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 거길 또 들어간다고?” 좀비가 삼킨 서울의 모습은…

김재희기자

입력 2020-07-21 15:29 수정 2020-07-2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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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도’ 이목원 미술감독 인터뷰


“미쳤어? 거길 또 들어간다고?”

영화 ‘반도’의 주인공 정석(강동원)은 돈이 든 트럭을 빼내기 위해 반도에 들어가겠다는 매형 철민(김도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한 문장은 반도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를 함축한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한 땅. 4년 동안 방치돼 폐허가 된 땅. 발을 들이는 것조차 미친 짓으로 간주되지만 정작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공간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이 ‘반도’의 시작이었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반도는 개봉 6일 만인 21일까지 19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동시개봉한 동남아시아 4개국에서도 예매율 1위를 차지했다.

한국형 ‘포스트 아포칼립스’(대재앙으로 인류와 문명이 사라진 이후 상황)를 이미지로 구현한 이는 ‘부산행’ ‘염력’에 이어 세 번째로 연 감독과 호흡을 맞춘 이목원 미술감독(43)이다. 한재림 감독의 차기작 ‘비상선언’에 합류해 대형 여객기 세트를 만드는 작업에 한창이라는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반도의 시작은 상상이었다. 인류와 문명이 사라진 땅은 현존하지 않기에 ‘부산행 이후 4년 간 방치된 서울은 어떻게 변했을까?’를 떠올렸다. 원전 사고로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된 후쿠시마, 체르노빌 일대를 ‘구글어스’로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흙으로 덮인 도로, 물에 잠긴 지하 주차장, 물 위를 떠다니는 한강 구조물들의 이미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반도를 시작할 때 운전을 하던 중 도심의 버스정류장에 풀꽃이 핀 걸 봤어요.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자연은 바로 자신의 강함을 보여줍니다. 반도에서도 인간의 통제가 사라져 완전히 ‘방치’된 서울을 자연이 변형한다는 원칙 하에 디자인했어요.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가 그대로 휩쓸고 지나갔을 거라고 설정했죠”





기존 장소를 사용할 수 있는 신(Scene·장면)은 거의 없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신의 배경인 인천항 주차장, 자동차 추격신이 벌어지는 서울 도심의 도로 등은 모두 세트로 제작됐다. 대전의 1983㎡(600평) 규모 세트장에 기본 도로를 깔고 장면마다 변화를 주며 촬영했다.

“세트장에 아스팔트 도로를 시공한 뒤 방치됐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수작업으로 도로 균열을 하나하나 조각했습니다. 신이 바뀔 때마다 도로에 풀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팀이 농부들이 사용하는 엉덩이 받침 의자를 준비해 풀을 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요.”


상상만큼 중요했던 건 ‘익숙함’이었다. 반도는 폐허가 됐지만 4년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익숙한 공간의 변형을 통해 몰입감을 높이려 했다. ‘버려진 쇼핑몰’은 익숙함을 구현해낼 최적의 공간이었다. 반도에서 살아남아 권력을 잡은 631부대는 폐허가 된 쇼핑몰을 아지트 삼아 생활한다.


“부대 아지트를 쇼핑몰로 정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쇼핑몰 내에 가상의 상호가 아닌 실제 상호를 최대한 많이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제작사에 요청한 것이었어요. 커피빈, 반디앤루니스 등의 간판을 배치하고 그 공간이 방치된 모습을 의도적으로 노출했습니다.”

이 감독의 영화미술은 상상과 실재를 넘나든다. ‘신과함께: 인과 연’ ‘신과함께: 죄와 벌’ 에서는 사후 세계를 재현했고, ‘부산행’에서는 실제 KTX를 옮겨온 것 같은 세트를 만들어냈다. 진짜를 더 진짜처럼, 가상도 실재처럼 그리는 이 감독이 안목을 키우기 위해 매일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상 속 모든 순간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보관하는 것.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색다르게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 새로운 것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영화미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감정을 유치원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시킨 디즈니 ‘인사이드 아웃’처럼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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