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동아일보

입력 2020-06-24 16:49 수정 2020-06-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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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 이중근 회장 직접 쓴 ‘6·25전쟁 1129일’ 화제


올해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말하는 6·25 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아울러 한국을 배제한 채 맺은 정전협정 67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남과 북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표면적인 평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동안 물밑에서는 간헐적이고 국지적으로 크고 작은 교전을 꾸준히 해왔다. 분명히 6·25는 우리 모두에게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250여대의 탱크와 100여 대의 전투기를 앞세운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무방비 상태의 남한을 전면 공격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1129일간 진행되었다. 이 기간 동안 국군 62만, 유엔군 16만, 북한군 93만, 중공군 100만, 민간인 250만, 이재민 370만, 전쟁미망인 30만, 전쟁고아 10만, 이산가족 1,000만 등 당시 남북한 인구 3,000만 명의 절반이 넘는 1,900여 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한반도 전 국토가 전화의 상처를 입고 피폐화 되었다.

6·25 전쟁은 핵무기만 제한되었을 뿐 제3차 세계대전이나 다름없었다. 인류 역사상 한 공간에서 전 국민과 25개국의 200만에 가까운 군인이 치열하게 치른 전쟁도 흔치 않다. 당시 세계의 독립국가 93개국 중에서 16개국이 UN결의에 따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 피를 흘리는 등 60개국이 남한에 병력이나 물자를 제공했고, 이에 대해 소련과 중공군은 대대적으로 북한을 지원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하여 아시아의 조그만 반도에 불과한 남과 북간의 싸움에 휘말려 고귀한 생명을 받치고 승리를 위해 물자를 공급했던 것인가? 그리고 전쟁의 당사자인 우리는 7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미 서구에서는 십여 년 전에 종식을 고한 동서 냉전의 유물인 이념논쟁에 얽매여 있는 것인가? 한때 운동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퍼졌던 주체사상이 민주화를 성취한 현재에도 굳세게 살아남아 국민의 대의 기구인 국회에서 조차 종북주의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6·25 전쟁의 실상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해묵은 레드 콤플렉스의 뿌리가 따지고 보면 6·25 전쟁 이후 분단의 실체에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회장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6·25 전쟁에 대해 ‘당시 있었던 그대로’를 알림으로써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지구촌의 오명을 깨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국내외의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 정리하는 지난한 작업을 걸쳐 6·25 전쟁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낱낱이 파헤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쟁 기록서로 당사국인 남북한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유엔 등 관련국들의 입장과 그날그날의 전황 등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사료이다. 또 245장의 사진과 도표 및 비밀전문과 중요한 공문등도 함께 실어 6·25 전쟁을 연구하는 기관 및 학자들에게 교육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꼭 필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재계 순위 14위인 부영그룹 회장인 저자는 평소 교육-문화사업 기부를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전국에 고등학교 기숙사, 마을회관 등 교육·사회복지시설 140여 곳을 무상으로 건립 기증했으며, 26개 국가에 초등학교 600여곳과 디지털 피아노 7만여대, 교육용 칠판 60만여개를 기부한데 이어 UN-HABITAT에 300만 달러 지원과 함께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국가와 남미에 까지 교육기자재 기증을 약정하는 등 국제사회로 기부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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