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상환 유예 그런게 있었나? 은행선 전혀 얘기 안해줘”

김형민 기자 , 장윤정 기자 , 김동혁 기자

입력 2020-06-09 03:00 수정 2020-06-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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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경제위기]117조원 풀렸다는데 中企는 돈가뭄

지난달 27일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에 위치한 금속 부품 제조 중소기업에서 직원이 공장 기계를 손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줄어 3월부터 공장 가동률이 바닥으로 떨어져 일반 근무자가 보이지 않는다. 안산=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은행에선 새로운 담보를 내놓으라는 요구뿐입니다.”

광주광역시 소재 H사는 분기(3개월) 매출 평균 140억 원 정도를 올리는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 이전인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생산라인 증설에 인력을 더 충원할 정도로 우량 중소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미국 수출길이 막혔고 당장 2분기(4∼6월) 매출이 평년 대비 40억 원 줄었다.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회사 운영 자금을 외부에서 끌어와야 했다. 하지만 담보를 요구하는 은행의 대출 문턱은 높았다. H사 관계자는 “정부의 코로나19 지원책을 체감할 수 없다. 1금융권(은행)은 하나같이 담보가 있어야 대출이 가능하다고만 한다”고 하소연했다.
○ 여전히 금융지원 사각지대 놓인 중소기업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및 기업에 제공하겠다는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규모는 ‘100조 원+알파’다. 이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출 및 보증지원 규모만 29조1000억 원에 달한다. 모든 금융회사가 코로나 피해 중기에 ‘대출금 원금·이자 상환 6개월 유예’ 등의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에 대한 체감도가 낮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책에 대한 중소기업 체감도가 낮은 이유는 크게 △금융회사의 정책홍보 부족 △우량기업에 대한 대출 쏠림 △담보대출 관행 등을 꼽는다.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 소재 금속 부품 업체 한모 대표(52)는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코로나 피해 기업에 제공하는 ‘대출 비용 유예’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급감해 3억 원의 대출 원금과 이자를 유예 받으려고 했던 한 대표에게 은행은 원금 상환 3개월 유예만을 제공했다. 기자가 6개월 유예 제도를 설명해주자 한 대표는 “그런 제도가 있었으면 당장 신청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중소기업들은 정작 중기 관련 금융지원책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코로나19 관련 중소기업 업종별 피해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정부 및 공공기관 지원책 가운데 고용노동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의 인지도가 70.4%로 가장 높았고 이어 시중·지방은행의 ‘이차(이자차액)보전대출’ 52.2%, 기업은행의 ‘소상공인 초저금리특별대출’ 52.1%,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직접대출’ 42.0% 순으로 나타났다. 중기 전용 대출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소규모·영세 중소기업은 인력이 부족해 법인 대표가 모든 회사 업무를 도맡다 보니 은행에서 제공하는 금융 정책 정보가 절대적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이유로 금융위원회도 올해 3월 은행 영업점이 코로나19 지원책을 안내하도록 시중은행과 협약을 체결하고 코로나19 지원 관련 상담센터를 운영 중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은행에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영세 중소기업은 정부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당국 압박에 일반대출이 코로나대출로 둔갑
코로나19 정책대출이 신용도가 높은 기업 위주로 집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당국이 금융권의 코로나19 관련 지원 실적을 점검하는 만큼 금융회사들도 코로나 지원을 외면할 수 없어 웬만하면 신용도가 좋은 ‘돈 되는’ 기업에만 코로나19 대출이 몰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보 취재 결과 최근 한 은행은 코로나19 피해와 무관한 한 전자부품 업체에 대한 기존 대출 2억 원가량을 ‘코로나 피해기업 대출’로 바꿨다. 더욱이 해당 은행은 이 회사의 코로나 피해 여부를 입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 지원 실적을 올릴 수 있어 본사의 검토 없이 해당 지점 전결로 곧바로 연장조치가 이뤄졌다”고 했다.

담보 대출 관행이 중소기업에 대한 코로나19 지원책의 실효성을 반감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미 공장 등을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일으킨 기업으로서는 추가대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특허권 등을 담보로 한 ‘동산(動産)담보대출’ 등을 독려하고 있지만 최근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은행들로서는 부실 리스크를 감수해가며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 리스크 관리하랴, 실적 채우랴… 딜레마 빠진 은행
그렇다고 해서 은행들이 현재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대출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4일 한국은행이 실시한 18조2000억 원 규모의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에 은행들이 110조6800억 원을 응찰했다. RP매각이란 한은이 RP를 금융회사 등 시중에 파는 것으로 그만큼 시중자금이 한은으로 흡수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 번에 110조 원 넘는 자금이 한은의 RP매각에 몰렸다는 건 그만큼 금융회사에 자금이 넘쳐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응찰액은 한은이 2008년 RP 매각을 매주 정례화한 이후 최대 규모다.

은행들이 안전자산인 RP 같은 투자처를 선호하는 것은 기업 부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로나19 금융지원 등으로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이 3월 말 현재 3년여 만에 14%대로 하락했다. 한 시중은행장은 “코로나19 관련한 중소기업 대출 중 상당 부분은 손실 볼 것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 지원 대출과 은행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장윤정·김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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