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묶인 ‘반도체 큰손’ 화웨이… 글로벌 시장 단기적 위축 불가피[인사이드&인사이트]

서동일 산업1부 기자

입력 2020-09-15 03:00 수정 2020-09-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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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화웨이 3차 제재’ 15일부터 발효
작년 23조원어치 반도체 사들여
화웨이에 메모리반도체 매출 비중
삼성 3.2%-SK하이닉스 11.4%


서동일 산업1부 기자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창업주 런정페이(任正非·75) 회장은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이다. 그는 종종 화웨이를 겨냥한 미국 정부의 제재를 ‘공격’으로, 그들의 사업은 ‘전투’로 표현한다.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화웨이를 거래 금지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는 1차 제재안을 발표하자 런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정부의 타격 대상이 된 화웨이 통신장비 사업이 총탄 4300발을 맞았습니다. 다행히 엔진은 무사합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소비자사업부의 연료탱크가 손상됐습니다. 2, 3년의 시간을 들여 복구하고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지난해 미국의 1차 공격 이후 화웨이 스마트폰 운영의 핵심인 중앙처리장치(AP)를 생산·공급해 온 퀄컴과 브로드컴이 거래를 끊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제공하던 구글도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하지만 올해 이어진 미국의 2, 3차 공격은 화웨이에 치명적이다. 3차 제재가 발효되는 15일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화웨이에 납품을 중단한다. 미국은 지난해 제재로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직거래를 막았다면 2, 3차 제재로 화웨이에 대한 거의 모든 반도체의 공급을 전면 차단해 버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장비와 소프트웨어, 설계 등을 사용해 생산한 반도체라면 미국 승인 없이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국 기술 없이 만들 수 있는 첨단 반도체는 없다.


○ 화웨이는 살아남을까
반도체 부품을 새로 구매할 수 없게 된 화웨이는 제재 전날인 14일까지 재고 쌓아 두기에 몰입했다.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화웨이는 주요 반도체 협력사에 충분한 재고량을 요청한 상태다. 5세대(5G) 이동통신, 와이파이 등 통신용 반도체와 이미지를 구동해주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을 적극적으로 비축하고 있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최대 2년 치의 핵심 반도체 부품을 비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런 회장도 미국의 대대적 공격에 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런 회장은 “우리가 첨단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것도, 그들이 우리에게 (반도체) 판매를 하지 않을 때 품질이 조금 떨어지겠지만 임시변통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들이 우리 식량을 끊어버릴 때 ‘예비용 시스템’을 가동해 충분히 버텨내기 위해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 정부도 반도체 굴기를 본격화하며 미국의 제재에 대비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은 빨랐고 전면적이었다. 최근엔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SMIC마저 제재하겠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화웨이를 둘러싼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다.

중국 내부에서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제재가 풀릴 수 있다며 ‘겨울을 버티자’는 낙관론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5G, 인공지능(AI) 등 미래 테크 산업에서 미국이 제조 주도권도 쥐겠다는 기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제재가 장기화되고, 비축한 재고 부품이 동나면 화웨이가 혁신 제품을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중저가 시장에서는 생존할 수 있지만 첨단 시장에선 경쟁력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격랑에 휩싸인 글로벌 테크 산업
전 세계 ICT 기업들은 화웨이 제재 이후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고 있다. 화웨이는 2019년 한 해에만 200억 달러(약 23조7000억 원)어치 반도체를 사들이는 큰손이자 글로벌 통신장비시장 점유율만 31%에 달하는 1위 사업자다. 여기에 삼성전자에 이어 한 해 스마트폰을 2억4000만 대를 팔아치우는 2위 제조사다.

화웨이를 떠받치는 두 날개는 스마트폰과 이동통신장비 사업이다. 이 중 미국 제재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스마트폰 사업이다. 메이트 시리즈 등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출시는 더 이상 어려워졌다. 당장 올해 하반기(7∼12월) 공개가 예정됐던 메이트40의 정상적인 판매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미국 기업이 AP 공급을 막았고, 화웨이가 자체 개발해온 AP 물량의 약 90%를 위탁 제조해줬던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마저 화웨이에 등을 돌린 탓이다.

화웨이가 주춤한 데 따른 반사이익은 중국 내수 물량은 중저가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기업이 누릴 가능성이 크다. 화웨이 스마트폰 라인업은 저·중·고가의 비중이 약 5 대 4 대 1이다.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의 60∼65%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35∼40%는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팔린다. 중국 소비자들은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신한금융투자 박형우 연구원은 “(화웨이 스마트폰 생산 차질에 따른) 출하량 증가 효과는 오포와 비보가 각각 4300만 대, 샤오미 2400만 대로 추산된다.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해 샤오미 주가 수익률은 올해 저점 대비 169%, 최근 한 달 동안 73%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을 제외한 해외 지역, 특히 유럽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라인업의 저·중·고가의 비중은 6 대 2 대 2로 전 가격대의 제품을 골고루 갖고 있다는 점에서 화웨이와 유사하다. 애플은 중저가 라인업은 거의 없이 프리미엄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화웨이의 소비자층을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화웨이는 유독 북미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어서, 북미 시장에서 제품 인지도가 높은 LG전자는 화웨이 제재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단기적으로 화웨이 공급 중단에 따른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기 위한 승인 신청을 미국 정부 측에 했지만 미국이 이를 승인해줄 가능성은 낮다. 승인을 해도 공급 물량이나 납품 기한 등 일부 제한을 둘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매출 중 화웨이 비중은 3.2%(약 7조3700억 원), SK하이닉스의 경우 11.4%(약 3조 원)로 추정된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는 특정 기업을 위해 제작하는 제품이 아니다.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한 물량은 재고로 쌓아놓고, 대체 수요처를 찾아 판매할 수 있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판매 하락분만큼 삼성전자를 비롯해 오포, 비보, 샤오미 등의 판매량이 상승한다면 이들이 곧바로 대체 수요처가 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의 메모리반도체 수요 하락만큼 사업 매출이 꺾일 것이란 우려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화웨이가 시장에서 사라진다 해도 스마트폰 수요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면에서 단기적 리스크임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 “화웨이는 스파이 기업” 미국에 동참하는 기업들
미국은 화웨이를 민간 기업이 아닌 중국 정부가 세계 곳곳에 심어놓은 스파이 조직으로 여긴다. 겉으로는 민간 기업이지만 속으로는 사실상 중국 정보기관과 다름없다는 의혹을 접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화웨이 기업명은 ‘중화유위(中華有爲)’의 줄임말로 중화 민족에 미래가 있다는 뜻이다. 인민해방군 장교라는 런 회장의 출신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 순위 50위권이지만 어느 나라에도 상장하지 않아 지배구조 및 운영방식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도 의심의 근거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확전될 수 있어 글로벌 기업들도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눈치를 보고 있다. 이미 대만 TSMC는 전체 매출의 14.3%를 차지하는 화웨이를 포기하고 미국 편에 섰다. 120억 달러(약 14조2000억 원)를 들여 미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도 밝혔다. 2030년까지 세계 파운드리 시장 1위를 차지하겠다며 TSMC를 바짝 뒤쫓고 있는 삼성전자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장비 시장에서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점은 우리 기업엔 호재다. 삼성전자는 캐나다 3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텔러스의 5G 이동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됐다. 텔러스는 그동안 중국 화웨이의 4G 이동통신 장비를 100% 사용해 온 곳이다. 하지만 5G 공급사 선정 과정에서 화웨이를 배제했고, 이 자리를 삼성전자가 차지했다.

1987년 설립된 화웨이는 1996년 러시아 국가전신국에 고작 38달러(약 4만5000원)어치의 기지국 통신전원모듈장치를 파는 것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2020년엔 글로벌 기업 순위 50위권에 들 정도로 성장했다.

“우리의 구호는 ‘필승’이다. 승리는 반드시 우리의 것이다.”

런 회장은 지난해 미국의 1차 제재가 시작된 뒤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제재와 글로벌 기업의 동참 속에 화웨이의 붉은 깃발은 계속 펄럭일 수 있을까.

 
서동일 산업1부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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