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목사 vs 마당발 신부… 무대 위에서 ‘신의 사랑’ 노래하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07-27 03:00:00 수정 2020-07-27 0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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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미제라블’ 주교 역 맡은 임동진 목사-홍창진 신부

연극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 역을 맡아 막바지 연습중인 임동진 목사(왼쪽)와 홍창진 신부가 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발레연습장에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작품은 이성구 연출로 장발장 역은 윤여성 문창완이, 코제트 역은 걸그룹 ‘티아라’ 출신 함은정과 배우 권아름이 더블 캐스팅 됐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배우 목사와 ‘마당발’ 신부가 만났다. 연극 ‘레미제라블’(예술감독 윤여성)의 미리엘 주교 역에 캐스팅된 임동진 목사(76)와 홍창진 신부(60·천주교수원교구 기산성당)다. ‘레미제라블’은 다음 달 7∼16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로 잘 알려진 임 목사는 2000년 갑상샘 암 수술 후 급성 뇌경색으로 반신불수 판정을 받았다. 뒤늦게 루터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2016년까지 10년간 경기 용인시 열린문교회 담임목사를 맡았다. 그의 아들 영희 씨는 미국 한인교회 목회자, 딸 유진과 예원 씨는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홍 신부는 천주교주교회의 종교 간 대화위원회 총무로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한 통일문제 전문가이자 장애인 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 대표다. tvN 종교인 토크쇼 ‘오 마이 갓!’의 단골 멤버였고 영화와 TV, 연극에 ‘잠깐 배우’로 곧잘 등장했다. 21일 예술의전당의 카페에서 무대와 종교, 삶을 키워드로 대화를 나눴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햄릿

임동진(이하 임)=미리엘 주교는 잠깐 등장하지만 장발장의 인생을 바꿔놓는 인물이죠. 분노와 저주의 수렁에 빠져 있던 그를 건져내는데, 그 힘은 사랑입니다. 지금 시대는 사랑이 고갈된 시대죠. 소탈한 홍 신부님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게 편해요.


홍창진(이하 홍)=토월극장에서 선생님과 같은 배역으로 선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클래식 연주자가 미국 카네기홀에 서는 게 꿈인 것처럼 토월 무대는 연기자의 꿈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신자들의 성당과 교회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인데 미리엘 주교를 통해 메시지를 주는 느낌입니다.

=제 연기는 무대의 틀에서 훈련된 것인데, 요즘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해요. 홍 신부님을 보면 ‘맞아, 저렇게 생활처럼 하는 거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요.

=저야 사제복 입으면 자연스러워져요. 저는 느낌대로 연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사를 잊지 말아야지 하는데, 임 선생님은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게 보여요.

=홍 신부님은 캐릭터가 강하지만 악역은 안 어울릴 것 같아요. 예쁜 배우들이 악역을 맡는 게 요즘 추세거든요(웃음). 아흔 살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어요. 저도 무대에서 인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언젠가 인간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햄릿’ 같은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네요(웃음).

○ 오 마이 갓!

=아들은 목회자, 두 딸은 연기자인데 제 뜻대로 한 게 아닙니다. 신부님 옆에 계시지만 인간은 자기 길을 쉽게 걸을 수 없어요. 하나님 섭리에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야죠.

=저처럼 ‘날라리’가 아직도 사제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한 일이죠. 평생 교회를 지킬 것 같던 신학생 시절 친구는 다른 길을 걷고 있고요. 그분의 뜻이 무엇인가 기도하게 됩니다.

=지금도 좌측 소뇌의 70%는 기능이 없어요. 뇌수술 뒤 사흘 안에 세상을 뜬다며 장례 준비하라고 했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 거죠.

=하느님을 만났네요.(개신교 표기는 하나님, 가톨릭은 하느님이다.)

=그때 제가 죽지 않았으니까, 이유가 있다고 믿었죠. 수술 뒤 저는 부축을 받지 않았어요. 집사람에게 평생 부축할 거냐며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제가 움직였어요.

○ 군종 목사와 군종 신부

=‘레미제라블’은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모두 미리엘 주교 같은 사랑으로 남의 잘못을 보듬어주길 바랍니다.

=코로나 시대의 고립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입니다. 하지만 나만 아픈 게 아니라 이웃도 아픈 것이죠. 자기 안으로만 가면 극복이 어렵습니다.

=여러 직함이 있지만 누가 ‘목사님!’ 하고 불러줄 때 마음이 정리돼요. 세상의 것에 묻혀 있을 때 누가 건져내주는 듯한 느낌이죠. 루터 교단이 70세면 정년인데 목회를 하면서도 연극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무대에 복귀하면서 눈물과 감동이 쏟아졌어요.

=지금은 은퇴라는 말의 의미가 없는 세상입니다.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죠. 신부도 그렇고요. 공연장은 배우들이 전투를 벌이는 무대더군요. 저희는 그 긴장과 고독 속에 싸우는, 배우를 위한 군종 목사와 군종 신부인 셈이죠.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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