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홍수 뒤 농산물 수출 ‘뚝’, 韓 밥상물가 요동친다

주간동아

입력 2020-08-23 11:27 수정 2020-08-2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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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농산물 수입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폭염?폭우 등의 기상이변으로 중국산 농산물 수급에 차질이 생긴 탓이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2월, 우리나라의 중국산 농산물 수입량은 전년 동월 대비 약 67%까지 감소했다. 중국 내 이동 제한으로 물류가 마비되고, 농산물을 1차 가공해 한국으로 보내던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함에 따라 한국으로 수입되는 물량이 줄어든 것.

이후 차츰 회복세를 보이나 싶었으나 최근 중국 내 장마와 폭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다시금 중국산 농산물 수입에 제동이 걸렸다. 엎친 데 엎친 격으로 우리나라도 폭우로 인한 농가 피해가 심각해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는 ‘식탁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에게도 타격을 주고 있다.


고추, 중국산 30%, 국산 100% 인상
코로나19 확산과 홍수 사태로 중국 내 작황이 힘들어지면서 중국 수입산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있다. 8월 2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채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중국은 농수산식품 최대 수출국이자 최대 수입국으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우리나라도 중국산 농산물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국은 지난해 약 70만t의 중국산농산물을 수입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5억 달러(약 6026억 원) 규모다.

수입된 중국산 식재료는 주로 가공식품과 단체급식, 외식 식자재로 쓰인다. 최근 들어 소비가 늘어난 가정간편식(HMR)과 도시락 재료 등에도 중국산 농산물이 많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중국산 농산물 수입량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늘어났다. 대표 품목은 고추, 당근, 마늘, 양파, 쪽파, 참깨, 땅콩, 대두 등이다. 김치도 상위 5위 안에 포함된다.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향신 채소들은 30만t 이상이 냉동 상태로 수입돼 외식 시장에서 주로 쓰인다. 따라서 중국산 농산물 수급이 어려워지면 우리나라 외식업 전반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국산 농산물 수입업자들은 “현재 질 좋은 농산물은 확보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많이 올랐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산 고추를 수입해 제분과정을 거쳐 국내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에 납품하는 정탑농산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로 세관통관 자체가 쉽지 않고, 중국 현지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라 수출 물량을 쥐고 있는 업자들이 많다”며 “현재 중국산 고추 가격은 평년 대비 30% 정도 올랐다”고 밝혔다.

국산 고추라고 다르지 않다. 주요 산지마다 “올해 성한 고추가 별로 없다”는 탄식이 들려오는 등 이번 홍수 농가 피해가 막심해 가격도 껑충 뛰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고추 거래소인 경북 서안동농협 고추공판장에서 거래되는 건고추 화건(꼭지 달린 것)의 가격은 8월 19일 기준 600g당 1만3480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7658원)과 비교해 약 76% 올랐다.

가락시장에서 고추 도매업을 하는 최형석 경매사는 “장마 이후에 탄저병까지 돌고 있어서 올해 고추 수확량은 지난해 절반 수준도 안 될 것”이라며 “햇고추는 물론이고 1~2년 묵은 건고추도 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8월 21일 기준 홍고추는 한 박스(10kg) 경매 가격은 5만2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1000)원에 비해 2배 이상 올랐다. 최 경매사는 “재고량 자체가 많지 않아 김장철 앞두고 크게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묵은 마늘 섞어서 수출

장마 이후 건고추 가격이 2배 가까이 올랐다. [사진제공 안동시]
고추 외에도 배추, 마늘, 대파, 시금치, 당근, 미나리 등 중국에서 수입되는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중국산 농산물 수입업체 ‘PTS코리아’의 안기완 대표는 “중국 내 작황 상태가 좋지 않다보니 수입해 온 것 중에서 상태가 나쁜 건 일일이 골라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배추의 경우 해충 피해가 심해 배추 속을 다 빼고 들여오는가 하면, 마늘도 중국 내 작황 상태가 좋지 않아 1~2년 묵은 마늘이 섞여 오는 경우도 다반사다. 올해는 국산 마늘이 풍작이라 중국산 마늘 가격도 내릴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파종 후 국산 마늘에서 벌레가 생겨 그 여파로 중국산 마늘 가격이 더 오르고 있다. 중국산 마늘 가격은 평년 대비 20~30% 정도 오른 상태다.

농식품수출정보(KATI) 통계에 의하면 올 1월부터 7월(누계) 동안, 전년 동기 대비 수입량이 가장 많이 줄어든 품목은 김치다.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마늘 등의 작황이 좋지 않은 탓으로 추정된다. 올 7월 김치 수입량은 15만4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만2686t)에 비해 10.4% 줄어들었다. 지난 2월에는 김치 수입량이 3년 7개월 만에 최소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지 물류가 원활하지 않고 춘절(중국 설) 연휴 연장으로 인해 중국산 김치 공급이 뚝 끊긴 것. 이 시기 국내 외식시장에서는 중국산 김치가 일부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영세 상인들이 발을 구르기도 했다.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외식업계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CJ프레시웨이,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등 식자재유통기업들은 냉동농산물 확보에 총력을 기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파, 부추, 마늘 등은 주로 냉동제품을 사용하는데, 냉동농산물은 유통기한이 2년 정도 되기 때문에 가격이 낮을 때 대량 구매해 놓는다”며 “중국산 구입이 힘들 경우 베트남에서 물건을 들여오기도 하는데, 물량 면에서는 중국산을 따라갈 수 없다”고 밝혔다.


식재료비 급등에 영세 외식업체 위기

코로나19 확산이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농산물 수급마저 힘들어질 경우 영세 외식업체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최모 씨는 “코로나로 손님은 없는데 원가는 계속 오르고, 답이 없다”며 “상추나 깻잎 같은 시설채소야 2~3주 지나면 안정되겠지만, 수입산 재료는 한번 오르면 떨어지기 쉽지 않고, 오른 금액을 가격에 반영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는 코로나19가 터진 올 1분기 59.76으로 급락한 이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최근 3개월간(현재)의 체감경기와 앞으로 3개월간(미래)의 경기 전망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으로, 전년 같은 분기와 동일한 수준을 뜻하는 100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서용희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매출 원가에서 식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50%가 넘는 만큼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외식업계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중국산 농산물 공급 부족 현상은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중국 내 ‘식량안보’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음식 낭비 현상이 끔찍하고 가슴 아프다”며 “음식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관련법을 제정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중국 전역에서는 ‘잔반 금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는 중국이 코로나19 확산, 홍수 사태, 미중 갈등 등을 원인으로 식량 긴축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아직까지 중국이 농산물 수출을 규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향후 자국 내 곡물 및 농산물 수급 상황에 따라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중국 산둥성에서 한국으로 농산물을 수출하는 조선족 김모 씨는 “산둥성은 호우 피해가 없어서 아직까지 수출에 큰 차질은 없지만, 최근 중국 정부에서 식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만큼 향후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라며 “중국 내에서도 물가가 많이 오르고 있어 내수 시장 수요에 따라 수출용 농산물의 가격도 변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식량안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은 “코로나19 확산과 기후변화로 전 세계가 식량 확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쌀 이외의 밀? 옥수수와 같은 추가 곡물과 식탁 물가를 좌우하는 주요 농산물 수급 현황을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산물 수출입 문제를 민간 기업 소관으로 미뤄둘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수입 대체국을 찾는 등 식량 및 농산물 수급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어 이 교수는 “식량안보는 비단 곡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산 농산물 수입량 감소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밥상물가는 물론이고 국가 경제 전반이 요동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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