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사기극 주의보[오늘과 내일/김광현]

김광현 논설위원

입력 2020-08-13 03:00 수정 2020-08-1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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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99% 위한다는 명분, 毒으로 돌아올 수도
‘최고금리 10%’ 선의 내세우는 정책 조심해야


김광현 논설위원
1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민간임대주택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민간 등록임대주택 제도가 정식 폐지됐다. 주택임대사업자는 전국 51만 명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자 역시 같은 51만 명으로 인구로는 전체의 1%, 가구 수로는 2.5% 수준이다.

현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12월 임대등록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이후 급증한 주택임대사업자 가운데는 세제 혜택을 활용한 투기 목적의 사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형주택 몇 채를 사들여 은퇴 후 임대수입으로 생활을 이어가자는 생계형 임대주택사업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시행된 지 3년도 안 돼 정책이 180도 바뀌는 바람에 졸지에 사회적 범죄자 취급받는 다주택자가 됐다. 동시에 종부세 과세 기준이 거주 주택뿐 아니라 임대주택을 합산하도록 바뀌어 종부세 폭탄까지 맞을 처지에 놓였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일반 형사원칙과 마찬가지로 세금 정책 역시 아무리 좋은 취지라고 해도 그 과정에서 억울한 납세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새 제도를 도입하면 충분한 경과 규정을 두거나 피해 구제를 위한 예외 규정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정상적인 행정의 원칙은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식의 거여(巨與)의 입법 폭주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과거 누렸던 특혜를 이제야 바로잡는다는 정치적 명분 앞에서는 재산권 침해, 징벌적 세금, 과잉금지 원칙 위배, 소급입법 같은 주장은 그저 적폐세력들의 불평불만일 뿐이다. 1%를 때려서 나머지 99%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다면 정치적 표 계산으로 남는 셈법이다.

임대료 통제와 쌍둥이처럼 닮은 명분 정책이 최고이자율 제한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176명에게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10%로 인하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하자는 포퓰리즘이 뭐가 나쁘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재명 지사는 원래 그러려니 하지만 덩달아 뛰는 여당 의원도 여럿 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연 10%로 낮추는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전에 발의된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도 있다.

최고이자율 제한은 고리대금업자들로부터 서민을 보호하자는, 더없이 좋은 명분을 내세운다. 실상을 보자. 저축은행 캐피털사 대부업체 등 제도권 내 대부업 이용자는 현재 178만 명 정도. 서민금융진흥원 집계로는 현행 최고이자율 24%에서도 대출 승인율이 11.8%밖에 안 된다. 거의 10명 중 9명은 대출 퇴짜를 맞는다는 말이다. 연 10%로 상한을 확 낮추면 대부업체들로서는 그 금리로는 대출해 줄 수 없다는 경우가 급증할 것은 정한 이치다. 제도권 금융에서 퇴짜를 맞은 저신용자 가운데 작년 한 해 10만 명 정도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에게 적용된 금리는 법정 최고금리보다 훨씬 높아 평균 연 100%를 넘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금리다.

은행이나 기껏해야 새마을금고 정도를 이용하는 일반 국민들로서는 이런 현실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옛날부터 고리대금업은 나쁜 것이고,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10%로 낮춰주는 건 착한 법이며, 이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대부업자 편이 아닌 진정 서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고 믿기 쉽다. 실제 알고 보면 일종의 대국민 사기에 가깝다. 정부 정책이라고 무조건 믿고 따라가다가는 낭패 당하기 십상이고, 국민 위하는 척하는 말에 박수 보냈다가는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는 수밖에 없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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