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관 10명이 확진자 동선 70곳 추적… 방역 한계상황

강동웅 기자 , 김상운 기자 , 수원=이경진 기자

입력 2020-09-01 03:00 수정 2020-09-0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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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국 확산 비상]동시다발 집단감염에 조사 지체

쓰러질라 31일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업무를 처리하는 의료진이 고단한 듯 허리를 숙이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의료진과 방역 현장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최근 서울 강남구보건소는 하루 50∼70곳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역학조사를 실시한다. 확진자의 설명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대략적인 동선을 파악하는 기초 역학조사가 시작이다. 이어 신용카드 사용 명세와 휴대전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 등을 종합해 심층 역학조사가 진행된다. 확진자 동선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자칫 접촉자를 놓칠 수 있어 어느 한 과정도 소홀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서울에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역학조사 전 과정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서울시가 인력을 지원한 덕분에 10명 안팎의 역학조사관이 투입되지만 힘에 부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직원이 대신 현장에 나가 CCTV 화면을 확보한 뒤 역학조사관에게 보내줄 때도 있다. 보건소 관계자는 “사람이 부족해 간호사가 CCTV 확인 작업을 맡을 정도”라고 말했다.


○ 과부하 걸린 역학조사에 방역 허점 우려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시 세 자릿수가 된 8월 14일부터 31일까지 5000명이 넘은 환자가 발생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의 역학조사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유행의 진원지인 수도권에서 동시다발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역학조사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보건소는 관내 주민 3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을 확진 판정 하루 뒤 알게 됐다. 확진된 3명은 모두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교인으로 성북구에서 진단검사를 받았다. 기초 역학조사는 진단검사를 한 지자체가 맡지만 심층 역학조사는 확진자가 거주하는 지자체가 담당한다. 문제는 사랑제일교회에서만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성북구보건소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기초 역학조사 결과는 보통 확진 판정 당일 거주지 지자체로 통보되는데 하루 늦게 서대문구에 전달됐다.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자 추적이 그만큼 늦어졌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집단감염 사례를 우선적으로 조사하다 보니 감염 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개별 감염의 경우 조사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현장조사를 할 때는 다중이용시설을 우선순위로 삼게 된다”며 “한 사람씩 불쑥 발생하는 감염불명 사례들은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역학조사의 질도 떨어지고 있다. 서울시의 한 역학조사관은 “심층 역학조사서인데도 확진자 동선이 중간에 비어 있거나 기초 역학조사 수준의 정보만 담긴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럴 땐 조사를 다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응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늦춰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 현장방역 흔들리면 전체 방역망도 위험

경기 지역 상황도 비슷하다. 경기도에 따르면 민간 역학조사관 50명과 감염병지원단 역학조사관 14명 등 64명이 도내 역학조사를 맡고 있다. 여기에 질병관리본부 소속 역학조사관 5명이 지원을 나와 있다. 이들은 7월까지 하루 평균 30∼40건을 조사하다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달 중순부터 하루에 약 70건씩 처리하고 있다. 사랑제일교회와 경기 용인시 우리제일교회 관련 확진자가 쏟아질 땐 하루 127건을 조사한 적도 있다.

우리제일교회 집단감염이 발생한 용인시의 경우 보건소 모든 직원이 확진자 관련 업무에 투입돼 다른 업무는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CCTV와 카드 명세 확인 같은 업무는 7월보다 최소 3∼4시간 이상 지체되고 있다. 용인시 감염병관리팀 관계자는 “최근의 집단감염은 다른 시군과 동선이 겹치거나 접촉자 수가 워낙 많아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며 “일부 확진자는 동선을 거짓으로 진술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했다. 동선을 공개한 것에 불만을 품은 확진자를 포함해 하루 수십 통씩 걸려오는 민원전화 때문에 역학조사에 지장을 초래할 때도 있다고 한다.

역학조사 업무가 폭증하다 보니 직원들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용산구보건소의 역학조사관은 “아침 일찍 출근해 매일 오후 11시∼밤 12시쯤 퇴근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들어 서대문구보건소에선 직원 8명이 과로로 병가를 냈다. 조수남 경기도 감염병관리지원단 부단장은 “역학조사관들이 주말도 없이 일하다 보니 탈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역학조사관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지만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 올해 3월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이달 5일부터 인구 10만 명 이상의 시군구 지자체는 최소 1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두도록 돼 있지만 지원자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역학조사관을 1명 이상 둬야 하는 도내 시군구 중 지원자가 없어 아직 선발하지 못한 곳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강동웅 leper@donga.com·김상운 / 수원=이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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