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매각협상, 결국 무산 수순… 곧 계약해지 통보할듯

김형민 기자

입력 2020-09-04 03:00 수정 2020-09-0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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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측 파격적 가격인하에도 현대산업개발 ‘재실사 요구’ 고수
채권단 “더이상 끌고갈 여력 없어”… 협상 최종 결렬땐 3者 모두 상처
계약금 2500억 법정다툼 예고


9개월여를 끌어온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협상이 결국 결렬 수순을 밟게 됐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을 만나 파격적인 가격 인하를 제안했지만 HDC현산이 기존 ‘재실사 요구’를 고수해 사실상 협상의 여지가 사라진 셈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HDC현산은 전날 산업은행에 ‘아시아나항공 재실사는 거래 종결을 위해 필요하다’는 문서를 공식 전달했다. 산은과 금호산업은 그동안 “재실사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던 만큼 2조5000억 원 규모의 인수합병이 사실상 무산으로 기울었다. HDC현산이 판을 깨기 위해 재실사를 고수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HDC현산 입장에 변화가 없어 이 협상을 끌고 갈 유인이 부족해졌다”고 했다. 산은 측은 조만간 HDC현산에 계약해지 통보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 매각 입찰에 뛰어든 HDC현산은 2조5000억 원을 써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미래에셋의 금융 지원까지 등에 업은 정몽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뒤 HDC현산을 ‘모빌리티 그룹’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퍼지고 각국이 봉쇄조치를 단행하자 항공기가 아예 뜨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적자가 쌓이면서 부채 비율이 작년 말 1387%에서 올해 6월 말 2291%로 급증했다. HDC현산은 인수 계약 당시 대비 회사 부채 규모가 4조5000억 원 늘었다고 주장했다. “무리한 인수로 그룹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승자의 저주’ 그림자가 HDC현산에 드리워졌다.

HDC현산은 4월 초로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를 연기한 데 이어 주식 취득까지 사실상 거부하면서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7월 12주간의 재실사 카드를 들고나왔다. 여기에는 계열사 부당 지원, 부채 급증 등 아시아나항공의 자금 사정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렸다.

채권단도 아시아나항공이 부실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HDC현산이 기존에 인수 실사를 7주간 진행했으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뛰어든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모든 인수합병은 인수 후 리스크 대비 이득이 크면 성사된다”며 “(12주 재실사는) 무산을 대비한 포석이다”라고 했다. 지난달 26일 이동걸 회장은 정몽규 회장에게 약 1조 원을 깎아주겠다며 마지막 담판을 벌였지만 결국 HDC현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협상이 결렬 수순을 밟게 되면서 산은과 HDC현산, 아시아나항공 모두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한 영구채 8000억 원을 출자전환하고, 2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투입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HDC현산은 인수 가격 인하 제안에도 협상 테이블을 걷어찼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양측은 향후 계약금(2500억 원) 반환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은 6년 만에 다시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산은이 영구채 출자전환을 하면 지분 37%를 보유한 대주주가 된다. 재매각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언제 잠잠해질지 예단할 수 없고 회사 가치도 급락한 상태다. 부실자산을 털어내는 고강도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이제는 협상 결렬 후의 단계를 준비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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