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 명품’ 불티나게 팔려서 기사회생?…면세점 “두달 월세 내면 끝”

뉴스1

입력 2020-07-01 12:15 수정 2020-07-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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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루이비통 매장 앞에 소비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 25일부터 전국 백화점·아울렛 8개 점포에서 면세점 재고 명품을 최대 60% 할인하는 ‘면세 명품 대전’을 진행했지만,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초고가 명품은 제외됐다.2020.6.27/뉴스1© 뉴스1 최동현 기자

 롯데와 신세계, 신라 등 국내 면세점들이 지난달 약 400억원 규모의 재고 면세품 판매에 성공했다.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모바일 앱과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오프라인 매장 역시 새벽 4시부터 대기줄이 생기는 등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면세업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코로나19로 급감한 매출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인데다 ‘남는’ 것도 별로 없어서다.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면세 명품’을 보면서도 차마 웃을 수 없는 면세업계의 ‘숨은 뒷얘기’를 들어봤다.

◇면세점 매달 1조씩 매출 주는데…재고품 물량 고작 800억

1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올가을까지 최대 800억원 상당의 재고품이 풀릴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판매 추이로 볼 때 재고 면세품 판매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면세업계는 약간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수준이어서 위기 극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고 면세품 판매’는 애초 수익성이 크지 않은 장사다. 게다가 ‘처분 가능한’ 재고를 몽땅 팔아도 국내 면세업계 ‘한 달 치 매출 감소분’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면세점의 총매출은 1조179억3519만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이었던 1월(2조247억원)에 비해 49%(1조68억원) 급감했다. 앞선 4월에는 매출액이 9867억원으로 2017년 사드(THAAD) 사태 이후 처음으로 1조원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반면 면세업계가 국내에 팔 수 있는 ‘장기 재고품’은 700억원에서 최대 820억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그중 절반인 400억원어치 물량이 6월 시중에 유통됐다. 롯데면세점이 200억원, 신라면세점은 100억씩이다. 신세계면세점도 약 100억원대 물량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화면세점은 10억원 상당의 면세품을 판매 중이다.

면세업계가 매달 1조원씩 매출을 까먹고 있는 상황이지만 팔 수 있는 재고 면세품이 고작 800억원에 불과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앞서 관세청은 지난 4월29일 ‘6개월 이상 장기재고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국내 판매를 허용했다. 단 일반 수입품과 같이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붙여서 팔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판매 기간은 10월29일까지다.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롯데·신라 ‘빅3’ 면세점 창고에 쌓인 재고는 약 3조원 규모다. 이 중 6개월 이상 장기 재고는 1800억원으로 6% 남짓에 불과하다. 단번에 94%의 재고가 판매 대상에서 빠진 셈이다.

여기에 면세점의 ‘캐시카우’(Cash Cow)인 화장품, 술, 담배도 모두 빠졌다. 특히 화장품은 면세점 매출의 50%를 담당하고 있어 ‘면세품의 꽃’으로 불리지만, 이번 국내 판매에서는 아예 제외됐다.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술·담배는 높은 관세가 발목을 잡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캐시카우 품목이 뭉텅이째 빠진 이유에 대해 “화장품은 유통기한에 민감하기 때문에 6개월 이상 묵힌 상품은 팔 수 없다”며 “술과 담배도 관세가 50%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세금을 붙이면 가격 경쟁력이 전혀 없다”고 털어놨다.

결국 면세업계가 쥐고 있는 3조원의 재고 중에서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은 최대 630억원 상당(2.1%)의 ‘명품 패션 잡화’만 남는다. 여기에 관세와 부가세를 붙인 가격이 820억원이다. 신세계·롯데·신라 3대 면세점이 매달 인천공항에 납부해야 하는 두 달 치 임대료(838억원)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관세청이 기대한 ‘1600억원 유동성 확보’는 시작부터 불가능했던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의 재고 보유량 중 장기재고의 원가 추정가가 1800억원이어서 그런 계산이 나온 것 같다”며 “실제 팔 수 있는 재고는 매우 한정적이어서 그 정도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헐값에 파느니 태워버린다”…명품 브랜드 ‘콧대’에 면세점 ‘끙끙’

해외 명품 브랜드의 도도한 ‘콧대’도 암초로 작용했다.

재고 면세품에서 화장품, 술·담배를 빼면 명품 패션잡화만 남았지만, 이마저도 ‘할인 판매’를 거부하는 명품 브랜드의 반발에 부딪혔다. 정부의 긴급 조치가 시행되고도 한 달 뒤에야 국내 판매가 시작된 이유다.

‘떨이 판매’는 명품업계의 금기(禁忌) 중 하나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초고가 명품은 공식적으로 ‘노세일’(no sale)‘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비인기 상품을 싸게 처분하는 것보다 고고한 ’브랜드 가치‘가 더 큰돈이 되기 때문이다. 3대 명품 브랜드가 매년 수백억원 상당의 이월 명품을 소각하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면세점은 상품을 직접 구매해서(사입,仕入)해서 되파는 구조로 운영된다. 백화점이 매장을 업체에 임대해 주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하지만 면세점이 명품을 사서 판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쉬운 쪽은 면세점이기 때문에 판매 품목부터 할인율까지 일일이 갑(甲)인 명품 브랜드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어떤 브랜드를 입점시켰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을‘(乙) 일 수밖에 없다”며 “명품 브랜드를 일일이 설득하느라 한 달 넘게 협상이 공전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면세점 재고 명품‘은 대부분 가격 할인에 유연한 준명품(매스티지)이나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채워졌다. 이 때문에 롯데백화점이 최대 60% 할인율을 내걸고 ’면세 명품 대전‘을 열었지만 진짜 ’명품족‘(族)은 루이비통·구찌 매장이 있는 엉뚱한 점포로 몰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면세점은 800억원 상당의 명품 재고를 쌓아 두고도 할인 판매를 ’허락‘해 준 브랜드만 고르고 골라 시중에 유통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여전히 400억원어치 재고가 남아있지만 이후 풀리는 물량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 6월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200억원 상당의 면세 재고품을 푼 롯데면세점은 추가 물량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 신라면세점도 이번주 2차 면세품을 유통할 예정이지만 1차(100억원)보다는 물량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면세점의 형편도 다르지 않다. 동화면세점은 지난 5일부터 재고 면세품 22개 브랜드 604개 품목에 대한 국내 판매를 시작했지만, 총 물량은 10억원 남짓이다. 동화면세점의 6월 매출이 약 3000만 달러(316억원)인 점을 비춰보면 재고 면세품을 모두 팔아도 ’하루 매출‘을 채우는 꼴이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재고 면세품을 팔아서 이익을 내겠다고 생각하는 면세점은 없다”며 “원가를 회수하고 ’추가 손실‘을 막는다는 개념”이라고 귀띔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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