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률 53%’ 치명적 질식사고, 대부분 안전수칙 안지킨 人災

박재명 기자

입력 2020-08-18 03:00:00 수정 2020-08-18 15: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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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공단, 집중점검 나서

공기호흡기를 멘 근로자가 맨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맨홀 등 밀폐 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산소 결핍이나 유해가스 노출 등의 사고 우려가 있어 반드시 안전장비를 갖춰야 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제공
늦더위가 이어지던 지난해 9월 10일. 경북 영덕군의 한 오징어 가공업체에서 태국과 베트남 출신 외국인 근로자 4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에 있는 수산물 보관 탱크를 8년 만에 청소하기 위해 근로자 1명이 내려갔다가 의식을 잃었다. 이를 구조하러 들어간 3명도 모두 2∼3분 만에 쓰러졌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모두 유독가스 흡입으로 질식사한 것이다.

긴 장마가 끝나고 30도가 넘는 여름 더위가 시작되면서 올해도 산업 현장에서는 ‘질식사고 비상’이 걸렸다. 오폐수처리장, 맨홀 등 밀폐 공간에서 일하다가 유독가스를 흡입해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당부가 나오고 있다.


○ 사고 나면 절반 이상 숨져

질식사고는 사망률이 높은 대표적인 산업재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공단)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10년간 312명이 질식사고를 당했다. 이 중 사망자만 166명에 이른다. 사망률 53.2%로 일반 사고성 재해 사망률(1.2%)의 40배가 넘는다.


질식사고의 원인은 크게 산소 결핍과 유해가스 흡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산소 결핍은 공기 중 산소 농도(통상 21%)보다 낮은 18% 미만의 산소 농도에 노출되는 경우다. 산소 농도가 12% 미만으로 떨어지면 어지러움, 구토, 근력 저하 등으로 추락사고의 위험이 있다. 10% 아래로 내려가면 기도가 폐쇄되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8% 미만이면 실신에 이르고 6% 미만이면 호흡정지와 함께 5분 안에 사망할 수도 있다.

유해가스 흡입은 오수, 폐수 등 부패하기 쉬운 물질에 녹아 있던 황화가스나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는 것이 대표적이다. 맨홀 등에 있는 부패한 슬러지(하수 처리나 정수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를 긁어내면 황화가스가 공기 중에 섞인다. 이 가스를 흡입하면 산소를 뇌로 보내지 못하게 돼 산소 결핍 때와 같이 의식을 잃게 된다. 최근 10년 동안 질식사고 사망자 166명의 사망 원인을 보면 황화수소 흡입(48명·28.9%)이 가장 많다. 이어 산소 결핍(38명·22.9%), 일산화탄소 흡입(34명·20.5%) 등이다.

공단 관계자는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질식 재해는 사망률이 높을 뿐 아니라 호흡이 어려운 상태에서는 언어장애, 운동장애, 환각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질식 재해를 막기 위한 예방 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올 상반기에도 6명 인명 피해

질식사고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질식사고는 통상 무더위와 함께 발생 건수가 늘지만 올해는 이미 상반기(1∼6월)에 5건이 발생해 6명이 사망하고 5명이 다쳤다. 장기간의 장마가 끝나고 당분간은 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안전관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다.

질식사고는 발생하더라도 대처가 쉽지 않다. 오히려 섣불리 구조에 나섰다가 인명 피해가 더 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올해 6월 27일 대구 달서구의 폐지 재활용 업체에서는 황화수소 중독으로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 역시 지난해 9월 있었던 영덕군 오징어 가공업체 사례처럼 밀폐 공간을 청소하던 작업자 한 명이 질식돼 쓰러지자 동료 3명이 구조에 나섰다가 함께 사고를 당한 경우다. 최근 10년간 질식사고로 목숨을 잃은 166명 중에는 구조에 나섰다가 사망한 경우가 22명에 이른다. 공단 관계자는 “산소 공급이 끊어지면 의식을 잃어 기어서 탈출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며 “질식사고 발생 시에는 반드시 산소마스크 등의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구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공단, 사고 예방 위해 8월 말까지 감독

질식사고는 무엇보다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밀폐 공간에서 일할 경우에는 작업하기 전과 작업 도중에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를 반드시 측정해 봐야 한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환기하는 것도 필수다. 또 위험 밀폐 공간에는 반드시 감시인을 배치해야 한다. 질식사고의 대부분은 이 같은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고용노동부와 공단은 이달 28일까지 여름철 질식사고 취약 사업장을 대상으로 불시에 현장 감독을 실시할 방침이다. 밀폐 공간 출입 금지, 질식 예방 장비 보유와 밀폐 공간 작업 프로그램 수립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특히 밀폐 공간이 많은 폐수 배출시설 등은 실태조사를 거쳐 위험 수준을 등급화하고 고위험 사업장에 대해서는 전문 기술지도에 나선다.

공단 관계자는 “밀폐 공간 질식재해는 작업 전에 산소와 유독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환기만 잘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라며 “기본적인 수칙을 잘 지켜 사망 위험이 높은 질식 재해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질식사고 예방장비 구입비 최대 3000만원만원 지원”

산업안전보건공단 “무상대여 가능”

작업 현장에서 질식사고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이다.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장비, 공기호흡기 등을 미리 갖춰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사고 발생 후 빠른 구조도 장비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공단)은 질식사고 예방을 위해 갖춰야 할 장비 10여 개를 권장하고 있다. 우선 산소 농도와 혼합가스 농도 측정기가 필요하다. 밀폐된 작업공간에서 일할 때 쓰인다. 밀폐 공간 안으로 바깥 공기를 주입할 수 있는 공기치환용 환기팬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공기호흡기는 질식 위험이 있는 공간에서 작업할 때뿐 아니라 부상자를 구조할 때도 필요한 장비다. 산소를 공급해 주는 송기마스크를 갖춰도 된다. 밀폐 공간에서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 휴대용 랜턴 등도 준비해야 한다.

이런 장비들을 영세한 업체가 모두 갖추려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공단은 50인 미만 기업이 질식재해 주요 예방장비를 구매할 경우 비용의 일부를 지원해 준다. 한 사업장당 3000만 원 이내에서 구입비용의 70%(최대 30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질식사고 예방용 장비를 무상으로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 장비 구입비용 지원이나 무상 대여는 공단 홈페이지 또는 유선전화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공단은 여름철 질식사고 고위험 사업장 관리에 나서고 있다. 올해는 작년 실태조사에서 밀폐된 작업공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업장과 산업폐수 배출시설을 갖춘 사업장을 중점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공단 직원들이 사업장을 직접 찾아 질식사고에 대한 대비가 잘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질식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은 회사 차원에서 대응 매뉴얼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밀폐공간 보건작업 프로그램’ 등 질식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는 각종 교육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공단은 또 질식사고 예방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작업 전후에 점검하는 것도 권장하고 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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