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사료 주고 CCTV로 점검… 소 120마리 혼자서도 거뜬”

인제=이인모 기자

입력 2020-08-25 03:00 수정 2020-08-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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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찾는 새로운 미래] <4> ‘농촌 워라밸’ 실현한 스마트팜

강원 인제군에서 한우 120마리를 키우는 박순권 씨가 소에게 볏짚을 주며 웃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플라스틱 통이 사료 자동급이기의 일부다. 설정 시간이 되면 이 통에서 자동으로 사료가 나온다. 인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19일 강원 인제군 북면 원통리의 한 한우농장. 낮 12시가 되자 수십 개의 플라스틱 사료통에서 사료가 쏟아졌다. 한가롭게 있던 소들이 일제히 머리를 내밀고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이 농장은 일정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사료가 나오는 ‘사료 자동급이기’가 설치돼 있다. 오전 6시, 낮 12시, 오후 5시와 9시 등 4차례 사료가 자동 지급된다.


○ 근로 8시간이 1시간으로 줄었어요

농장주인 박순권 씨(41)는 지난해 4월 4000만 원을 들여 이 장치를 설치했다. 인제군이 절반가량을 지원했다. 박 씨는 이 장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자동급이기는 미리 설정해 놓은 소들의 생육 개월에 맞춰 적정한 양의 사료를 자동으로 지급한다.

예전엔 소 120마리에게 사료와 볏짚을 주는 데 혼자 8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 볏짚만 2차례 주면 돼 1시간이면 충분하다. 더욱이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고, 밤늦게까지 축사에 있어야 하는 불편도 해소됐다. 사료차가 와서 1개월에 1차례 정도 2.5t 규모의 사료통 2개에 사료를 채워 넣으면 그만이다.

박 씨는 올해 초 축사에 폐쇄회로(CC)TV 8대를 설치했다. 휴대전화로 영상 확인이 가능해 실시간으로 모든 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외출도 언제든 가능해졌다.

특히 CCTV가 발정탐지기와 연계돼 휴대전화 영상으로 소의 발정 시기를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휴대전화에 설치한 애플리케이션이 영상 속 소의 모습과 움직임을 포착해 발정 시기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발정기가 온 소는 영상에 표시되기 때문에 즉시 인공수정을 할 수 있다. 박 씨에 따르면 보통 소의 발정 시기는 2주 단위로 돌아오기 때문에 예전에는 임신 적기를 놓치면 2주를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 근로자 2, 3명이 할 일을 혼자서 ‘척척’

박 씨는 2015년 고향인 인제로 귀농했다. 2002년부터 경기 안산시에서 직장생활을 한 지 13년 만이다. 여유 없는 도시와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힘겹게 혼자 한우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를 옆에서 도와드리고 싶었다. 아내와 초등학생 두 딸도 동의했다.

하지만 직접 부닥친 농촌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간혹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정도였는데 직접 맡아서 하다 보니 모르는 일투성이였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에 매달려야 했다. 직장생활보다 나을 게 없었다.

그는 모르는 부분을 공부하며 차근차근 해결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강원대에서 진행한 강원농업마이스터대학을 다녔고, 50∼60시간의 축협 한우대학 과정도 마쳤다. 인제군농업기술센터의 농가 컨설팅도 많은 도움이 됐다.

또 사료 자동급이기 등 스마트팜 시설 설치로 일손을 더는 효과를 톡톡히 거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컸다. 박 씨는 “자동급이기를 설치하고 나서 근로자 2, 3명이 할 일을 혼자 할 수 있게 됐다”며 “덕분에 다른 분야에 시간을 쏟을 여력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 귀농 6년차에 삶의 여유를 찾다

박 씨가 귀농할 당시 50마리였던 한우는 이제 120마리로 늘었다. 예전에는 혼자서 관리하기 힘든 마릿수였지만 지금은 더 많은 한우를 충분히 사육할 수 있다. 현재 두 동인 축사 외에 내년에 한 동을 추가로 만들고 마릿수도 더 늘릴 계획이다. 또 한우뿐 아니라 논과 밭농사도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게 됐다. 박 씨는 논 2만 평과 밭 1만5000평도 경작을 하고 있다.

귀농 6년차인 박 씨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수입도 훨씬 많아졌고, 삶의 여유도 생겼다. 가족들의 건강이 좋아졌고,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이제는 마을의 젊은 영농인들과 함께 연구하고 선진지를 견학하는 등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박 씨는 “도시에서 보던 농촌생활과 실제 귀농은 많이 다르다. 결코 낭만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본인의 노력에 따라 충분히 승산이 있기 때문에 귀농과 창농은 도전해 볼 만한 매력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인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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