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흔든 류호정 ‘원피스 등원’…외국서도 ‘의회 패션’ 싸고 논쟁

조유라 기자 , 김지현 기자

입력 2020-08-07 21:42 수정 2020-08-0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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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인 정의당 류호정의원이 북 까페에서 포즈를 취했다. © 뉴스1
어떤 장소에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를 정한 ‘드레스 코드’에는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담겨 있다. 자칫하면 ‘부적절한 의상’ ‘무례하다’는 지적을 받게 되고, 유권자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정치인들로서는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복장 자체가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의당 류호정 의원(28)이 빨간 도트 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등장한 일은 논쟁의 대상이 된다. “국회의 권위는 복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지지하는 의견과 “최소한 TPO(시간·장소·상황)‘는 지켜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맞서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 참석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0.8.6 © News1
해외에서도 국회의원 복장 논란은 종종 벌어져 왔다. 의회주의 역사가 긴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는 토론을 거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규정이 정비돼왔다.

●영국은 청바지 금지, 미국은 코트·모자 불허

영국은 2018년 발간한 ’하원 행동 및 예절규범‘에서 ’비즈니스 드레스‘, 즉 회사에서 일하기 편한 복장을 권고하고 있다. 재킷은 필수지만 넥타이는 선택이다. 하지만 2017년 전까지는 넥타이가 필수였다.

금지하는 복장은 보다 구체적이다. 청바지, 티셔츠, 샌들, 트레이닝복은 등이 적절치 않은 복장에 포함됐다. 브랜드 로고나 문구가 들어간 옷과 군복을 포함한 제복도 입어선 안 된다. 복장 규정을 어기면 회의실에서 퇴장당할 수 있다. 투표만 하는 등 회의실에 들어가되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에는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미국은 남녀 의원에 대한 복장 규정을 각각 따로 두고 있다. 하원 본회의 규정에 따르면 남성 의원은 ’전통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차림을 해야 한다. 상원에서 바지를 입을 때는 반드시 재킷을 착용해야 하고 넥타이도 필수다. 의회가 열리는 동안 코트와 모자는 벗어둬야 한다. 반면 여성의원은 ’적절한 복장‘이라고만 규정돼 있어 허용되는 범위가 넓다.

금지 복장은 암묵적 규칙으로 존재한다. 남녀 모두 운동화나 발가락이 보이는 신발은 신지 않는다. 민소매 원피스는 2017년까지 부적절한 복장으로 통했지만 지금은 허용된다. CBS여기자가 어깨를 드러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회의장에서 쫓겨나자 여성 의원들이 ’민소매 금요일‘ 운동을 벌이면서 기준이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는 2017년 12월 프랑수아 러핀 의원이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 유니폼을 입고 의회 연단에서 연설한 이후 복장 규정이 생겼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재킷과 넥타이는 착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국회 품위를 훼손하는 차림은 지양해야 한다. 스포츠 유니폼, 로고가 크게 들어간 티셔츠, 군복을 포함한 제복 등이 금지됐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문구가 쓰인 복장도 입을 수 없다.

캐나다에선 지난해 11월 퀘벡 연대 소속 캐서린 도리온 의원이 핼러윈 행사 때 입었던 주황색 후드티 차림으로 등원했다가 쫓기듯 의회를 떠났다. 이후 캐나다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상에서는 “여성은 원하는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는 캠페인이 전개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 복장에 담긴 정치인들의 메시지

각국의 복장 규정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월 영국 하원에서는 ’오프 숄더 원피스‘ 논쟁이 벌어졌다. 트레이시 브라빈 의원이 발언하는 도중 원피스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오른쪽 어깨가 훤히 드러나자 “ 술에 취해 바퀴달린 쓰레기통에 부딪힌 주정뱅이”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브라빈 의원은 문제의 원피스를 경매에 부쳤고, 수익금 2만200파운드 전액은 여성 청소년을 위한 단체에 기부했다.

프랑스에서는 2012년 세실 뒤플로 주택부 장관이 흰색 바탕의 푸른 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국회 연설을 하자 일부 남성 의원들은 뒤플로 장관을 향해 휘파람을 불면서 희롱했다. 그의 옷차림을 두고 “단순히 일상에서 입는 옷이었을 뿐”이라는 옹호와 “성별을 지나치게 강조한 복장”이라는 비판이 팽팽히 맞섰다.

국회 복장에 대한 갑론을박은 정치인의 복장이 지닌 중요성을 보여준다. 정치인에게 복장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2017년 3월 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의회연설을 할 때 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 66명이 흰 옷을 맞춰 입고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이들은 성명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여성이 이뤄온 놀라운 진전을 되돌리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를 막기 위해 힘을 모으자는 뜻에서 흰 옷을 입었다”고 밝혔다. 1900년 대 초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항의의 표시로 입었던 흰 옷으로 연대의식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29·뉴욕)도 지난해 초 여성 운동가 선후배를 기리는 의미로 흰 옷을 입고 취임식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남성 정치인은 넥타이를 정치적 메시지 발신의 수단으로 자주 활용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21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네 가지 색깔이 섞인 넥타이를 맸다. 더불어민주당의 파란색, 미래통합당의 분홍색, 정의당의 노란색, 국민의당의 주황색 등 각 당의 상징색이 섞인 넥타이를 통해 협치 의지를 담은 것이다.

앞서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영상 메시지에서는 2000년 6·15 선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맸던 넥타이를 착용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의원으로부터 넥타이를 전달 받았다”며 “김 전 대통령의 의지를 계승해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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