘러싼 사내 인식 제고에 도움을 줬다. 이처럼 비개발 직군의 시니어가 솔선수범해 누구나 RPA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업무에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하나의 변곡점이 됐다.”


―현업 직원이 봇 개발을 하는 ‘시민 개발자’가 되면 무엇이 좋은가.

“업무 프로세스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직원들이 봇 개발에 도전하고, 실제 체험해보는 것이 ‘RPA가 필요하다’는 백 마디 주장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그래야 봇이 가지는 잠재력에 눈을 뜨고 자동화가 개인과 조직에 가져올 기회를 상상할 수 있다. 가령 발레리의 경우 오랜 기간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인력 교육 및 개발 업무가 어떻게 문서 기반에서 디지털 기반으로 진화하는지를 목격해 왔고, HR 전문가로서 평소 가지고 있던 고민이 있었다. 그가 변화의 중심에 선 비결은 디지털 툴을 활용해 이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데 있다.”


―정보기술(IT) 관련 지식이 없어 자동화에 부담을 느끼는 직원은 없나.

“지금까지 대면으로 워크숍, 해커톤을 진행하는 동안 봇 개발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끝내 실패하거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사람은 본 적 없다. 물론 코로나19라는 변수가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은 있다. 훈련의 90% 이상이 원격으로 진행되는 만큼 교육 구조와 내용을 온라인 환경에 맞게 조정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초창기 어려움도 결국엔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RPA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려는 한국 기업들에 조언을 한다면….

“비즈니스 프로세스 자동화도 결국 직원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위 ‘노가다’를 없애 더 생산적으로 일하고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싱텔에서는 기술이 아닌 사람을 우선순위에 놓는다. ‘로봇’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RPA의 목표는 단기적인 업무 효율화보다는 장기적으로 디지털 혁신에 동참할 인력을 기르는 데 있다고 본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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