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현장보다 죽음 앞에 매정한 인간 군상 볼 때 더 힘들어”

최고야 기자

입력 2020-09-15 03:00 수정 2020-09-15 22:4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시간이 멈춘 방’ 저자 고지마 미유 씨
시신 있던 마지막 자리 특수청소
유튜브서 미니어처 제작법 배워
1년에 370건 치우며 8점 만들어


‘시간이 멈춘 방’ 저자 고지마 미유 씨가 쓰레기가 가득 찬 고독사 현장을 표현한 미니어처를 선보이고 있다. 고지마 씨는 “모든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누구나 한번쯤은 사용한 적이 있을 법한 생활용품을 배치하려고 노력한다”고했다. \'더숲 제공 ⓒ가토 하지메\'
《넘기다 만 신문, 먹다 남긴 편의점 도시락, 활짝 웃으며 찍은 가족사진, 그리고 시간이 멈춘 방…. 갑자기 주인을 잃은 고독한 방 안을 쓸고 닦는 이가 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자리를 뒷정리하고, 남겨진 유품 정리가 끝나면 꽃을 놓고 향을 피우며 떠난 이의 마지막을 애도한다.》

연간 고독사 발생 건수가 3만 건에 가까운 일본에서 고지마 미유 씨(28)는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업체에서 일한다. 고지마 씨는 평범한 직원이 아니라 언론의 관심을 받는 유명인이다. 고독사 현장을 정교한 미니어처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고지마 미유 씨가 제작한 고독사 현장 미니어처. 사건이 있었던 실제 가정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게 아니라 고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일반적인 특징만 따와 디자인했다. '더숲 제공 ⓒ가토 하지메'
2014년부터 특수청소를 해온 고지마 씨는 뉴스의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만으로는 심각한 현실을 알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6년 일본의 장례산업 관련 행사인 ‘엔딩산업전’에 미니어처를 처음 선보였다. 현장을 완벽하게 살려낸 세밀함과 정교함은 NHK,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은 물론 영국 가디언, 독일 ZDF 등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최근 저서 ‘시간이 멈춘 방’을 번역 출간한 고지마 씨를 e메일로 만났다.

“이 일을 왜 하죠?”

고지마 씨가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시신이 있던 마지막 자리를 치우는 일을 꽃 같은 나이의 여성이 한다고 하니 궁금해할 만하다. 그가 죽음이란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학창 시절 54세로 돌연사한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어머니가 마침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시신이 언제 발견됐을지 몰랐다. 고지마 씨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에야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지마 씨는 1년에 370건 정도 고독사 현장을 청소한다. 22세에 일하던 우체국을 그만두고 특수청소를 하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고지마 씨는 “일을 시작하기 전 내성이 생기도록 시신 사진을 찾아보며 단단히 준비했다. 나중에 어설프게 후회하는 것은 유족과 고인에게 실례라고 생각했다. 사명감이나 정의감을 가지고 일한다”고 했다.

끔찍한 현장에서 일하는 만큼 당연히 트라우마도 생겼다. 쓰레기가 가득 찬 집에서 나오는 바퀴벌레 수천 마리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돌아가신 분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적은 없어요. 한때는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낀 인간이니까요. 고인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방을 청소해요.”

하지만 바퀴벌레보다 더 마주하기 힘든 것은 죽음 앞에서도 매정한 인간 군상을 목격할 때다. 고지마 씨는 “자살한 아들의 집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우는 아버지 앞에 주택 관리회사 직원이 부당한 수리비용을 청구했다. 울면서 ‘낼게요, 낼게요’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같이 울었다”고 했다. 또 “애도의 말 한마디 없이 귀중품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이웃도 있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고독사는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고지마 씨가 만든 미니어처는 지금까지 총 8점이다. 유튜브에서 미니어처 제작 방법을 찾아가며 독학했다. 그는 “미니어처 공개 이후 고독사에 대한 관심이 환기됐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땐 사후 6∼8개월 지난 현장 의뢰가 많았는데, 지금은 한 달 내에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고지마 씨는 1인 가구 증가로 한국에서도 고독사가 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고독사는 고령자뿐 아니라 젊은 사람에게도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부모님, 연인, 부부, 자녀 등 소중한 사람의 생존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안부를 자주 주고받고 가능하면 직접 만나세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후에 아무리 후회해도 늦어요.”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