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M&A 무산…2500억원 반환 소송 불가피

뉴시스

입력 2020-09-11 17:41 수정 2020-09-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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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11일 최종 무산됐다. 이에 따라 양측은 2500억원을 놓고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일 전망이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현산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27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과 각각 주식매매계약(SPA)과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하며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을 마무리했다. 현산 컨소시엄은 총 인수대금(약 2조5000억원)의 10%인 2500억원을 이행보증금으로 냈다.


◇귀책사유는 누구에게…MAC 조항 해석도 관건

사건의 쟁점은 M&A 계약해지에 대한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현산은 계약 체결 이후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의 급격한 증가 등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강조하고, 아시아나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금호산업의 귀책사유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현산은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외부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의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 부적정 의견을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금호산업은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었다고 맞설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현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항공업계 타격을 강조하고, ‘MAC(Material Adverse Change·중대한 부정적 변화) 조항’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의 재무상황이 계약 당시에 비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상반기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2291.01%로 지난해 말(1386.69%)보다 904.32%포인트 급증했다. 지난 6월말 기준 자본잠식율은 49.8%로, 지난해 말 18.6%에 비해 크게 악화된 상황이다.

M&A 전문 변호사는 “통상 M&A 계약서에는 MAC(맥)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며 “매각 주체의 재무상태·자산과 관련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상황을 미리 적어놓고, 그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매수인이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한다. 이를 MAC 조항이라고 하는데, 전쟁과 테러·천재지변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가 천재지변과 같은 중대한 부정적 변경(MAC)에 해당되는지를 놓고 양측 간의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현산은 코로나19가 중대한 부정적 변경에 해당한다며, 코로나 사태때문에 계약서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금호산업은 코로나 여파로 아시아나항공 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이 타격을 받았다고 반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또다른 변호사는 “MAC 조항은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된다”며 “양 당사자의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고, 당사자들의 예견가능성도 없어야 적용받을 수 있다. 아시아나 계약서에 MAC 조항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계약 체결의 시점상(2019년 12월) 코로나가 포함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MAC 조항에 코로나가 명시되지 않았다면 재판부에서 이 부분을 더욱 세밀하게 검토할 것 같다”며 “정부가 코로나를 사회적 재난으로 인정했으나,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천재지변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코로나가 MAC(중대한 부정적 변화)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하나의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법원, 재실사 필요 여부 검토할 듯…대우조선해양 사례와 다른 점은?

재실사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이 결렬 수순을 밟게 만든 주된 요인이기 때문이다.

현산은 코로나 여파로 아시아나 재무상황이 악화된 것을 강조하면서 7월 24일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에 대한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했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이미 충분한 실사가 이뤄졌다며 재실사를 거부하고, 현산의 아시아나 인수 의지에 의문을 표한 바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현산의 재실사 요청을 계약 해지를 위한 명분 쌓기로 단정지을 수 없다”며 “현산 입장에서는 코로나 이전의 가격으로 인수한다는 것이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아시아나를 섣불리 인수했다가는 모기업까지 휘청거리는 ‘승자의 저주’에 걸릴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는 격이기 때문에 재실사 요구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현산이 일부 승소할 가능성을 높다는 관측이 많다. 이 사건과 유사한 판례도 있다. 앞서 한화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했다. 한화케미칼은 9년 간의 법정 소송 끝에 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이행보증금 3150억원 중 절반 이상(1951억원)을 돌려받았다.

한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는 하나의 판단기준이 되고, 사실관계가 유사한 경우 더욱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현산과 금호산업, 채권단이 언론을 통해 밝힌 각자의 입장만으로는 모든 걸 판단하기 어려우나, 어느 일방에게 100% 책임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 여파로 항공업계가 타격을 입은 건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만큼 현산이 이행보증금 일부는 돌려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다른 법조인은 “대우조선해양 사례와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은 약간 다르게 봐야 한다”며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본 계약 체결 전인 양해각서 단계에서 결렬됐고, 이행보증금만 포기하면 인수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당시 한화는 ‘노조 반대와 산업은행의 비협조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현장 실사도 하지 못했는데 보증금 전액을 산업은행이 가져가는 건 부당하다는 이유로 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 사례와 달리 현산은 금호산업과 본계약이라고 볼 수 있는 주식매매계약까지 체결했고 현장실사를 진행했다. 현산이 재실사를 놓고 금호산업·채권단과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라며 “하지만 두 사안 모두 실사의 필요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재무제표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실사를 요구한 것은 중요 쟁점”이라며 “재판부가 아시아나의 회계처리 적정성과 함께 재실사가 필요한 사안이었는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공정위 제재, 현산에 유리…소송 장기화 불가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아시아나항공에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선 것이 소송에서 현산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27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등 주력 계열사를 이용해 총수 지분율이 높은 금호고속(금호홀딩스)에 부당 지원을 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총 3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한 법조인은 “현산이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입장표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타이밍이 절묘했다”며 “이동걸 산은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마지막 담판을 벌인 다음날 바로 공정위의 발표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현산 내부적으로 인수 포기를 결정한 뒤,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소송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까지 갈 경우 족히 10년은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리한 법정다툼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최소 2~3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양측이 여론을 의식한 듯 앞다퉈 입장문을 내고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대법원까지도 갈 것 같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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