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투자 짭짤하다더니… 계정이 사라졌다

장윤정 기자 , 김동혁 기자

입력 2020-08-01 03:00 수정 2020-08-01 15:51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온라인 신종 금융사기-불법대출 활개
‘몽키레전드’ ‘드래곤스타’ 등 해외 서버 이용 유사금융 플랫폼
“P2P 중개” 선전하다 갑자기 폐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틈타 신종 금융 사기가 활개를 치고 있다. 고수익을 미끼로 내건 캐릭터 투자 유사금융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불법 대출 광고 등 청소년과 청년들을 노리는 신종 수법과 문제점을 소개한다.》

직장인 A 씨는 올해 초 유사 금융 플랫폼 ‘몽키레전드’ 투자에 빠졌다. 앱에서 중국 장편소설 ‘서유기’ 속의 원숭이 캐릭터를 구입하면 보유 기간에 따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귀가 솔깃했다. A 씨는 앱을 내려받고 50달러(약 6만 원)로 가장 낮은 단계의 캐릭터인 ‘오공’을 구입했다. 4일 뒤 A 씨가 구입한 ‘오공’ 캐릭터는 56달러로 올랐다. 이 캐릭터를 다른 회원에게 판매해 12%의 수익도 올렸다.
캐릭터 투자로 재미를 본 A 씨는 종류별로 캐릭터를 사 모았다. 캐릭터 등급과 보유 기간에 따라 수익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싼 캐릭터는 1000달러(약 120만 원)나 됐다. 계정당 5개의 캐릭터를 보유할 수밖에 없어 스무 개의 계정을 동시에 운영하기도 했다. 투자금액은 어느덧 2500만 원이 넘었다. ‘대박’의 꿈은 올해 6월 몽키레전드의 캐릭터 거래가 정지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인터넷과 모바일 공간에서 신종 금융 사기와 불법 대출이 확산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돈이 궁한 청년이나 금융지식이 부족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청소년을 노린 금융 사기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다.

○ P2P 투자 가장한 신종 금융 사기
지난해 11월에 등장한 몽키레전드 외에도 캐릭터 투자를 내세운 유사 금융투자 플랫폼이 늘고 있다. 6월 운영진이 잠적한 ‘드래곤스타’는 용 캐릭터를 거래하는 플랫폼이었다. 쥐, 토끼, 호랑이 등 캐릭터를 거래할 수 있게 한 ‘동물농장’도 캐릭터만 다를 뿐 몽키레전드처럼 캐릭터 거래를 내세운 유사 금융 플랫폼이다.

캐릭터 투자로 유혹하는 유사 금융 플랫폼들은 가상 캐릭터를 거래하는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고 중개 수수료를 받는 ‘P2P(개인 간 거래) 회사’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무늬만 P2P’인 전형적인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 사기)로 보고 있다. 게임에 친숙한 세대를 유혹하기 위해 캐릭터를 내세워 포장만 새로 했을 뿐이지 고전적인 금융 사기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혁신적인 재테크 플랫폼’이라는 소문과 달리 일부 유사 금융 플랫폼들은 갑자기 폐쇄됐다. 돈이 묶여 버린 투자자들이 이들 플랫폼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자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사 금융 플랫폼들이 태국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수십만 명의 글로벌 사용자를 확보했다고 광고하며 달러로 거래하다가 갑자기 잠적하면서 피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 급전 찾는 ‘1020세대’ 노리는 불법 사금융 기승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황모 씨(25)는 최근 ‘3050’ 대출 때문에 애를 먹었다. 30만 원을 일주일 쓰고 50만 원을 갚는 고리 대출이었다. 일주일 뒤 돈을 마련하지 못한 그는 20만 원을 내고 대출을 일주일 연장했다. 이런 식으로 한 달 동안 대출 연장에만 120만 원이 들었다. 사채업자들은 돈을 갚지 못하는 황 씨를 들볶기 시작했다. 황 씨뿐 아니라 그가 대출조건으로 전화번호를 알려준 가게 사장과 친구들 연락처로 빚 독촉 전화를 쉴 새 없이 걸어댔다.

급전이 아쉬운 20대 청년들은 황 씨 같은 ‘3050대출’이나 ‘작업대출’ 등 불법 대출에 빠져들고 있다. ‘작업대출’은 금융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접근해 재직증명서 등 대출 관련 서류를 허위로 만들어주고 거액을 떼어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금융회사에 위조 서류를 제출하는 등 작업대출에 연루되면 금융거래가 제한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형사 처벌(징역 또는 벌금)을 받을 수 있다.

불법 사금융은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와 대부업 시장 위축을 틈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신용이 낮은 청년층의 상당수가 급전이 필요하면 제2금융권을 거쳐 결국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는데 2018년 최고 금리 인하 등의 영향으로 대부업체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 대출 잔액은 15조9000억 원으로 6월 말(16조7000억 원)보다 8000억 원가량 쪼그라들었다. 대부 이용자도 177만7000명으로 같은 기간 23만 명 줄었다. 이재선 한국대부금융협회 이사는 “업체들이 대출 취급을 대폭 줄였다”며 “소비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났을 것이란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10대까지 노리는 SNS 불법 대출 그림자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발령된 금융 피해 관련 소비자경보만 13건이다. 지난해 발령 건수(4건)의 3배가 넘는다.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제보도 올해 4, 5월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가량 늘었다. 2019년 하루 평균 20건이던 금융 사기 제보는 올해 4월 35건, 5월 33건으로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젊은층이 자주 이용하는 소셜미디어 공간을 무대로 활동하는 신종 사기범들이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을 노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고등학생 A 양(17)은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의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부모님 몰래 SNS에서 알게 된 소액 사채업자에게 연락했다. 사채업자는 3일 뒤 26만 원을 갚는 조건으로 20만 원을 빌려줬다. 법정 이자율(연 24%, 월 2%)보다 크게 높은 하루 10%의 고리 사채였다. 부모님의 휴대전화 번호, 주민등록번호까지 요구하고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지각비’로 시간당 1만 원을 뜯었다. 돈을 갚지 못한 A 양은 사채업자들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까 봐 두려움에 떨다가 친구들에게 손을 빌렸다. A 양이 5일간 사채업자에게 뜯긴 돈은 원금의 3.6배인 72만 원이었다. 청소년에게 접근해 소액을 단기로 빌려준 뒤 고액 이자를 뜯어내는 이른바 ‘대리입금’ 피해를 당한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 5월까지 ‘대리입금’ 제보가 2100건 들어왔다. 일부 청소년들은 대리입금 업자들의 수법을 모방해 학교 친구들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하기도 한다. 금감원은 최근 교육부를 통해 일선 학교에 대리입금 피해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금감원은 전담팀을 설치하고 불법 금융광고 차단에 나서는 한편 경찰, 법무부와 검찰, 지방자치단체, 국세청과 연말까지 집중 단속을 벌일 예정이다. 청년들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부득이 대부업을 이용해야 한다면 반드시 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해야 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코로나19로 자금 상황이 악화된 사람들이 금융 사기에 쉽게 넘어가고 있다”라며 “대출 문자나 대출 권유 전화는 사기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정 yunjng@donga.com·김동혁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