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길에 널린 시체들… 지옥이 따로 없었다

김민 기자

입력 2020-06-24 03:00 수정 2020-06-24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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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70주년 기념, 국립현대미술관 ‘낯선 전쟁’ 展

평양미술학교 출신으로 종군화가단에 가입했던 윤중식은 피란길에서 겪은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그렸다. 작가가 소장하고 있던 드로잉들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그림은 ‘피란길’(1951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무슨 육편(肉片)이 천 조각에 싸인 줄 알고 자세히 보곤 곧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시신이 조각나 널려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러진 적군의 시체를 탱크가 뭉개고 지나가고 곧 다른 차량이 계속 지나 흩어진 게 분명했다.”

국내 시사만화의 대부 김성환 화백(1932∼2019)의 6·25전쟁에 관한 기억이다.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김 화백의 ‘고바우 영감’은 잘 알고 있지만, 그가 전투 현장을 드로잉으로 담았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25일 온라인 개막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낯선 전쟁’전에서는 6·25전쟁에 관한 이 같은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된다. 1부 ‘낯선 전쟁의 기억’은 6·25전쟁 당시를 기록한 작품을 전시하고, 2부 ‘전쟁과 함께 살다’는 전쟁 이후 사회문제에 주목한 작품들을 담았다. 3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는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의 신작 등을 선보이고, 4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평화를 모색한다.

이 가운데 역시 당시를 기록한 작품이 가장 눈에 띈다.

김 화백은 1950년 국방부 정훈국 미술대에 근무하며 시사만화와 삐라, 주간 만화잡지 제작에 참여했다. 이듬해 가을에는 미술대 소속 기자로 중부전선에 배치된 6사단을 방문해 전장(戰場)과 소년병의 초상화를 그렸다.

전시장의 작품 대부분은 전쟁 직후 서울 모습이다. 1950년 9월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 쌓인 시신들, 서울 수복 이튿날인 같은 달 29일 도망치지 못하고 사살된 북한군 병사 등이 보인다. 북한군의 인민의용군 징집을 피해 다닌 김 화백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농사꾼 행세를 하며 스케치했다. 당시 그는 17세였다.

김 화백 외에도 김환기 윤중식 우신출 임호 등 많은 작가가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했다. 종군화가는 정식 군인은 아니지만 통행증과 신분증을 발급받아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윤중식 화백은 평양미술학교 출신으로 피란길에서 각종 드로잉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들 드로잉 뒤에 작가는 ‘언젠가 그림으로 그리고자 남겨둔다’고 적어뒀지만 회화 작품으로 그려내진 못했다.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이 기록한 6·25전쟁 드로잉 ‘6·25 종군스케치 1951년 10월 28일 참호의 등불’.
전쟁을 겪으며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게 된 예술가가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 남기는 사례는 적지 않다. 2차 세계대전 때 종군화가로 활동하며 전장의 참혹한 고통을 직시해 기록한 헨리 무어(1898∼1986). 그는 이후 ‘가족상’을 비롯한 인체 조각으로 영국 대표 작가가 됐다. 근대미술의 거장인 스페인의 프란치스코 고야(1746∼1828)는 18세기 말 나폴레옹군이 스페인을 침략한 현장을 담은 동판화 ‘전쟁의 참상’(1810∼1820)을 남겼다. 국가주의와 폭력에 맞서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성스럽게 그린 ‘1808년 5월 3일’(1814년)은 이후 마네와 피카소가 패러디하는 등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낯선 전쟁’전은 이수정 학예연구사의 설명과 함께 25일 오후 4시, 약 40분간 유튜브 생중계된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열리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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