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처리장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경로 찾는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06-26 03:00:00 수정 2020-06-2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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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하수기반역학’ 연구 시동

현대건설이 콜롬비아 베요시에 건설한 하수처리장의 모습. 하수처리장에 모인 생활하수를 분석하면 코로나19 감염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현대건설 제공
올해 2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처음 보고된 뒤 이 지역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확산이 이어졌다. 방역 전문가들은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로 비춰 볼 때 이미 지난해 말 이 지역에 코로나19가 광범위하게 퍼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전문가들의 추정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이탈리아 고등보건연구소(ISS)가 다른 연구를 위해 모아뒀던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의 생활하수 샘플 40개 중 일부에서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RNA가 확인된 것이다. 바이러스는 지난해 12월 18일 롬바르디아주 밀라노와 토리노의 도시 중심 정화조에서 채취한 하수에서 검출됐다. ISS는 이달 18일 “하수도 폐수가 이탈리아의 바이러스 전파 양상을 밝혀낸 스파이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하수를 이용해 사람들의 생활 습관과 건강 상태를 추적하는 ‘하수기반역학’이 한몫을 한 셈이다.

○하수도 분석하니 마약 사용 지역까지 검출
하천에서 미세 오염을 찾는 연구를 하는 홍석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자원순환연구센터장은 “도시의 각 가정에서 버려지는 하수에는 인간 생활상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하수에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다양한 물질부터 인간의 대소변까지 지역민의 모든 활동 상황이 담겨 있다. 코로나19 환자가 배출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같은 바이러스나 각종 세균, 사람이 먹는 의약품이나 영양제, 담배나 알코올 성분이 모두 하수에서 검출된다.

하수기반역학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20년 가까이 마약 범죄를 막는 모니터링에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1년 처음 도입됐고 유럽연합(EU)은 2010년 하수분석네트워크를 설립해 지역별로 마약류 사용을 관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정은 부산대 화공생명환경공학부 교수팀이 2013년 부산 여름철 해수욕장 폐수에서 필로폰 검출량이 2.4배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바탕으로 올해 전국 57개 공공하수처리장의 생활하수를 분석해 신종 마약류 사용 행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첫 환자 발생 전 예측도 가능해
하수기반역학은 올해 들어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감염병을 비롯한 인간 질병 예측으로 무게추가 옮겨 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는 환자의 대변으로 방출되는 바이러스양이 많아 유리하다. 서울보라매병원 연구팀은 이달 24일 코로나19 환자는 대변에서 오랜 기간 높은 농도로 바이러스 RNA를 방출한다는 분석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탈리아처럼 지역사회에 숨어 있는 코로나19 환자를 예방하고 추적하는 데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네덜란드 KWR 물연구소 헤르트얀 메데마 연구원팀은 네덜란드 중부도시인 아메르스포르트의 하수를 분석한 결과 이 지역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확인되기 6일 전 이 바이러스의 RNA를 검출했다고 국제학술지 ‘미국화학회(ACS) 환경과학 및 기술 레터스’에 이달 10일 공개했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도 미국 코네티컷주 하수처리장에서 감염을 알아차리기 1주일 전 농도가 늘어나는 것을 발견했다고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하수를 활용하면 지역 주민의 검체를 모두 모아 진단검사를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일 필요도 없고 그만큼 별도 장소나 관리 인력도 필요가 없다. 엄청난 양의 하수 속 바이러스의 흔적을 찾는 일이라 정확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이미 여러 국가와 도시가 이를 활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와 이탈리아 ISS, 미국 미네소타주 브레이너드시 등에서 하수 바이러스 농도를 관찰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바이러스 외에도 항생제 과용 추적에도 활용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하수 속 다양한 오염물질 관리로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에는 항생제나 화학물질처럼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인체에 피해를 주는 ‘미량오염물질’이나 유해성을 예측할 수 없는 미세플라스틱을 하수 속에서 관찰하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KIST는 지난해부터 환경부와 함께 전국 하수처리장에서 항생제 같은 50여 개 미량오염물질을 관측하고 있다. 홍 센터장은 “항생제와 같이 인체에 축적되는 물질은 물이 순환하며 계속해 쌓이고 언젠가 피해를 주게 된다”며 “데이터를 미리 모으면 보건 문제가 생길 때 원인을 빠르게 찾아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하수기반역학을 도입할 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2일 보고서를 통해 하수기반역학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에서도 관련한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도시지역 평균 하수처리율이 95.9%로 높고 스마트도시 같은 정보기술(IT)에도 강하다”며 “각종 환경 변화나 감염병 대처를 위해 기술 검토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하수기반역학::

하수처리장으로 들어오는 하수의 성분을 분석한 정보를 통해 하수 수집 구역 내 도시민의 생활이나 건강을 예측하는 학문.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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