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금력 품은 ‘풍수 명당’ 태릉골프장에 아파트 지어야하나…[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동아일보

입력 2020-09-06 09:00 수정 2020-09-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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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밖 또다른 한양, 태릉
주거지로 쓰기 아까운 풍수 명당
활용도 높아 미래세대 위해 남겨둬야


조선 중종의 부인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정순왕후의 묘인 태릉. 안영배 논설위원
한강 이북에서 조선의 수도 한양도성과 풍수적인 환경에서 가장 유사한 지역은 어디일까. 서울 동쪽 끝 육군사관학교가 있는 노원구 공릉동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일대를 꼽을 수 있다. 조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1501~1565)의 묘인 태릉으로 유명해 통칭 ‘태릉’으로 불리는 곳이다. 최근에는 1만 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예정된 태릉 골프장으로 인해 주목을 받는 지역이다.

전통 풍수이론인 ‘형세파 풍수’는 주변 산들을 통해 땅의 특징이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기초해 한양도성과 태릉 지역을 비교해봤다.

먼저 한양도성은 경북궁의 뒷산인 북악산을 주산(主山)으로 삼는다. 산의 계보를 밝혀놓은 ‘산경표’에 따르면 북악산은 그 뿌리가 북한산(삼각산)→도봉산→불곡산(양주)→죽엽산(포천) 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경표’의 저자 신경준이 ‘한북정맥’으로 이름붙인 산줄기다.

경기도 포천의 죽엽산 아래 축성령 부근에서는 한북정맥의 또다른 분맥(分脈)이 펼쳐진다. 용암산, 수락산을 거쳐 불암산으로 이어지는 맥이다. 이 맥의 중심을 이루는 불암산을 뒷배 삼은 곳이 공릉동과 별내동이다(이하 태릉지역으로 통칭).

결국 한양도성과 태릉은 주산의 뿌리가 같아 형제나 마찬가지다. 또 북악산과 불암산은 모두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암산(巖山)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바위로 된 주산을 갖고 있다는 건 그 아래 땅 기운이 강건하다는 뜻이다.

● 청룡이 약한 한양도성, 백호가 낮은 태릉 지역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흔히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라 일컫는 사신사(四神砂)를 갖춘 명당이라는 점이다. 북악산 아래 한양도성은 동쪽의 낙산(낙타산, 해발 높이·125m), 서쪽의 인왕산(338m), 남쪽의 남산(265m)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전체 둘레 18.627km에 달하는 한양도성의 성곽도 이들 4개 산을 따라 형성돼 있다.

태릉 지역의 주산인 불암산. 산 정상의 바위가 장군의 투구처럼 보인다고 해서 투구봉으로도 볼린다. 안영배 논설위원
불암산 자락의 태릉도 마찬가지다. 동쪽의 동구릉이 있는 구릉산과 서쪽의 봉화산이 각각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구릉산에서 이어져 내려온 망우산이 남주작으로 태릉 지역을 보호하고 있다. 한양도성에 비해 땅의 규모가 작긴 하지만 명당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한양도성과 태릉은 모두 산의 지세(地勢)에서 두드러진 약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한양도성은 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이 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보다 기세가 약해 항상 문제로 지적됐다. 조선 중기 유학자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한양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아서 장자(長子·장남)가 눌리고 지자(支子·맏아들 외의 아들)가 잘된다. 왕위 계승자와 높은 벼슬아치들 중에는 대개 지자 출신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경복궁에서 볼 때 동남쪽에 위치한 낙산은 높이가 낮아 주변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반면 서북쪽의 인왕산은 기세당당한 호랑이가 웅크려 있는 듯한 모양새다. 풍수학에서는 청룡산은 장자·남성·권력·무력 등을, 백호산은 지자·여성·재물·복록 등을 각각 주관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한양에서는 장남보다는 차남이나 막내가 출세한다는 ‘지자득세설(支子得勢說)’이 유행했고, 역사적으로 이는 증명됐다. 조선왕조에서 배출한 총 27명의 왕 가운데 장남이 왕위에 오른 경우는 단 7명에 불과했다. 또 그 일곱 명의 왕들 대부분이 단명하거나 왕위를 제대를 지키지 못했다.

육관사관학교 입구. 동아DB
태릉지역은 한양도성과 정반대 상황이다. 청룡인 구릉산은 주변 산과 연결돼 기세가 등등하지만, 백호인 봉화산은 평지에 나 홀로 서 있는 모양새여서 힘이 약하다. 게다가 태릉 지역의 주산인 불암산은 정상에 위치한 바위가 장군이 쓰는 투구와 비슷하다고 해서 투구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결국 태릉지역은 남성 위주의 무세(武勢)가 강한 곳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지세를 갖춘 셈이다. 풍수학자 최낙기 박사는 “토질이 밝고 단단하여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 지역에 태릉선수촌, 육군사관학교, 그리고 몇 개의 대학교가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태릉과 강릉 사이에 자리잡았던 태릉선수촌. 선수촌은 충북 진천으로 이전했고, 현재는 시설만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도 이는 확인된다. 조선시대 태릉과 강릉(명종과 인순왕후 묘)이 들어서서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됐던 태릉지역은 근대 이후 무력과 육체적 힘을 행사하는 기관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인 1938년 태릉지역은 일본 육군 훈련소로 사용됐고, 광복 후 1946년에는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인 남조선국방경비대 및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자리했다. 1966년 이후 스포츠 국가대표를 훈련시키기 위한 태릉선수촌이 이곳을 차지한 것도 땅의 성격과 맞아떨어진다. 현재 태릉과 강릉 사이에 자리했던 태릉선수촌은 2017년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고 건물 등 일부 시설만 남아 있다. 조선왕릉 42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왕릉의 보존을 위해 내려진 조치이다.

● 권력과 금력 기운의 태릉 골프장
육군사관학교 전경. 동아DB
태릉지역에서도 가장 핵심 구역은 태릉골프장과 육군사관학교 일대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 지역은 태릉과 강릉의 영역이었다. 지금도 태릉골프장 내에는 왕릉을 참배할 때 잠시 쉬는 공간으로 활용됐던 연지(蓮池,연못)가 남아 있다. 왕릉의 앞마당 격인 태릉 골프장은 원래부터 명당지로 소문난 곳이었다. 좌우로 낮은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갈매천이 흐르는 등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잘 조화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경기 구리시 갈매역 아이파크에서 내려다 본 태릉골프장 전경. 사진 왼쪽 상단의 높은 탑은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에 세워진 ‘교훈탑’이다. 전영한 기자
이곳이 골프장으로 개발된 시점은 박정희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릉과 강릉 사이에 태릉선수촌이 조성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뒷마당에 해당하는 이곳에 골프장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사관학교 생도들의 교육장으로 사용되던 83만㎡(약 25만평) 부지가 졸지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으로 바뀌게 됐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일부 골프장은 왕릉 주변의 숲을 파괴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왕릉이 들어선 지역은 서울로 오가기에 편리한 교통요지에 자리한데다가 숲이 우거지고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여서 골프장 부지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는 대표적인 골프장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효창원골프장과 청량리골프장, 군자리골프장 등이다. 광복 후에도 이런 일은 이어졌는데,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만들어진 한양골프장과 뉴코리아골프장, 태릉골프장 등이 대표적이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태릉골프장
현재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태릉 골프장을 주말을 이용해 살펴봤다. 무의 기상과 함께 묘하게도 수덕(水德; 물의 길한 작용)의 기운이 강하게 형성돼 있었다. 태릉골프장 앞뒤로는 서로 방향이 엇갈려 흐르는 두 물줄기가 원인이었다.

옛 경춘선 철로. 이 철로 옆으로 조그만 실개천이 태릉골프장에서 육군사관학교 쪽으로 흐른다. 안영배 논설위원
태릉로를 사이에 두고 태릉 묘와 마주한 태릉골프장(후면) 쪽에 옛 경춘선 철로를 따라 흐르는 조그만 실개천이 그 하나인데,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흘러가는 동출서류수(東出西流水)다. 나머지 하나는 태릉골프장 입구(전면) 쪽의 갈매천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다. 풍수에서는 골프장 앞뒤로 엇갈려 흐르는(이른바 ‘순역’(順逆)) 두 물줄기를 매우 길하게 본다. 양 방향의 물줄기가 그 안에 위치한 땅의 기운을 보호하고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갈매천(사진 하단) 쪽에서 바라본 불암산(사진 위쪽). 그 가운데로 태릉골프장과 육군사관학교가 있다. 안영배 논설위원
여기에 덧붙여 갈매천은 태릉지역의 풍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갈매천은 갈매IC 부근에서 북쪽에서 내려온 불암천 및 덕송천과 합류해 왕숙천으로 빠져 나가고, 왕숙천은 다시 한강에 합쳐진다. 이렇게 물길이 순역을 이루면서 지역을 겹겹이 에워싸면 ‘수관재물’(水管財物;물은 재물을 관장함)형태의 명당을 이루는 것으로 본다. 복과 재물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태릉 골프장 진입로. 입구 기둥엔 군인들의 체육 훈련장이라는 의미로 ‘心身鍛鍊(심신단련)’이라는 한문이 씌어 있다. 오른쪽 철조망 너머가 육군사관학교다. 안영배 논설위원
이런 조건들을 종합할 때 태릉골프장은 주변 산의 권력 기운과 물의 금력(金力) 기운을 함께 갖춘 곳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정계층을 위한 스포츠 시설로 사용되기에는 땅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태릉 일대 지도. 그래픽 강동영 기자
현재 정부가 이곳에 1만 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미니 신도시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반발이 적잖다. 주변 일대에 이미 남양주 별내지구와 다산 신도시, 구리시 갈매지구 등이 조성된 상태에서 또다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교통 체증과 주거환경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는 주장이다. 도시지역의 부족한 녹지 공간 확보를 위해서도 태릉골프장은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도 나온다. 풍수적으로도 아파트단지로 바꾸려는 계획은 아쉬움이 남는다. 땅이 갖고 있는 격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땅의 운세를 결정하는 지운(地運)의 측면에서 볼 때 태릉골프장 일대는 20~30년 후에 그 기운이 충만하게 발휘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미래세대가 활용할 땅으로 남겨두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결정으로 판단된다. 통일을 준비하고, 보다 세계적인 도시로 서울이 발전할 경우 수도권 동북지역의 핵심거점지역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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