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논란’ 조영남, 무죄 확정…대법 “예술작품, 사법 개입 자제해야”

김민 기자 , 신동진 기자

입력 2020-06-25 18:19 수정 2020-06-25 18:2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예술 작품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영역이며, 위작이나 저작권 다툼이 없는 한 사법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

25일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조수를 사용해 완성한 그림을 판매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씨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미술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할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첫 판결이었다. 미술계의 조수 사용이 르네상스 시대부터의 오래된 창작 방식임에도 ‘작품은 손으로 직접 그려야만 한다’는 일반 인식을 새롭게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화단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은 조 씨가 화가 송모 씨의 그림에 덧칠과 서명만 해 자신의 것으로 속여 팔았다며 조수 송 씨를 ‘대작(代作)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수 송 씨는 작가가 아닌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며 작품 거래에서 친작(親作) 여부를 필요한 정보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2심 변론을 맡은 구본진 변호사는 “현대미술은 손기술이 아닌 작가의 사상과 인식이 중요하기에 친작 여부가 작품 거래에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지 않는다”며 “이 사건이 유죄라면 박서보, 김창열, 데미언 허스트 같은 국내외 유명작가도 사기 혐의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수 사용 여부가 작품의 시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국제적 기준임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다양한 외신 기사로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창작의 자유가 침해될 정도로 형벌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주요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창작 방식은 작가가 선택할 문제임을 인정한 것이다. 예술가의 조수 사용에는 영세한 규모부터 대규모 스튜디오, 전체 작품의 일부부터 전부를 의뢰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조수 사용을 사기로 본다면 그 방식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규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예술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고 사법권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그림은 (예술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 ‘미술 전공을 해야 예술을 한다’는 화단 일각의 견해도 성찰에 직면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인사는 “조영남을 비판하고 싶다면 비평으로 다룰 일을 법정에 가져갔던 것”이라며 “가수가 립싱크를 한다고 처벌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