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 믿고 맡길 수 있나…국민연금 운용역 4명 ‘집단 대마’

장윤정 기자 , 전주=박영민 기자 , 강유현 기자

입력 2020-09-18 17:38 수정 2020-09-1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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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사옥.2017.10.19/뉴스1 © News1

국민들의 노후자금 752조 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운용역 4명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운용역은 증권사의 펀드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한다.

18일 경찰과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대체투자 담당 책임운용역 A 씨와 전임 운용역 B 씨 등 운용역 4명이 대마초 흡입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같은 실 소속 30대 남성인 이들 4명은 2~6월 피의자 중 한 명이 거주하는 전북 전주의 한 오피스텔에서 여러 차례 대마초를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대마초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연금은 7월 중순 대마초 흡입 혐의를 적발하고 이들 4명을 관할 경찰서에 고발했다. 또 이달 9일 전원 해임했다. A 씨 등은 경찰 조사에서 대마초를 피운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이들의 소변과 모발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분석한 결과 일부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들이 대마초를 피운 시기는 전임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중도 사퇴해 이사장 자리가 공석이었던 때다. 국민연금 측은 “전 직원 공직기강 교육 실시 및 위반자에 대한 퇴출기준 강화 등 고강도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 잊을만하면 터지는 기강해이

세계 3위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올해 1월부터 7개월간 ‘수장 공백’ 상태에 있는 동안 752조 원 규모의 국민 노후자금을 맡아서 굴리는 기금운용본부 직원들이 마약류인 대마초까지 손을 댔다. 직원 이탈과 일탈로 국민연금 조직 전반에 대한 진단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30대 동갑내기 운용역의 일탈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2~6월 대마초를 흡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기금운용본부 직원은 유럽인프라투자팀 소속 33살 동갑내기로 유럽 대체투자를 담당하는 책임운용역 1명, 전임운용역 3명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의 소변과 모발에서 일부 대마초 흡연 양성 반응이 나왔다. 추가 분석 결과는 이달 안에 모두 나올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입건된 4명에 대한 1차 조사를 마치고 국과수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과를 보고 추가 조사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선 수차례 기강해이 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에는 기금운용본부 직원 114명이 2013~2017년 해외 위탁운용사들로부터 해외 연수비용 총 8억4700만 원을 지원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2017년엔 퇴직예정자 3명이 기금운용과 관련한 기밀 정보를 개인 컴퓨터와 외장하드 등에 저장한 것이 드러났다. 2016년엔 해외 부동산 개발사업에 참여하면서 내부 승인 없이 보증 계약을 체결한 일도 적발됐다. 징계는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2012~2016년 국민연금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성 관련 비위, 금품수수, 기밀유출 등 비위행위 57건 중 54건에 대한 징계 수준은 견책과 감봉 및 정직 1~3개월 등 낮은 수준이었다.


● 낙하산 이사장 논란에 인력 유출과 기강 해이 심각


국민연금 기금운용 규모는 734조 원으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372조 원, 네덜란드연기금(APG) 587조 원 등에 비해 크다. 해외 유학파 출신 젊은 운용역들의 일탈은 김성주 전 이사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월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한 뒤 지난달 31일 21대 총선에서 낙석한 김용진 전 기획재정경제부 2차관이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7개월 수장 공백’ 상황 속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를 두고 ‘낙하산 인사’ 논란도 불거졌다.

국민연금이 2017년 균형발전을 이유로 전북 전주로 이전하면서 국민의 노후자산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안효준 기금운용본부장(CIO)의 임기 만료일은 10월 8일이다. 연임 또는 후임자 공고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안 본부장도 강면욱 전 본부장이 사퇴한 이후 1년 3개월간 공석으로 남겨졌던 자리에 임명됐다. 현재 기금운용역의 정원은 288명이지만 현재 인원은 260여 명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2017~2018년 2년간 총 54명이 퇴사했다. 지난해에도 20명이 회사를 나갔다. 국민연금 전직 고위 관계자는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보니 그나마 있는 직원들이라도 나가버릴까 우려해 엄격한 잣대로 직원들을 관리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기강해이 논란이 불거진 국민연금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내부 직원 통제도 되지 않는 조직이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원들이 스스로 국민 돈을 굴린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윤정 기자 yunjng@donga.com
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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