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응급환자 이송에 36분… 코로나로 11분 늘어

전주영 기자 , 전주영기자

입력 2020-07-28 03:00 수정 2020-07-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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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지침 따르자니… 현장은 역부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고열이나 기침 증상이 있는 응급환자를 태운 119구급차들이 환자를 병원까지 제때 이송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바이러스 전파를 우려한 병원들이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해 1∼6월 구급차가 환자 이송 임무를 마치고 소방서로 다시 복귀하기까지는 61분이 걸렸는데 올해 같은 기간엔 90분이 걸렸다. 길에서 29분을 더 보낸 것이다. 의료계에선 무더위가 시작돼 온열환자가 많아지면 응급환자 거부 사례가 급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오후 2시 40분경.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80대 여성 A 씨가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요양보호사가 곧바로 신고해 119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A 씨를 싣고 떠났다. 하지만 A 씨가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 도착한 건 2시간 40분이 지난 뒤였다. 이동 중에 구급대원들은 A 씨를 받아줄 곳을 찾아 여러 병원에 연락을 했다. 26번째 만에 A 씨를 받겠다는 병원이 나왔다. 다른 병원들은 거부했다. A 씨가 의식이 없는 상태여서 평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증상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달 20일 낮 12시 15분경, 서울의 자택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채 발견된 70대 여성 B 씨도 119구급차에 실려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기까지 5곳의 병원이 진료를 거부했다. 심정지 환자는 기관 삽관을 해야 하는데 B 씨가 코로나19 감염자일 가능성이 높아 바이러스 전파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A, B 씨의 경우처럼 코로나19 전파를 우려한 병원들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응급환자 이송 시간이 크게 늘었다.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느라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지난달 서울 은평구에선 70대 여성 응급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1시간 동안 병원을 찾아다니다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지만 환자는 결국 숨졌다. 고열 증세를 보인 이 환자를 병원 10곳이 거부했다.

27일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올해 1∼6월 8530차례의 구급 출동에서 고열 및 기침 증상이 있는 응급환자를 병원까지 이송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36분이었다. 구급차가 다시 병원에서 출발해 소방서로 복귀하기까지는 54분이 걸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각각 25분, 36분이었다. 전체 현장활동 시간이 61분에서 90분으로 29분 늘어났다. 구급차가 소방서로 복귀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으려다 보니 출발지점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가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환자를 받아주는 경우가 줄었기 때문에 다른 구(區)까지 이동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며 “이렇게 되면 다른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횟수가 줄어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발열 등 코로나19 증상이 있는 응급환자를 받지 않는 이유는 응급실 내 격리병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방역 지침에 따르면 37.5도 이상의 발열이나 호흡기증상이 있는 응급환자는 응급실 내 격리병상인 ‘응급격리진료구역’에 먼저 수용해야 한다. 격리병상이 모두 찼을 땐 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있다. 격리병상에 수용된 환자는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다른 검사를 받을 수도 없다.

이 때문에 하루 평균 150명가량의 응급환자가 찾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는 최근 밤마다 환자를 태운 구급차 서너 대가 대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들어갈 수 있는 격리병상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복지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한 3월 전국 97개 병원에 대해 응급격리진료구역을 최소 5개 만들게 했다. 서울의 경우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한양대병원, 고려대구로병원, 강북삼성병원 등 9곳인데 격리병상은 모두 합쳐도 45개에 불과하다. 의료계에서는 장마철이 끝나가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돼 온열환자가 늘어나면 병원들의 응급환자 거부 사례가 급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홍기정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방역당국이 제시하는 응급실 수용 지침을 지키려다 보니 다른 중증응급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응급실 수용 관련 기준을 보완하거나 검사 시간 단축, 음압병실 확대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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