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들은 강남 지운(地運)을 어떻게 바꿀까[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박사

입력 2020-08-16 08:48 수정 2020-08-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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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대해부 중(中)

청계산 자락에 자리잡은 과천 서울랜드. 서울랜드와 과천경마장 앞쪽으로 과천 3기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은 2009년 헬기에서 촬영한 것이다. 동아일보 DB

산을 깎아내고 하천을 복개하는 등 원래 지형이 심하게 변한 현대 도시에서는 풍수지리학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풍수학은 바람길과 물길의 흐름을 살펴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터를 찾아내는 환경지리학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바람을 통제하는 ‘산’과 물길을 가리키는 ‘하천’은 풍수가들의 중요한 판단 수단이 된다. 도시 건설 과정에서 산과 물이라는 도구가 사라져버린 난감한 상황에서는 어떨까. 현대의 풍수가들은 곧장 그 대체 수단을 찾아냈다. 바로 크고 높은 빌딩을 인공의 산으로 설정하거나 큰 도로를 인공의 물길로 삼아 풍수적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 풍수학’에서 더 큰 문제는 산의 앞뒤를 관통하는 터널이 생겼을 때다. 바람을 막아주거나(防風) 갈무리하는(藏風) 역할을 해야 하는 산이 오히려 터널을 통해 바람을 통과시키는 것은 전통 풍수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풍수가들은 터널을 통해 전해지는 기운을 충살(衝殺)로 여겨 흉한 대상으로 삼았다. 2001년 남산 2호터널이 재개통될 때 터널 입구에 자리 잡고 있던 신라호텔의 매출이 크게 줄어든 원인을 충살로 해석하고 호텔 입구에 액막이 탑을 설치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남산 3호터널의 충살을 피하기 위해 상업은행(현 한국은행 별관)의 출입문을 바꾼 것도 유명한 일화다.

실제로 산으로 막혀 있던 두 지역이 터널을 통해 연결되는 것은 상당한 기운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치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이나 삼투압 현상처럼, 바람을 포함한 공간의 기(氣)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고려의 풍수가들은 이런 변화에 민감했다. 특정 지역의 공간 기운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변화하는 현상을 지운(地運, 땅의 운세)의 성쇠(盛衰)로 풀이했다. 고려 숙종 때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을 따라 수도가 세 곳에 존재했을 정도다. 고려 창업주 왕건이 도읍한 개성을 중경(中京)이라 하여 으뜸 수도로 설정한 뒤, 현재의 서울인 남경(南京)과 평양인 서경(西京)을 부수도로 삼았다. 왕은 매년 음력 11월~2월 중경에서 지내다 3월~6월은 남경, 7월~10월은 서경에서 살도록 했다. 이렇게 삼경제(三京制)를 운영하면 왕은 개성의 땅 기운을 유지하면서 나라를 오래 경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현대사회에서도 공간의 변화, 즉 지운의 변화는 사람들의 물질적, 환경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운의 변화를 유도하는 대표적 매개체인 도시의 터널을 유심히 살펴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강남3구 곳곳에서 터널이 완공됐거나 건설 예정 중이다. 이는 강남의 지운이 변화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서초구의 동서를 이어주는 서리풀터널.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

○ 서리풀 터널과 강남 중심축 이동

지난해 4월 강남구와 서초구를 확실하게 이어주는 서리풀터널이 개통됐다. 터널이 생기기 전 서초구는 크게 두 개의 생활권역으로 분리돼 있었다. 서초구 중심을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산 때문이었다. 위성사진에서 보면 서초구의 남쪽 배후산인 우면산(293m)의 한 자락이 야트막한 매봉재산(125m, 방배공원)을 이룬 뒤 계속 한강 방면으로 북진해 서리풀공원, 몽마르뜨 공원을 거쳐 반포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 같은 ‘남북 장벽’으로 인해 우면산자락 앞면에 해당하는 동쪽의 서초동과 뒷면에 해당하는 서쪽의 방배동은 같은 서초구이면서도 생활권역이 많이 달랐다. 행정구역상으로도 두 동네는 원래 분리돼 있었다. 1988년 서초구란 행정구역이 탄생하기 이전, 서초동 일대는 강남구에 편입돼 있던 반면 방배동은 관악구 소속이었다. 풍수 시각에서도 산을 경계로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의 사람들은 삶의 양태나 정서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산과 하천은 풍토를 나누는 경계선이 되기 때문이다.

두 지역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남개발사업에서도 차이가 났다. 동쪽의 서초동은 바로 이웃한 강남구와 함께 개발사업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그리고 부의 상징인 강남권으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지방법원 등 국가 사법 기관들도 이곳에 줄줄이 들어섰다. 반면 동작구와 접해 있는 방배동 일대는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주택이 혼재한 주거지, 높은 빌딩이 별로 없는 일반 상업지구 위주로 발전됐다. 서울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평범한’ 동네였다. 또 방배동 일대는 동작구 관악구, 경기 과천시 등 서울 서남부 및 경기도로 곧장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면서도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고속버스터미널역이 서초동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두 지역의 차별은 강남 도시개발사업 당시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1978년 결정된 서울시 도시개발사업에 따르면 강남역 사거리부터 이수역 사거리까지 동서 직선거리로 총 3.8km를 연결하는 ‘서초대로’ 건설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산을 통과하는 터널이 들어설 지점인 서리풀 공원에 국군정보사령부가 자리 잡고 버티는 바람에 도로가 단절돼 버렸다. 강남구에서 서초구 방배동 지역으로 진입하려면 남부순환로, 사평로 등 주변 도로로 우회해야 했다. 2015년 군부대 이전을 계기로 서리풀 터널(총연장 1280m) 개통과 함께 무려 40년만에야 왕복 6~8차선인 서초대로가 완성될 수 있었다.

서리풀 터널 개통식에서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서리풀 터널 개통은 동서(서초동과 방배동)의 길을 여는 의미를 넘어 서초의 미래를 열고, 서초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서리풀 터널이 그간의 동서 격차를 해소하는 결정적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일단 서리풀 터널을 통해 동쪽(강남구 및 서초구 서초동 일대)과 서쪽(방배동 일대)은 연결됐다. 동서의 차이를 없애는 지운의 변화는 벌써부터 일어나고 있다. 서리풀 터널 개통 즈음부터 내방역과 이수역 일대를 중심으로 부동산 개발 열풍이 불었다. 아파트 재건축, 주택 재개발 사업과 함께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아 올랐다. 정점에 달한 강남구의 지운이 덜 개발된 서쪽으로 본격적으로 이동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서초구에서는 한강변의 반포동과 함께 방배동이 가장 주목받는 동네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6.65㎢ 행정면적에 4만2000여 세대(2019년 기준)가 사는 방배동은 강남의 기운을 오롯이 담기에는 너무 좁다는 것이다.

서초구 일대 터널 지도. 그래픽=강동영 기자


○ 이수~과천 터널, 재운(財運)의 이동

서리풀 터널과 함께 서초구에는 또 하나의 터널이 생길 예정이다. 남태령 고개 땅 속을 뚫고 나가는 ‘이수~과천 간 복합터널’이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이 터널은 2026년 완공 목표로 진행된다. 강남권에서 과천시로 넘어가는 주요 도로인 남태령 고갯길이 평소에도 교통 정체가 심해 지하로 별도의 터널을 뚫어 교통난을 해소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도 과천에 역을 세울 예정이어서 또 다른 호잿거리다.

이로 인해 과천은 제2의 부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천은 과거 시흥시에 딸린 일개 면에 불과했지만 정부종합청사 건설로 1986년 단번에 시로 승격됐다. 권력 기운의 후광을 톡톡히 본 셈이다. 정부종합청사라는 권력기관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들었던 과천은 이제 복합터널 건설과 함께 유력한 강남 대체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태령 고갯길의 터널이 서초구권 사당역 사거리 일대에 집중된 재물과 상업의 지운을 과천에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당시 권력기운이 강한 관악산 아래 자리잡은 과천정부종합청사 풍경. 동아일보 DB

사실 땅의 운세를 의미하는 지운과 땅의 기운를 뜻하는 지기(地氣)는 다른 것이다. 지기가 해당 터에서 감도는 고정적인 것이라면, 지운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공간의 변화를 일으키는 유동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 때문에 지운의 이동을 자극하는 터널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도 터널은 막혀 있던 곳으로 교통과 물류의 이동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해당 지역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과천에서 미래의 지운을 누릴 만한 곳으로 7000여 가구가 들어설 예정인 과천 3기 신도시 일대가 꼽힌다. 과천시 자체가 품고 있는 땅 기운도 그렇다. 과천은 지형 상 관악산과 청계산이라는 두 거대한 산이 에워싸고 있다. 과천정부종합청사 터인 현재의 과천시내는 관악산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 관악산은 권력의 기운이 강한 산이다. 반면 4호선 지하철역인 선바위역 일대에 들어설 과천신도시는 청계산이 뒷배가 된다. 청계산은 풍요와 재물의 기운이 왕성한 산이다. 전통 풍수학 논리로도 이번에는 청계산이 용을 쓸 순서인 것이다.

과천은 앞으로 제2의 강남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계기로 강남권이 외곽으로 확산하는 범(凡)강남 광역도시가 탄생할 수도 있다. 한국판 메갈로폴리스(매우 특별한 지역)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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