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여자, 세 번째 눈으로 이방인을 그리다[한국미술의 딥 컷]

김민 기자

입력 2020-07-17 03:00 수정 2020-07-17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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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딥 컷〈4〉
프랑스 퐁피두센터 ‘여성작가전’ 미술가 112명에 포함된 최욱경


최욱경의 1960년대 작품은 강렬한 색채 대비로 공간을 활성화한다. 1970년대 말에 이르면 그림 속 형태의 질감이 흐드러진 꽃이나 깃털 같은 형태로 살아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무렵 최욱경은 한국의 자연에도 심취해 ‘학동마을’ 같은 작품도 남겼다. 그의 1977년 대작 ‘환희’,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X456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는 내년 여성 작가로만 구성된 기획전 ‘Women in Abstraction’을 연다.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저평가된 여성의 역할을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다. 전 세계 미술가 112명 중 최욱경(1940∼1985)도 이 전시에 포함됐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최욱경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하찮은 꽃 이파리나 새의 깃털. 보잘것없는 이 대상들이 나에겐 모두 흥미롭고 신비해 보인다. …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의 비상에서 내가 환희와 기쁨을 맛보고 사물의 이입을 연상하며, 움직임의 연결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움. 그것을 나는 환희라고 말하고 싶다.”

최욱경은 흔히 ‘요절한 천재’ ‘엘리트 코스를 밟은 화가’로 불린다. 교학도서주식회사를 창립한 최상윤과 조하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김기창(1914∼2001) 박래현(1920∼1976) 부부의 화실에서 첫 미술 교육을 받는다.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대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작품과 기록 속 그는 엘리트보다 고독한 이방인에 가깝다. 자화상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년)에서 자신을 ‘세 번째 눈’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성난 여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그와 가깝게 지낸 작가 마이클 애커스는 “최욱경은 자신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맞지 않는다고 자주 농담했다”고 회고한다. 1980년대 글에서 최욱경은 “남성 작가는 ‘화가 ○○○’이면 되는데 여성 작가는 왜 앞에 ‘여자’를 붙여야 하나”라거나 “여자로서의 감성과 체험에서 걸러져 나온 표상을 직접적으로 구사한 시각적 용어로 표현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자신의 작업실에 그는 ‘무무당(無無堂)’이란 이름을 붙였다. 느껴지는 허무를 그는 몸의 감각으로 극복하고자 몸부림쳤다. 1985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생을 마감했지만, 고독할지언정 스스로에게 솔직했던 그의 이야기는 이제야 걸맞은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 최욱경 작가 (1940∼1985)
▽1940년 서울 출생
▽1963년 서울대 회화과 졸업
▽1968년 미국 프랭클린 피어슨대 조교수
▽1971년 서울 신세계갤러리 개인전
▽1977년 미국 뉴멕시코 로즈웰미술관 개인전
▽1985년 별세
▽1987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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