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연애 경험이 만든 ‘줌’, 상장 1년여 만에 IBM 뛰어넘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입력 2020-09-03 03:00 수정 2020-09-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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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회의 선두주자’ 위안 CEO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화상회의 서비스 업체 ‘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의 시가총액이 정보기술(IT) 공룡인 IBM을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각국 기업에서 원격회의가 일상화되면서 줌 사용자가 폭증한 결과다.

1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줌의 주가는 전날보다 40.78% 폭등한 457.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말(68.04달러) 대비 8개월 만에 주가가 6.7배로 부풀어 오른 것이다. 이로써 줌의 시가총액이 이날 1291억 달러로 상승해 1099억 달러에 머문 IBM을 제쳤다. 줌의 시가총액은 미국 내 전체 상장기업 중에서도 55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날 줌은 1년 전의 약 4.6배에 달하는 분기 매출액을 발표했다. 이는 전문가의 예상(33% 상승)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순익은 1억8570만 달러로 지난 6개 분기를 모두 합친 것의 3배를 넘었다.

위안 줌 CEO
줌은 2011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에릭 위안 최고경영자(CEO·50)가 창업했고, 8년 만인 2019년 4월 나스닥에 상장됐다. 기업공개(IPO) 1년 4개월 만에 시가총액이 IBM을 능가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중국 산둥성 출신인 위안 CEO는 산둥과학기술대에서 응용수학과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그는 우연히 일본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연설을 듣고 감명을 받아,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 비자를 8차례나 거절당한 끝에 1997년 겨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일화가 있다.

서툰 영어 탓에 미국에 처음 와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화상회의 스타트업인 웹엑스(WebEx)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 회사가 2007년 통신장비업체 시스코시스템스에 인수된 후 열심히 커리어를 쌓은 위안 CEO는 결국 시스코의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으로까지 승진했다. 같은 해 미국 시민권도 획득했다.


그가 화상회의 시스템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중국에서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부터다. 기차로 10시간 거리의 학교에 다니는 여자친구를 1년에 고작 두세 번 정도만 만날 수 있었던 게 너무나 아쉬워 영상회의 서비스를 마음속으로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포브스 인터뷰에서 “그때는 내가 스무 살도 안 됐을 때였는데, 언젠가 클릭 한 번으로 여자친구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다니던 시스코에 스마트폰 기반의 비디오 화상회의 시스템을 개발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하자 회사를 나와 줌을 창업했다. 당시 창업 결정을 말리던 아내에게 “지금 시도를 안 하면 계속 후회할 것 같다”며 설득했다고 한다.

사업 초기에는 투자자 모집 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저마다 화상회의 서비스를 내놓은 뒤라 시장에 경쟁자가 많았고, 투자자들은 신생 업체의 성공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CEO가 중국 출신이란 것이 개인 정보에 민감한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줌은 기존 서비스들의 약점을 하나둘씩 보완해 나갔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사용하기 쉬운 서비스 개발에 노력하면서 시장을 장악해 갔다. 다만 미중 갈등 및 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미국 뉴욕시 교육당국과 독일 외교부 등은 줌의 사용을 제한한 바 있다.

이날 줌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위안 CEO가 보유한 지분 가치도 200억 달러로 치솟았다. 이는 미국의 헤지펀드 투자자 칼 아이컨과 비슷하고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에는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CNBC는 보도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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