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대전차 방호 기지가 예술길로 탈바꿈

홍진환 기자

입력 2020-07-01 18:07 수정 2020-07-0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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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역사적으로 따뜻한 물이 흘러 교류의 장이었고, 조선시대 청나라에서 환향한 여성의 몸을 씻으며 마음을 치유하던 홍제천 물길의 의미를 담아 빛과 색으로 공간을 채우는 라이트 아트 작품, 사람의 온기로 색이 바뀌는 인터렉티브 적용

50년간 버려졌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유진상가’ 지하구간이 ‘빛의 예술길’로 탈바꿈했다. 1일 시민들에게 공개된 250m 구간은 빛, 소리, 색, 기술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놀이터 ‘홍제유연(弘濟流緣)’으로 완성됐다.

1993년 8월 28일 촬영한 유진 상가. 1970년대 A, B동 주상 복합으로 지어진 유진 상가는 외곽순환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B동이 철거되고 현재 A동만 남았다. 동아일보DB
유진상가는 1970년대 남북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사시 대전차 방호목적으로 홍제천을 복개해 주상복합 형태도 지어졌다. 홍은동 사거리가 뚫리면 곧장 청와대와 서울 시가지가 위험에 빠진다는 계산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물의 지하 공간은 아무도 지나다니지 못하게 막혀있었다.

예술놀이터로 변신한 유진상가의 지하 구간
현재까지 청과물 시장과 잡화 상점으로 영업 중인 유진상가
서울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해 이 공간을 예술 작품으로 꾸미는 작업에 착수했고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열린공간으로 만들었다. ‘홍제유연(弘濟流緣)’은 ‘물과 사람의 인연(緣)이 흘러(流)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서울시는 “화합과 이음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 공간이 올해 한국전쟁 70주년과 맞물려 더 뜻 깊다.”고 설명했다.

홍제유연 안내도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공간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했다. 건물을 받치는 100여 개의 기둥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설치미술, 조명예술,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등 8개의 작품을 설치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미장센 홍제연가(弘濟戀歌)’ 3D 홀로그램 펜을 활영해 연출. 태초부터 연속된 생명의 탄생과 생태계 순화의 의미를 50년만에 열린 홍제천에 비추는 3D 홀로그램 영상작품.
특히 설치 작품 가운데 ‘미장센_홍제연가’는 공공미술 최초로 3D 홀로그램을 적용해 눈길을 끌었다. 중앙부에 설치된 길이 3.1m, 높이 1.6m의 스크린은 국내 야외 스크린 중 가장 큰 규모다. 중앙부를 포함해 크기가 다른 9개의 스크린에서는 홍제천의 생태를 다룬 영상들이 입체적으로 떠오른다.

미디어 라이트 작품 <온기>
미디어 라이트 작품 <온기>

또한 42개의 기둥을 빛으로 연결한 작품 ‘온기’를 배경으로 홍제천 물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보는 독특한 경험할 수 있다. 작품에는 지정된 센서에 체온이 전해지면, 기둥에 설치된 조명의 색이 변하는 인터렉티브 기술이 적용됐다.

‘홍제유연(弘濟流緣) 미래 생태계 ’ 홍제초, 인왕초 어린이들이 홍제천변의 생태계를 탐험한 후 앞으로 이곳에 나타날 상상의 동물과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에 대한 상상력을 담은 벽화로, 블랙라이트를 비춰가며 숨겨진 장면들을 찾아보는 시민참여 작품
‘홍제 마니차’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 내 인생의 빛’을 주제로 1,000여명의 시민의 메시지들을 한곳에 새겨, 손으로 돌려가며 감상할 수 있는 아날로그 인터렉티브 작품으로, 서로의 빛나던 순간들을 함께 나누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설치미술 작품

이 외에 시민참여로 완성된 작품도 있다. ‘홍제유연 미래생태계’는 홍제천 인근에 있는 인왕초등학교와 홍제초등학교 학생 20명이 생태전문가와 함께 개천을 탐험하고, 상상의 생명체들을 그려내 빛나는 야광벽화로 만들었다.

‘SunMooonMoonSun, Um’. 땅 속에 묻혀있던 공간이 홍제유연으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채워지는 소리와 빛의 의미를 한자음절의 뜻에 담아 흔들 리는 수면위에 투영된 이미지로 감상하는 설치미술 작품
‘흐르는 빛, 빛의 서사 (뮌 作)’ 홍제천의 깊은 역사와 북한의 남침 대비 탱크 전초기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진상가의 근현대적 의미를 재해석한 빛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만화경처럼 기둥과 물길에 투사 되는 설치미술 작품
‘숨 길’ 200m가 넘는 깊은 홍제유연 길에 자연의 빛이 드리운 듯한 숲 그림자 산책길을 만들어, 사운드 아티스트의 소리를 배경으로 천천히 걸으며 자신의 걸음과 호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조명작품
‘흐르는 빛, 빛의 서사 (뮌 作)’ 홍제천의 깊은 역사와 북한의 남침 대비 탱크 전초기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진상가의 근현대적 의미를 재해석한 빛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만화경처럼 기둥과 물길에 투사 되는 설치미술 작품

‘홍제 마니차’에는 ‘내 인생의 빛,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에 대한 시민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700여개의 메시지를 손으로 천천히 돌려가 현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홍제유연’은 오전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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