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장응철 상사 “니 말도 맞고 네 말도 맞고… 종법사 해보니 바보 노릇도 필요”

남원=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8-17 03:00 수정 2020-08-17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종법사 퇴임한 경산 장응철 상사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종법사에서 퇴임한 뒤 전북 남원시 운봉 상사원에 머무르고 있는 경산 장응철 상사. 그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향후 법당은 정해져 있지 않고 그 사람이 있는 곳이 법당이 될 것이다. 한 차원 높은 교리와 포교, 신행관이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불교 제공
《“지리산은 ‘지혜 지(智)’에 ‘다를 이(異)’자를 쓰니, 세상과 다른 지혜의 산이죠. 부처님의 자비처럼 산의 품이 넓어요. 운봉(雲峰)이란 말도 시적이라 좋습니다.” 2018년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종법사(宗法師)에서 퇴임한 경산(耕山) 장응철 상사(上師·80)의 거처는 지리산 자락인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있다. 상사는 퇴임 종법사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종법사에 준한 예우를 받는다. 2006년부터 12년간 종법사로 재임한 그는 150만 원불교 교도들의 정신적 지주로 신앙과 수행을 이끌며 원불교 100년 사업을 마무리 짓고 교단의 세계화와 사회적 활동에 힘썼다. 6일 상사원에서 만난 그의 자리는 바뀌었지만 특유의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 등 도인(道人)의 풍모는 여전했다.》


―퇴임 뒤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보시다시피 자연을 벗 삼아 모처럼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시간처럼 평등한 것은 없습니다. 100시간을 1시간, 1시간을 100시간처럼 쓸 수도 있겠죠. 이제 여유가 생겨 글씨와 그림, 필묵과 동행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종법사에서 물러난 아쉬움은 없습니까.

“지금이 좋습니다. 그때는 일정이 저를 운전했어요(웃음).”

―재임 중 아쉬웠던 일, 그리고 성과는 무엇입니까.

“잘한 것부터 물어보시지, 하하. 교단이 교역자 인건비를 절약해서 운영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박봉입니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의 소태산기념관 건립으로 교단 위상을 높일지, 젊은 교역자의 후생복지를 개선할지 막판까지 고심했어요. 교단 세계화를 위해서도 필요해 기념관 건립으로 결단을 내렸죠. 교역자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하고, 이해를 바랍니다.”

원불교 교도들은 남자는 산(山), 여자는 타원(陀圓)이란 법호(法號)를 받는다. 입교 후 최소한 20년 이상 열심히 적공(積功)하여 진리를 깨친 사람에게 내리는 명예로운 법력의 상징이다. 그가 스스로 지은 자호(自號)는 밭가는 소, 경우(耕牛)였다.

―법호에 얽힌 일화가 궁금한데요.

“제가 느리고 판단이 빠르지 못하다는 뜻을 담아 호를 지었는데 스승이자 3대 종법사이신 대산(大山) 종사(김대거·1914∼1998)께서 산(山)자를 붙여 주셨죠. 원불교가 일이 많아요. 그래서 밭가는 소처럼 살자고 다짐을 했죠. 그런데 밭갈이가 끝나니, 지금 풀을 뜯고 있는 한가로운 소, 초우(草牛)로 살고 있는 듯해요.”

―원불교는 종권(宗權)을 둘러싼 잡음이 없는 교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대종사님(소태산 박중빈·1891∼1943)으로 시작된 가르침, 바로 교육 덕분이죠. 난득호도(難得糊塗), 총명해지는 것이 어렵지만 바보스러워지는 것은 더 어렵다고 합니다. 지도자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 어리석음의 지혜가 필요해요. 실제 종법사를 해보니 바보 노릇도 필요하더군요. ‘니 말도 네 말도 맞는데, 조금 시간을 두고 보자’는 식인데…(웃음). 그러면 의견이 달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더군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이 언젠가 나오겠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처방 아닐까 합니다. 백신이 코로나19에는 대응하겠지만 인간중심 문명이 야기한 위기에 대한 ‘근본 백신’은 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종교계의 근본 대처법은 무엇입니까.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 심지어 미물까지 배려하는 생명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처처불상(處處佛像), 만물이 부처라고 했습니다. 인간과 만물의 관계를 인과로 봐서 자신과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자세로 살아야죠.”

―노자의 도덕경에 관한 책도 내고 오랫동안 공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구절이 궁금합니다.

“스승께서 도덕경을 보라며 ‘앞으로 서울 가서 방귀깨나 뀌는 분들 교화하려면 문자를 좀 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인연이 됐습니다. 도덕경 67장에 세 보물을 언급해요. 첫째는 자애로움, 둘째는 검약, 셋째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천하에 앞서려 하지 않는다)이죠. 자애롭기 때문에 능히 용감하고, 검약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고, 감히 앞서려 하지 않아 세상을 키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 지도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지요.

“대종사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 이상의 식견을 가져라, 그래야 남의 지식을 알아보고 사람을 쓸 수 있다는 의미죠. 신뢰를 잃지 말라, 신뢰의 끈은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말라, 그리고 앎과 행동이 같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이죠. 지행합일은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원칙이 아닐까 합니다.”

남원=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