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TNT타임]미중 갈등과 깜짝 돌풍 리하오퉁 모자

김종석 기자

입력 2020-08-09 10:20:00 수정 2020-08-09 11: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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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투어 챔피언십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리하오퉁. 샌프란시스코=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위챗’의 퇴출 의지를 누누이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5일 기자회견에서 “틱톡이나 위챗 같은 앱은 중국 공산의 콘텐츠 검열 수단이자 미국인의 개인 정보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챗의 모회사 텐센트,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와 모든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미국 행정부의 ‘청정 네트워크’ 방침에 된서리를 맞은 위챗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활짝 받았다. 위챗과 메인스폰서 계약을 한 리하오퉁(25·중국)이 2라운드를 단독 선두로 마쳤기 때문이다.

PGA투어 경기 도중 땀을 닦고 있는 리하오퉁. 멤피스=AP 뉴시스
리하오퉁의 돌풍 속에 그의 모자 정면에 새겨진 ‘위챗(WeChat)’이라는 로고가 전세계에 집중적으로 노출됐다.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TPC 하딩 파크(파70)에서 열린 2라운드에서 리하오퉁은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기록해 중간합계 8언더파로 리더보드 맨 꼭대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중국 남자 골프선수가 메이저 대회 라운드 종료 시점에 단독 또는 공동 선두에 오른 것은 이날 리하오퉁이 처음이다. 중국 선수의 남자 메이저 대회 우승은 한 번도 없었으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챔피언도 배출한 적이 없다. 전체 4라운드 가운데 ‘전반’만 마쳤을 뿐이지만 리하오퉁이 새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2019년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해 인터내셔널 팀 최경주 부단장 앞에서 퍼팅을 하고 있는 리하오퉁(오른쪽).
뜨거운 관심을 받은 리하오퉁은 2018년 4월 마스터스 직전부터 위챗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인기 스포츠인 골프를 통해 중국 브랜드의 가치를 해외 소비자에게 알릴 목적이었는 데 이번에 제대로 효과를 보게 된 것. 2라운드 종료 후 리하오퉁은 위챗 퇴출 관련 질문까지 받고는 황당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잘 모르겠다”며 한 발 뺐다.

현지 언론은 골프광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최근 격화된 미중 갈등 속에 위챗을 앞세운 리하오퉁의 활약은 달갑지 않을 것 같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언론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은 “전세계 17개 골프장을 소유하고 재임기간 282번 골프를 친 트럼프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로 이번 대회를 안 볼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리하오퉁 프로필>

중국 골프의 선두 주자로 준수한 외모로도 유명한 리하오퉁은 2017년 브리티시오픈에서 3위에 오른 적이 있다. 이 성적은 역대 중국 선수가 올린 역대 PGA투어 최고 기록이다. 당시 리하오퉁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나이키 모자를 쓰고 출전했다. 유러피언 투어에서 통산 2승을 거둔 그의 세계 랭킹은 현재 114위.

롯데 메인스폰서 시절 김해림. 동아일보DB

리하오퉁 사례를 보며 ‘달걀 골퍼’ 김해림이 떠올랐다. 김해림은 2017년 중국 하이난 섬에서 열린 KLPGA투어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 출전해 우승했지만 그의 경기 장면은 중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연장 접전 끝에 우승한 뒤 환호할 때도 중계 카메라는 김해림을 멀찌감치 잡거나 뒷모습만 보여줬다.

대회 주관 방송사인 중국 CCTV 5+가 김해림의 모자 정면에 새겨져 있는 메인 스폰서인 롯데 로고가 노출되지 않도록 했기 때문. 롯데가 성주골프장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로 제공한데 따른 보복 조치의 일환이었다. 당시 공동 3위로 마친 이소영도 롯데 소속이라 TV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롯데 골프단의 한 관계자는 “김해림 프로가 대회 첫날 중국 TV 화면에 자주 나온 뒤 중국 당국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며 모종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해림의 시상식 모습도 방영되지 않았다.

프로골퍼의 모자 정면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으로 불린다. 어떤 기업의 로고를 장식하느냐에 따라 해당 선수의 클래스가 결정되기도 한다. 정치적인 입김이나 역학 관계에 휘말리기도 하는 걸 보면 골퍼의 얼굴이나 자존심으로도 부를 만 하다.

암튼 올해 PGA챔피언십은 코로나19 사태로 관중 없이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리하오퉁이 화제를 뿌리면서 특히 미국과 중국 골프팬들의 장외 응원대결이 더욱 치열하게 됐다.

한편 9일 3라운드에서 리하오퉁은 3타를 잃어 중간합계 5언더파로 김시우 등과 공동 13위로 밀렸다. 더스틴 존슨(미국)이 9언더파로 단독 선두에 나선 가운데 대회 3연패를 노리는 브룩스 켑카(미국)는 2타차 공동 4위로 역전 우승을 노리게 됐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공동 59위(2오버파).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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