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 키운 탄천…신흥 부촌 예고하는 고덕천[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안영배 논설위원

입력 2020-08-23 09:00 수정 2020-08-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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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해부 하(下)

제2경부고속도로로 불리는 세종 포천간 고속도로 교량 건설 모습. 이 도로는 서울 강동구와 하남을 거쳐 세종시로 가는 새 교통 중심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하남=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풍수를 몰라도 좋은 터를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 하나는 역사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태어나거나 살았던 곳, 문화재로 등록된 명소나 유적지 주변 일대는 대체로 풍수적으로 좋은 곳으로 봐도 무방하다.

풍수 문화는 인류의 정착 생활과 함께 시작됐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거친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생활하기에 좋은 터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생성된 신석기시대의 움집 터,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고인돌이 세워진 곳 등이 대체로 풍수적으로 명당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활용하는 ‘응용 풍수’ 건축물이 늘어났다. 그래서 조선보다는 고려, 고려보다는 삼국시대 등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풍수문화의 향취가 짙어진다. 이는 역사가 오래된 터가 현재도 살기 좋은 땅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현재 ‘잘 나가는 지역’의 지형과 유사한 장소를 고르는 것이다. 한국에서 명당이라 불리는 곳은 대체로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자리하고 있다. 뒤로는 우람한 산이 받쳐주고 앞으로는 물이 유유히 굽이쳐 돌아나가는 지형이다. 고구려 백제 등 삼국 사회를 목격한 중국 역사가들은 한국인들이 특히 의산(依山; 산에 의지함), 대수(大水: 큰 물이 있음)형 지형에 삶의 터를 마련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역사적 배경과 지형적 조건, 둘 다를 갖춘 곳이라면 명당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 산은 인물을 관장, 물은 재물을 주관
현재 서울 강남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동네 가운데 하나가 강남구 삼성동과 대치동이다. 역사적으로 한성백제 시기의 삼성동토성이 수비했던 곳이자, 한강 유역에 둥지를 튼 백제 고도의 중심축을 이뤘던 지역이다. 지금의 지형도 명당 조건을 갖추고 있다. 뒤로는 대모산(293m)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고, 앞으로는 한강이 굽이쳐 흐른다. 또 풍수적인 관점에서 물길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돋보이는 지역이라는 특징도 갖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발원한 탄천과 과천 관악산에서 발원한 양재천이 합수(合水)해 이 지역을 감싸준 뒤 한강 본류에 합류하고 있다. 물길은 길이가 길수록, 또 여러 줄기가 한 군데로 모여들수록 부를 모으기에 좋다고 본다. 풍수에서 ‘산은 인물을 주관하고(山管人丁·산관인정), 물은 재물을 주관한다(水管財物·수관재물)’고 본다.

고덕천 일대 지형지세도.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삼성동, 대치동과 유사한 지형을 갖춘 곳으로 강동구 고덕동과 상일동 일대를 꼽을 수 있다. 지하철 5호선 고덕역과 상일동역에서 4km 가량 떨어진 경기 하남의 금암산과 이성산이 ‘배산’을 이루고 바로 앞으로는 한강이 ‘임수’하고 있다. 또 강남구와 송파구를 구분해주는 탄천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고덕천이 흐르고 있다. 고덕천은 남쪽의 상일IC 부근에서 이성산천, 초이촌, 대사골천 등 세 줄기 지류와 합수해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을 띠고 있다. 물길로 보자면 탄천보다 수로가 좁다는 게 단점이지만, 여러 지류가 합류함으로써 이런 단점을 충분히 보완해주고 있다.

고덕산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 하남=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이곳의 역사 역시 풍성하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동편에 위치한 이곳은 한성백제 시기 백제인들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었고, 고려 및 조선 시대 유명 학자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친분이 두터웠던 조선 태종이 제안한 한성부윤(현 서울시장) 자리를 거부한 고려의 수절대신(守節大臣) 이양중,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인 어효첨, 어세겸 등 정승과 판서들이 이곳에서 성장하거나 활동했다. 함종 어씨들의 집성촌이기도 했던 이곳은 근대에 들어서서도 어윤석, 어경선 부자가 항일의병의 선봉에 서는 등 기개 높은 학자들을 배출한 고장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고덕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한강변. 한강 건너편으로 야트막한 산(가운데) 너머로 남양주시 다산신도시가 있다. 하남=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고덕동 북쪽 한강변에 자리한 야산 고덕산(88m)도 조선시대부터 명당지로 주목받았다. 일자산의 줄기가 뻗쳐와 큰 지기(地氣)를 맺은 이곳은 광주 이씨 광릉부원군 이극배와 그 후손들의 묘가 들어서 있고, 여말선초의 문신인 함부림과 박은 등의 묘도 원래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산 정상은 한강과 남양주시의 전경이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광경으로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조망명소’이기도 하다. 강남구의 압구정처럼 이곳에는 관어정이 있었고, 유학자들의 공부방인 구암서원도 있었다. 시와 문장에 뛰어난 학자들이 즐겨 찾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 지역 향토사학자 정영기씨(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는 “고덕리(고덕동)에 가서 글 잘 하는 척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강남8학군보다 빼어난 학자 터
풍수적으로도 강동구 고덕동 일대는 학문과 자녀 교육에 좋은 기운을 품고 있는 곳이다. 강동구는 원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과 함께 ‘강남 8학군’으로 묶인 지역이었다. 1970년대 말 강남개발 활성화를 위해 강북에 위치했던 명문 고등학교들을 강남 8학군 지역으로 이전시킬 때 배재고(고덕동), 동북고(둔촌동), 한영고(상일동) 등이 강동구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87년 강동구는 송파구와 함께 강남교육구청 소속에서 떨어져 나왔고 강남 6학군으로 분류됐다. 여기에다 개발이 강남 3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어지면서 강동구는 한동안 경제적, 교육적으로 뒤쳐진 지역으로 여겨졌다. 강남권 주민들은 강동구를 강남에서 사업하다가 실패했을 때 이사하는 곳, 교육에서도 강남 8학군보다 뒤떨어지는 곳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고덕산에서 본 고덕동 아파트단지. 하남=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든 이후 각종 부동산개발사업이 이어지면서 강동구는 ‘강남 4구’로 당당히 대접받고 있다. 교육 여건도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 고덕동 명일동 등 총 6만 세대에 달하는 아파트단지가 2024년까지 완공될 예정으로 전입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인구가 늘어나면 교육 수요는 자연스럽게 커진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조만간 이 일대가 대치동과 목동에 이은 서울의 3대 학원가를 형성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투자를 권유할 정도다. 땅의 성격으로 보아도 이곳에서는 교육을 통해 젊은 인재들이 많이 양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으로 고덕동 일대는 얕은 구릉 지대가 많은 점이 도시 발전의 약점으로 꼽히지만 살기에 좋은 명당이라 할 만하다.

● 재물을 부르는 고덕천
하남시 초일동에서 고덕천의 수로를 단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물길의 폭은 넓어진다. 하남=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강동구에서 풍수적 관점으로 가장 눈여겨볼 점은 물길이다. 바로 고덕천으로, 강남구의 탄천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세 갈래의 물길이 하나로 모여들어 한강으로 흘러가는 형상인 고덕천은 부를 쌓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강동구에서 추진되고 있는 세 곳의 산업단지가 모두 고덕천을 따라 세워지고 있다. 고덕천 남쪽 상일동 지역에는 첨단업무단지와 엔지니어링복합단지가 조성되고 있고, 북쪽 한강변에는 고덕 비즈밸리가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고덕산과 강일IC 사이에 23만㎡ 규모로 조성되는 고덕 비즈밸리는 각종 업무용 시설과 호텔, 복합쇼핑몰 등을 갖춘 비즈니스 시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강동구청 자료에 따르면 세 산업단지가 모두 완성될 경우 11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와 20조 원의 경제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계획대로 개발되면 고덕천 서편의 강동구는 강남구로, 동편의 하남시 미사지역은 송파구로 비교될 정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고덕동 일대가 본격 개발되면 인접한 미사강변도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기 하남시 초일동에서 이성산천과 초이천이 합수(合水)해 고덕천을 이루는 지점. 바로 인근에는 또다른 물줄기인 대사골천이 고덕천과 합수한다. 하남=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미사지역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해 한강을 이뤄 서울권으로 진입하면서 처음 만나는 곳이다. 물길이 미사지역을 활처럼 감싸 안고 돌아나가는 모양새여서 오래 전부터 풍수가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아왔다. 그 기운이 21세기에 접어들어서 서서히 발동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던 이곳은 2009년 이명박 정권 때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되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아파트 입주 초기인 2015년까지만 해도 황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생활편의시설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지역이 활기를 띠고 있다.

미사지역의 발전은 시기적으로 강동구 고덕천 주변이 본격 개발에 들어가는 때와 맞물린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고덕천을 중심으로 고덕동 일대와 미사지역은 행정구역상 나뉘어 있지만 지형적으로는 한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위성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강동구는 남쪽에 위치한 일자산이 북동 방향으로 머리를 틀어 승상산을 거쳐 고덕산에서 끝을 맺는 모양이다. 일자산 자락이 강동구의 동쪽과 서쪽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

일자산 서쪽의 명일동 천호동 성내동 지역은 일자산이 뒷산 즉 배산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일자산 동쪽인 고덕동 일부, 상일동, 강일동은 그렇지 못하다. 대신 이 지역은 하남시의 이성산과 금암산이 든든하게 주산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남시 미사지역도 이 두 산에 의지한 채 한강에 에워싸여 있는 모양이다.

풍수학에선 뒤를 받쳐주는 산이 다르면 땅의 ‘족보’가 다르다고 본다. 따라서 땅의 발전 양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성산과 금암산이 주산 역할을 해주는 지역은 함께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고덕천을 흐르는 여러 물줄기도 이들 산을 발원지로 두고 있다. 결국 고덕천 일대를 중심으로 동쪽의 미사지역, 그리고 남쪽의 하남시 감일택지지구 등은 한 데 묶여 광역 신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포화 상태에 달한 강남3구의 대체지로서 가장 유력한 곳으로 이곳을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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