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위해 책값 할인폭 확대” vs “창작 위축돼 독자 되레 손해”[인사이드&인사이트]

최고야 문화부 기자

입력 2020-10-05 03:00 수정 2020-10-0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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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0일 일몰 도서정가제 개정 논란



최고야 문화부 기자
2014년 개정된 도서정가제의 일몰 시점이 내달 20일로 다가왔다. 전국 어디서나 균일한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도록 해 출판생태계를 안정화하고자 한 것이 현행 도서정가제의 취지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변화하는 출판 환경을 반영해 3년에 한 번씩 도서정가제를 개정하도록 하고 있다.

2017년에는 법 개정 없이 현행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출판업계 안팎이 시끄럽다. 매번 불거지는 할인율 완화를 통한 소비자 권익 문제와 함께 몇 년 새 크게 성장한 웹툰, 웹소설 등 전자 콘텐츠 업계의 이해관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와 범출판계, 그리고 종이책 업계와 전자 콘텐츠 업계 간 여러 갈등 양상 속에 어떻게 해야 서로 ‘윈윈’하는 도서정가제를 정립해갈 수 있을까.

○ 도서정가제 어떻게 변해왔나
도서정가제는 2003년 2월 법제화된 이후 두 차례 변화를 겪었다. 2003년 출판 및 인쇄 진흥법은 온라인 서점에서만 신간(발간 1년 이내)을 10% 할인하도록 했다. 발간 1년이 넘은 책에 대해선 출판사가 자율적으로 할인율을 정하도록 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할인이 불가했다. 2007년 10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으로 개정되면서 신간의 정의를 ‘1년 이내’에서 ‘1년 6개월 이내’로 바꾸고 오프라인 서점에도 할인을 허용했다.

그러자 출판사들이 발간 1년 6개월 이상 책들을 무제한 할인하는 출혈경쟁을 벌였고,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2014년 현행 도서정가제를 도입했다.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모든 책을 최대 15%만 할인(직접할인 10%, 포인트 적립 등 간접할인 5%)하도록 했다. 출간 1년 6개월 이상 구간은 출판사가 정가를 낮출 수 있는 재정가 제도를 뒀다.

도서정가제 일몰 기한이 다가오자 정부는 업계와 지난해부터 약 1년간 16차례에 걸친 협의를 거쳤다. 협의안은 현행 제도를 대부분 유지하되 △구간의 재정가 기한을 기존 출간 1년 6개월에서 1년으로 단축 △도서관 구매도서 할인율은 10%만 허용 등이었다.

○ “소비자 권익 우선” VS “출판 생태계 지켜야”
협상안대로 개정이 이뤄지나 싶었지만, 7월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소비자가 책을 싸게 살 수 있도록 하자며 논의를 재개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지난해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서명한 여파가 이어지면서다. 소비자의 권익을 주장하는 ‘완반모(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의 국민권익위원회 청원 활동 등도 여론에 영향을 줬다.

문체부는 9월 3, 18일에 걸쳐 출판업계와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문체부가 인정하는 도서전에서 판매하는 도서는 정가제 적용 제외 △전자책 할인율 기존 15%에서 20%로 완화 △전자 콘텐츠(웹툰, 웹소설 등)는 완결된 것만 도서정가제 적용 △출간 3년이 지나고 최근 1년간 1권도 팔리지 않은 책은 무한 할인 적용 등을 제안했다.

그러자 이번엔 36개 출판 단체가 참여한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가 “졸속 개정안에 반대한다”며 반발했다. 고흥식 한국출판인회의 사무국장은 “전자책 할인, 도서전 판매 도서 할인 등은 1년간 협의 과정에서 허용하지 않기로 이미 정리된 얘기들”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1년간 유통되지 않은 책의 할인율을 높이는 것 또한 재정가 제도가 있어 무용하다는 입장이다.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측은 시장논리에 따라 상품 가격은 수요와 공급, 공급자들의 경쟁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재광 완반모 대표는 “앞서 개정안을 논의한 민관협의체는 사실상 출판 이익단체로만 구성됐다. 소비자 권익을 고려해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출판계는 책은 시장논리만 적용하는 상품이 아니라 문화적 공공재의 특수성을 가진다는 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4년 이전에는 구간의 무한 할인율 적용으로 신간이 아닌 구간들이 베스트셀러를 점령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이는 신간 출간 위축으로 이어졌고, 결국 출판시장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손해는 독자들에게도 돌아간다”며 “또 길에서 책을 쌓아놓고 1000원, 2000원에 파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효과 있었나?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소비자단체 등은 도서정가제가 책값 상승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출판계는 지난 6년간 책값이 우려했던 것만큼 많이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인 2015∼2019년 책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4.18%였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가 4.85% 오른 것보다는 적게 올랐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온오프라인 대형서점 쏠림 현상이 드라마틱하게 완화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서점 통계(2년마다 조사)에 따르면 지역서점은 2013년 2331곳에서 2019년 1968곳으로 줄었다. 다만 다양성의 상징인 독립서점이 2015년 49개, 2017년 301개, 2019년 344개로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다.

도서정가제 개정 효과는 독서인구 감소세로 인한 전체 도서시장의 침체, 디지털 매체 다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있어 성공과 실패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7년 출판사 매출은 3조9122억 원, 오프라인 서점은 1조3090억 원으로 각각 전년대비 1.3%, 5.5% 감소했다. 2014년 법 개정 전 일부 서점과 출판사가 할인율 제한으로 매출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법 개정을 반대하기도 했다. 다만 온라인 서점의 같은 기간 매출은 1조4846억 원으로 전년대비 8.4% 증가했다.

○ 웹툰·웹소설…복잡한 전자 콘텐츠 업계 속내
현행 도서정가제 유지와 완화를 두고 정부와 출판업계의 줄다리기가 팽팽한 상황이지만, 출판계 내부 의견이 갈리는 점도 큰 난관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전자책 매출은 2018년 2702억2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23.2% 성장했다.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것에 비해 웹소설, 웹툰 등의 분야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다.

전자 콘텐츠도 현행법상 출판물이어서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는다. 출판물은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발급받는데, 회차마다 웹에 업로드 되는 전자콘텐츠 특성상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종이책 업계에서는 ISBN 발급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엄중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웹툰 업계는 이참에 산업 특성에 맞춰 도서정가제 대신 웹툰만의 별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웹툰협회 관계자는 “만화진흥법을 개정해 웹툰이라는 창작물의 정의를 세우고, 웹툰만의 고유 식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현행 도서정가제를 따르면 미리보기,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도 적용 불가능한 만큼 별도 제도가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웹소설 업계의 경우 중소형 플랫폼 업체와 웹소설 작가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소형 전자책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웹소설은 분명한 출판물이므로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할인율 폭을 늘리는 것은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 업체들의 덩치만 키울 뿐”이라고 했다. 또 웹툰업계가 ISBN을 받지 않으려면 출판물에 적용되는 부가세 면세 혜택도 포기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웹소설 작가들 모임인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웹소설은 종이책과 시장 자체가 다르다”며 도서정가제 적용을 반대했다. 이들은 “규제에 밀려 마케팅 할인을 하지 못하면 작가의 수익이 현저히 줄어들고, 신진 작가의 시장 진입도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주요 전자콘텐츠 플랫폼인 네이버나 카카오 등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 일몰까지 50일 남짓…“주체 간 협의가 최선”
전문가들은 정부, 업계, 소비자가 모두 참여한 협의체 안에서 최소한의 합의부터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책을 상품과 문화적 공공재 중 어느 만큼씩 비중을 둬서 볼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를 만들고, 이에 따라 정가제의 적용 방식과 범위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입장이 다른 전자콘텐츠 업계 내 의견 정리도 시급하다. 문체부가 지난해 실시한 출판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전자책 사업자 응답자(308명) 중 63.6%가 ‘모든 전자책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지만, 그러면 어떤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업계 내 추가적 의견수렴은 진행되지 않았다.

해외사례를 참고한 연구와 분석도 필요하다. 도서정가제를 도입한 전 세계 16개국 중 프랑스와 독일은 종이책 신간(각 2년, 1년 6개월 기준)과 전자책 모두에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구간은 무제한 할인이 가능하다. 반면 법이 아닌 업계협약에 따라 종이책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일본은 전자책은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낸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소장은 “전자책은 종이책과는 전혀 다른 웹 생태계가 이미 구축돼 있다. 종이책 관점의 규율을 강조해선 안 된다”며 “소비자 권익 문제 역시도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한 만큼 업계에서 최소한의 방향성과 제도 적용범위 등을 먼저 합의하고 대화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최고야 문화부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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