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재능을 ‘이메일’로 팝니다

김기윤 기자

입력 2020-09-15 03:00:00 수정 2020-09-15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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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시대 ‘메일링 서비스’ 유행
창작에 목마른 신진 작가-예술가
대형 출판사와 갤러리 거치지 않고 구독자 취향에 맞는 볼거리 제공
문학 패션 음악 사진 등 장르 다양… 저렴한 금액으로 볼 수 있어 인기


매주 목요일 만화를 e메일로 배달하는 ‘초여름상점’의 메일링 서비스, 시사 뉴스레터를 표방하는 ‘뉴닉’, 주 1회 이상 드로잉 메일링 서비스를 하기 위해 현재 신청자를 받고 있는 트위터 계정 ‘_paint_the_moon’.(왼쪽부터) 인스타그램 @chohajum, NEWNEEK, 트위터 ‘_paint_the_moon’ 페이지 캡처.
“제 재능을 이메일로 받아보실래요?”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기본으로 돌아가다)’ 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마케팅, 접촉 등이 줄어든 언택트 시대, 가장 기본적인 ‘메일링 서비스’가 다시 각광받고 있다.

한때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밀려 ‘업무용’으로 국한됐던 이메일은 ‘소량 생산, 취향 최적화’를 무기로 삼아 콘텐츠 창작자와 고객 사이에서 소리 없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메일링 서비스가 활성화된 문학계를 넘어 최근 음악, 패션, 공연, 웹툰, 영상, 그림 등으로 분야를 확장 중이다.

최근 클래식 음악 추천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 중인 ‘어쿠스틱 위클리(Acoustic Weekly)’의 ‘어? 아!(Oh? Ah)’ 시리즈는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 한 곡과 이에 대한 배경 설명을 제공하는 콘텐츠다. 운영자는 곡에 얽힌 짤막한 설명을 1000자 내외의 글로 풀어낸다. 해당 곡을 연주한 오케스트라나 지휘자의 영상 유튜브 링크도 덧붙이면 하나의 ‘메일링 콘텐츠’가 완성된다.

방송,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가수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을 편집해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인 2차 창작물도 인기다. 트위터 계정 ‘Jimicaneatjelly’는 최근 ‘지미집캠 vol.2’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며 구독자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현민의 ‘목요일 어떻습니까’는 ‘영화 에세이 메일링’을 표방하며 최근까지 목요일마다 글을 전송했다. 직장인 이모 씨(34)는 “그동안 메일링 콘텐츠가 수신함에 가득 차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심심해서 그런지 바로바로 읽게 됐다”고 밝혔다.

소량의 삽화나 사진을 전하는 미술, 웹툰, 패션 분야에서도 메일링은 강세다. 인스타그램 ‘초여름상점’은 매주 만화를 전송하고 있으며, 디자인 잡지를 표방한 ‘디독’은 해외 디자인 기사를 번역해 뉴스레터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한 드로잉 작가는 “코로나19로 대면 강의, 수업이 줄어들면서 생계가 빠듯해졌는데 그나마 메일링을 통해 일부 수익을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공연계에서는 창작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으로 메일링이 이용되기도 한다. 서울 신촌극장에서 8월 말 공연을 준비하다 끝내 무산된 연극 ‘로데오’의 전서아 연출 겸 작가는 무대에서 전할 이야기를 6월부터 메일링으로 ‘잠재적 관객’에게 전해왔다. 구독료는 전액 제작비로 사용한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앞서 ‘일간 이슬아’를 시작으로 수많은 작가들이 글을 전하는 문학계에서 메일링은 이미 작가들의 ‘새 유통 판로’로 자리 잡았다.

메일링은 한때 유행했던 구독경제와는 비용, 규모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대기업이나 유통망을 갖춘 대형 콘텐츠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비싼 1만 원 이상의 구독료를 요구하던 것과 달리 메일링은 소규모,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전한다. 적게는 편당 500원부터 6개월 1만 원까지 비교적 저렴하게 형성돼 있다. 구독료를 사실상 무료 또는 고객 자율에 맡기는 곳도 상당히 많다.

편리함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점도 인기에 한몫한다. 온라인 링크에서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메일링 계약’은 완료된다. 창작자와 고객이 서로 전혀 알지 못해도 취향만 맞으면 뭐든 ‘오케이‘다. 현실 속 대면 없이 이메일만을 통해 콘텐츠를 주고받기에 오히려 창작 자유도도 높다는 분석이 있다.

정지은 문화평론가는 “신진 창작자들이 별도 플랫폼 없이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 콘텐츠를 유통하는 점이 매력적”이라면서도 “최근 무료 메일링 서비스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창작자는 차별화, 수익 창출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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